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이후로 쟁점이 된 이론 물리학의 여러 근원적인 문제 중 우주상수의 퍼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이를 핑계로 최신 우주론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우주상수, 즉 암흑에너지의 존재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3부로 이루어진 이 연재는 모두 2017년 작가의 네이버 열린 연단 강의록에서 발췌하여 편집한 것임을 밝힙니다. https://tv.naver.com/v/1942426
제목에 보이는 그림은 우리 우주에서 은하들이 만들어지고 중력에 의하여 서로 모이는 과정을 시간에 따라 보여주는 컴퓨터 모사(simulation)로, Volker Springel이 제공한 것입니다. 이 모사의 중요한 입력 값 중 하나가 아래 이야기할 우주상수입니다.
최근 50년간 가장 비약적인 발전을 한 학문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분자 생물학이라고 말할 것이다. DNA의 발견, 분자생물학, 인간의 게놈지도 완성, 그리고 클론의 출현 등,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분야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덜 알려져 있지만, 우주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지난 몇십 년처럼 쏟아진 적은 인류 역사상 없었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90년대 말부터 시작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우주 관측들이 있는데, 이를 통하여 알게 된 가장 놀라운 사실을 꼽으라면,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에너지에 대한 것이다. 1990년대에 시작된 우주 배경 복사와 type IA 초신성 관측에서 시작된 이 관측들은, 우주의 성질을 처음으로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흔히 우리가 물질이라고 인식하는, 즉 주기율표에 있는 원자들 혹은 이들을 구성하는 전자, 양성자, 혹은 중성자 등이 우주에 있는 물질의 전부라는 자연스러운 생각이 옳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천문학적인 관측으로 알려져 있었다. 질량이 0이 아닌 것들을, 즉 빛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모든 것을 물질이라고 통칭하기로 하면, 우주에 있는 물질의 약 1/6 정도 만이 인류가 흔히 알고 있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 나머지 5/6의 정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 역시 현재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숙제 중 하나이다.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과 에너지의 현재 상황 (NASA제공)
그런데, 위에 언급한 최근의 측정들을 통하여 알게 된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현재 우주를 채우고 있는 에너지 중 질량을 가진 물질이 차지하는 부분은 3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소위 암흑 에너지라고 하는 특이한 형태의 에너지가 차지한다는 것이다. 질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빛이나 중력파와 같은 광속으로 움직이는 파동형의 에너지와도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어떤 의미에서도 입자들의 모임으로 이해할 수 없다.
우주에 암흑에너지가 존재할 가능성은, 사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정립할 당시 "우주상수"라는 조금 더 구체적인 형태로 제기되었다. 원래는 우주의 크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추가하였다. 그러나 허블에 의하여 우주가 팽창 중이라는 사실이 규명되자, 아인슈타인 본인에 의하여 곧바로 폐기된 것이다. 이론적인 가능성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대부분의 우주론 그리고 입자물리학 학자들 역시 이를 무시하였고, 실제로 1990년대까지 많은 이론 물리학자들은 우리 우주에는 왜 우주상수가 없어야 하는지를 이론적으로 증명하려고 무수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우주상수를 지워버린 아인슈타인. 수 많은 이론가들이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려고 하였으나, 1990년대의 초신성 관측에 의하여, 실은 잘못된 선택임이 밝혀졌다.
아인슈타인의 경우에는 이론이 만들어진 초기여서, 굳이 관측되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에너지를 넣을 이유가 없다는 실용적인 이유로 폐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현대에 오면서는 우주상수가 반드시 0일 것이라는, 매우 그럴듯한 편견이 생겨났는데, 이런 편견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자면 우주상수가 주는 에너지와 일반적인 물질의 가장 큰 차이점에 대하여 약간의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미 많은 독자들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허블(Edwin Hubble)에 의하여 거의 한 세기 전에 발견된 사실이며, 최근에는 위에 언급하였듯이 우주 배경 복사의 관측과 그 이외의 여러 천문학적인 관측을 통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이 검증된 사실이다.
공간이 팽창하면,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물질의 총량이 변하지 않으면 당연히 물질의 밀도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공간의 체적이 두배가 되면, 밀도는 절반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주 상수는 조금 다른 종류의 에너지이다.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주 상수로 대변되는 암흑에너지의 밀도는 공간의 팽창 여부와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주의 팽창이 계속되면 물질의 밀도는 계속 줄어들지만, 암흑에너지의 밀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으며, 따라서 아주 먼 미래에는 사실상 암흑에너지가 우주를 다 채우는 상황이 벌어진다.
일견, 이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일 수 도 있다. 전체 에너지는 에너지 밀도에 체적을 곱하는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상식일 텐데, 이 경우에는 밀도는 일정하면서도, 체적은 우주의 팽창에 따라 늘어나고 있으니 암흑에너지의 총량은 점점 많아지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질은 실제로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유도되는 결론으로서, 이 역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질량이 없는 또 한 가지의 에너지인 전자기파의 경우에는 상대론적인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르면 우주의 체적이 N^3 배 커지면 그 총량이 1/N만큼 줄어든다.
같은 이야기를 에너지의 밀도로 표현하면, 질량이 있는 물질은 1/N^3, 빛과 같이 질량이 없는 파동형 에너지는 1/N^4 으로 줄어드는 반면 우주상수는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이 상대론적 에너지 보존법칙의 결론이라고 한다. 다만 이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을 하자면 일반 상대론을 아예 공부해야 하니 일단 그렇게 믿고 넘어가자.
암흑에너지의 양은 우주의 현재 나이와 그 미래의 모습에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런데, 같은 현상을 시간을 거꾸로 돌려 과거 우주가 생긴 직후로 돌아가 보자. 우주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과거에는 물질의 밀도는 우주의 체적에 반비례하여 그만큼 커질 것이지만, 반면 우주 상수는 일정하고 따라서 암흑에너지의 밀도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총량이 변하지 않는 물질에 비하여 암흑에너지의 전체 양은 매우 빠르게 점점 즐어들 것이다.
우주의 역사를 옆 사무실에 있는 우주론 학자에 물어보고, 이를 토대로 간단한 산수를 해보면, 우주의 나이가 1초였던 순간에 이 물질의 밀도와 우주상수, 즉 암흑에너지의 밀도를 비교해 볼 수 있을 텐데, 대략 그 비율은
우주상수/물질의 밀도 ~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
정도이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은 당연히 “우주는 왜 이렇게 작은 우주 상수를 가지고 태어나야 했을까?”이다.
이 질문의 요점이 첨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현실성 있는" 이야기에 빗대어 다시 생각해 보자. 스무 살에, 혼자 사업을 하겠다고 가출했던 아들이 서른 살이 되어 집에 돌아왔는데, 4억 원의 빚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1억은 당시에 손자를 너무 아끼던 외할머니가 부모 몰래 빌려 준 것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3억은, 역시 10년 전에 빌린, 연 100%의 이자율을 자랑하는 고리의 사채였다고 한다. 과연 아들이 10년 전에 얼마를 사채로 빌린 것이었는지를 역산해 보니, 가출할 당시 30만 원을 사채로 빌린 것이 매년 두 배씩 불어나서 2^10=1024배가 되었고, 그렇게 3억 원의 빚이 된 것이었다.
여기서 당연히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 있다: 이미 외할머니가 마련해 준 1억 원을 가지고 있던 이 아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30만 원의 고리채를 빌리게 되었을까? 우주 상수의 퍼즐 역시 같은 질문을 한다: 조물주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 비율만큼의 암흑에너지를 섞어 넣어야 했을까? 사실 우주는 1초에 시작한 것이 아니므로 그리고 과거로 가면 갈수록 암흑에너지는 상대적으로 적어져야 하므로, 빅뱅 후 1초가 아닌 더 이른 시점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 퍼즐은 더욱더 이상해 질 수밖에 없다.
우주 상수, 혹은 암흑에너지가 처음으로 관측된 1990년대 말 이전에는 대부분의 이론물리학자들이 우주상수가 정확히 0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작은 숫자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조금 더 이성적인 이유로 인하여 아예 처음부터 0이었고 따라서 지금도 0인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준 1억 원을 들고 가출하면서 추가로 30만 원의 고리 사채를 빌릴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처럼, 이렇게 작지만 0이 아닌 우주상수가 있어야 할 하등의 이성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물리학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우리 우주의 우주상수가 실제보다 10배 정도 더 크게 시작하였으면 은하와 별이 만들어질 겨를 없이 공간이 너무 빨리 팽창했을 것이라고 한다. 우주상수가 더 작은 것은 별 문제가 안 되지만, 너무 크게 시작했으면 태양과 같은 별이나 지구와 같은 행성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한편, 우주상수를 무엇이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여러 가지 근원적인 이유를 찾아볼 수도 있는데, 이런 이론적인 고찰은 한결같이 어마어마하게 큰 우주상수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도, 우리 우주에서 관측된 것과 같은 작은 우주 상수가 생겨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은하와 별의 생성에 작거나 아예 0인 우주상수가 필수적이라는 방금의 이야기를 상기해 보면 은하와 별과 지구를 만들기 위해 어떤 절대자가 인간을 만들기 위하여 우주를 디자인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21세기 과학자가 할 말은 아니다 싶다.
차라리 처음부터 0이었다면, 아직은 잘 모르지만 무언가 설명이 가능한 과학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주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어 버렸으니, 매우 작지만 0은 아닌 이 우주상수를 어떻게든 설명해야 하는데, 속 시원한 과학적인 해답이 아직 없다. 이것이 우주상수의, 혹은 암흑에너지의 퍼즐이다.
중력과 관련된 여러 근원적이고 이론적인 문제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다른 글에서 이야기할 블랙홀과 양자 원리와의 충돌인데, 최소한 이 문제의 경우 양자중력을 허용하는초끈이런 안에 정답이 있을 것이라는, 학자들 사이의 절대적인 여론이라도 조성되어 있다. 중력이 주는 또 하나의 첨예한 이슈인 이 우주상수의 퍼즐은 어쩌면 이보다도 더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초끈 이론 학계의 일각에서는 과연 이 문제가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구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소위 멀티버스 혹은 다중 우주인데, 이에 대하여 그동안 회자된 온갖 오해들이 있고, 이로 인해 초끈 이론 자체가 공격을 받는 조금은 어이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직은 제대로 된 해결책은 없으나, 우주 상수의 문제가 과학적인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 새로운 관점에 대하여는 다음 글에서 조금 더 다루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