2화. 억지로 삼킨 눈물보다 뜨거운 ‘시래기국‘

by 연경

입안으로 들어온 시래기는 야들야들하면서도 씹을수록 구수한 단맛이 났다. 멸치 육수를 얼마나 진하게 냈는지, 국물 한 모금을 삼킬 때마다 가슴속 깊은 곳까지 뜨끈한 기운이 내려갔다. 오늘 하루 종일 면접장에서 얼어붙었던 심장이 그제야 제 속도로 뛰는 것 같았다.

정희 씨는 내 맞은편에 앉아 내가 밥 먹는 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국물을 연신 들이켜자, 못마땅한 듯 혀를 쯧 차며 입을 열었다.


"천천히 좀 무라. 누가 뺏어 묵나? 니 그래 급하게 묵다가 채하모 약도 없다. 서울 약국은 문도 일찍 닫는다 안 하더나."


말은 험하게 해도 정희 씨의 손은 바빴다. 그녀는 큼지막한 무 조각을 숟가락으로 툭툭 잘라 내 앞접시에 놓아주었다. 양념이 속까지 쏙 밴 무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저... 아줌마."

"와. 싱겁나? 소금 가져다주까?"

"아니요, 맛있어서요. 진짜 맛있어서..."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아까보다 눈물이 더 쏟아질 것 같아 고개를 처박고 밥알만 세고 있자, 정희 씨의 거친 손이 식탁 위로 툭 올라왔다.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고무장갑 자국이 선명한 손이었다.


"가시나야, 울지 마라. 밥상머리에서 우는 거 아니다. 눈물 섞인 밥 묵으모 인생도 짭짤해지는 기다. 니가 오늘 뭐가 그리 서러운지는 몰라도, 배가 부르모 세상만사 다 별거 아인 게 된다. 알긋나?"


정희 씨는 무심하게 수저통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니뿐만 아이다. 저 옆방 총각도 맨날맨날 코가 석 자나 빠져가 들어오드만, 내 국 한 그릇 묵고 나모 담날 또 기어 나가더라.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니만 유별나게 힘든 거 아이다."


그 투박한 위로가 이상하게 어떤 세련된 격려보다 더 힘이 됐다. '니만 힘든 거 아니다'라는 말이 평소엔 참 무책임하게 들렸는데, 경상도 사투리 섞인 정희 씨의 목소리로 들으니 '그러니 기죽지 마라'는 든든한 응원처럼 느껴졌다.

나는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시래기 한 줄기 남기지 않고 국물까지 말끔히 마시고 나니, 빵빵해진 배만큼이나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정희 씨는 빈 그릇을 보더니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툭 던졌다.


"거 봐라. 배 부르이까 눈물도 쏙 들어가지? 설거지는 내가 할 끼니까 니는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라. 잠이 보약이다. 내일 아침에는 속 편하게 콩나물국 끼리 줄 끼니까 늦잠 자지 말고 퍼뜩 인나고."


방으로 들어와 부러진 구두 굽을 구석에 던져놓았다. 비좁은 단칸방, 창밖으로 보이는 연희동의 밤풍경은 여전히 낯설고 차가웠지만, 뱃속에서 올라오는 시래기국의 온기 덕분에 견딜 만했다.

벽 너머로 정희 씨가 그릇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그락, 달그락.

그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와, 나는 아주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