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선 크리스마스에 눈이 와요?
일곱 살 로베르토가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몇 해 전 크리스마스에 여행했던 북해도 설원의 사진들을 보여주었고, 아이는 두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는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트리니다드의 까사엔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가 한창이었다. 특별한 날을 위해 멀리 사는 친척들까지 모여 분주했고, 로베르토는 그중 가장 어린 주인집 막내아들이었다. 나는 최근 몇 년간의 크리스마스를 연속으로 눈이 오지 않는 나라에서 보내고 있었는데, 뜨거운 태양 아래의 크리스마스는 로맨틱하기보다는 좀 더 정열적인 축제처럼 느껴지곤 했다.
까사의 아이들은 과자를 입에 물고 뛰어다니고, 어른들의 손엔 쿠바산 병맥주가 들린 채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해맑은 표정의 사람들과 신나는 음악, 정신없이 이어지는 살사 댄스. 여느 크리스마스의 풍경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그 흔한 트리 장식, 산타모자, 빨간 양말 등이 보이질 않는다.
21세기가 무색하게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거리의 올드카와 알록달록 페인트만 덧칠한 낡은 건물들은 거대한 박물관처럼 여행자들을 끌어들이지만, 현지인들의 생활은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그나마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공산품을 구하기 어려워 도시의 큰 식료품점이나 마트 앞에는 늘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늘 춤을 추며 노래했다. 거리엔 항상 음악이 있고, 춤이 있었다. 타고난 긍정의 DNA가 그들의 삶에 밝은 에너지를 공급하는 듯했다. 그들의 매일은 파티처럼 흥겨웠고, 크리스마스이브는 사실 보통의 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좋았다.
쿠바 여행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 매일 이른 아침마다 가장 무거운 렌즈를 꺼내 하품을 하며 숙소를 나서는 일이 가끔은 고되기도 했지만 그들의 삶의 공간이 여행자들로 가득 차기 전 가려지지 않은 그들의 일상을 엿보는 일은 늘 설레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커다란 렌즈를 들고 그들의 일상 속에 불쑥 끼어든 동양의 낯선 사내를 향해 환하게 웃어 주었고, 난 그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꼭 무언가 특별한 상황이 내 앞에 나타나길 기대하는 건 아니다. 매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리를 나서는 작은 수고에 대한 보상은 그저 일상의 평범함을 담은 사진들만으로도 충분히 채워지고 있었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감성을 자극하는 전부가 아니었다.
그날에 느껴지던 소리, 냄새, 온도.
그 거리, 그 시간...
그들의 부족함으로 인한 나의 정서적 만족이 꽤나 역설적이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통제된 구역을 벗어나 기어코 와이파이를 연결해 세상을 구경하는 젊은 세대들은 각자의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문득, 아침의 로베르트가 떠올랐다.
늦도록 살사 클럽에서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을 즐기다 까사로 돌아가는 길. 좁은 골목의 가로등은 하늘하늘 춤을 추는 듯 느껴지고 귓가엔 여전히 음악 소리가 남아 맴돌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
같이 걷던, 까사 룸메이트이자 멕시코에 살고 있는 SH가 물었다.
‘내일 아침 로베르토에게 랩탑에 있는 여행 사진들을 좀 더 보여주면 좋을 것 같은데, 네가 우리 대화를 좀 도와주지 않을래..?’
- Trinidad, Cu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