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10년째 제자리걸음인 신발장 앞 청년

by 연경

다음 날 아침, 정희 씨가 예고한 대로 부엌에선 도마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탁, 탁, 탁, 탁. 규칙적인 그 소리에 눈을 뜨니 창문 사이로 연희동의 아침 햇살이 가늘게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건 어제와는 또 다른, 맑고 시원한 콩나물국 냄새였다.

부스스한 머리로 방을 나서는데, 신발장 앞에 멍하니 서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낡은 백팩을 메고, 잔뜩 해진 운동화 끈을 묶다 말고 멈춰 있는 모습. 그가 바로 정희 씨가 말했던 '코가 석 자나 빠져 들어온다'던 옆방 총각인 듯했다.


"안 가고 뭐 하노! 신발장에서 뿌리를 내릴 끼가!"


부엌에서 정희 씨의 호통이 날아왔다. 남자는 깜짝 놀라며 굽혔던 허리를 펴고 어색하게 웃었다.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정희 씨 말대로 얄브리하다 못해 창백했다.


"아, 아지매. 갑니다, 가요. 그냥 잠깐... 신발 끈이 안 묶여서요."

"신발 끈이 안 묶이는 게 아이고 니 마음이 안 잡히는 거겠지! 헛소리 말고 일로 와서 국 한 사발 들이키고 가라. 빈속에 나가모 서울 바람에 날아간다!"


남자는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식탁에 앉았다. 나도 슬그머니 그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정희 씨는 김이 펄펄 나는 콩나물국밥을 두 그릇 내려놓으며 남자에게 눈을 흘겼다.


"이 총각은 이 동네에서 10년째 신발 끈만 묶고 있다 아이가. 이제는 끈 묶는 도사가 됐을 끼다."

"아지매, 10년이라니요. 8년밖에 안 됐습니다."

"8년이나 10년이나! 강산이 변해도 니 공부는 와 안 변하노. 올해는 꼭 붙어가 이 지긋지긋한 초록 대문 좀 나가라. 내도 니 얼굴 그만 보고 싶다!"


정희 씨의 거친 사투리에 남자는 익숙한 듯 허허 웃으며 국물을 크게 한 술 떴다. 8년. 그 긴 시간 동안 이 좁은 골목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정희 씨의 밥을 먹어온 모양이었다. 신발장 앞에서 멈춰 있던 그의 뒷모습은, 어쩌면 나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는 그의 막막한 처지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니도 봐라. 이 총각도 이리 버티는데, 어제 면접 좀 떨어졌다고 울고불고할 게 뭐 있노. 안 그렇나?"


정희 씨가 나를 쳐다보며 윙크를 날렸다. 남자는 밥을 먹다 말고 나를 보며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아... 새로 오신 분이구나. 안녕하세요. 2번 방 쓰는 김지훈입니다. 아지매 말이 맞아요. 여기 밥심 없었으면 저 진작에 고향 내려갔을 거예요."


지훈 씨의 운동화는 앞코가 다 까져 있었다. 하지만 정희 씨가 듬뿍 넣어준 콩나물을 아삭아삭 씹어 먹는 그의 눈빛에는 묘한 생기가 돌았다. 정희 씨는 남은 콩나물무침을 그의 밥그릇에 아낌없이 덜어주며 덧붙였다.


"공부고 뭐고 사람이 먼저 살아야지. 신발 끈 꽉 묶어라. 가다가 풀려가 자빠지지 말고. 알긋나?"


지훈 씨는 국물까지 말끔히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보다 훨씬 단단해진 손길로 운동화 끈을 조여 맨 그가 대문을 나서며 외쳤다.


"아지매! 저 다녀오겠습니다! 오늘은 왠지 느낌이 좋아요!"


"됐다 마, 느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조심해서 가라!"


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남은 국밥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제 부러진 내 구두 굽은 아직 방구석에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지훈 씨처럼 신발 끈을 꽉 묶고 싶어졌다. 10년째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도, 정희 씨의 밥을 먹고 다시 대문을 나서는 사람의 뒷모습은 생각보다 든든했으니까.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