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윤 May 17. 2020

당신을 타투할게요


 2년 전, 동생이 타투를 하겠다며 사진을 보냈다. 내가 놀라서 ‘타아투?’ 라고 답장하니, ‘언니 나 이미 예약했고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건데. 엄마 아빠한테는 말하지 말고. 내가 직접 도안 그렸는데 예쁜가만 봐’ 달라했다. 동생은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부모님 몰래 할 수 있었다. 타투는 동생의 쇄골과 등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부모님께 보고하는 대신에 타투에 대한 편안한 인상을 마음에 보관했다.


 작년 여름, 발리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에게는 타투가 있었다. 그들 몸 자체가 예술 작품이었다. 용이 승천하는 등, 반려견이 웃고 있는 발목, 거북이가 헤엄치는 손목, 고소한 크루아상과 식빵 냄새를 풍기는 팔, 꽃이 만개해 봄 같던 옆구리, 새빨간 사랑으로 채워진 정강이. 자유롭고 당당하게 자신의 취향과 애정을 드러내는 그들이 멋있었다.


싱가포르 친구 제스의 하투하투 정강이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 로를 만났다. 로에게 타투를 하겠다고 말했다. (로는 내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십년지기 친구다.)
“네가 발리에서 한 달 동안 살더니 발리 뽕을 제대로 맞았구나. 발리에서나 멋있어 보이는 거지 한국에서는 아니야.”
태양의 흔적이 온몸에 새까맣게 남아 있을 때였다. 그녀의 말도 맞았다. 충동으로 평생의 동반자를 선택할 수는 없으니 발리 뽕에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해가 바뀌고 다시 내 피부색을 찾아가고 있는 지금도 타투가 하고 싶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무언가를 내 피부에 담고 싶다. 그런데 수많은 도안을 보고 주위를 둘러봐도 눈에 쏙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며칠 전, 아빠의 편지를 꺼내 읽었다. 편지 봉투에는 아빠가 직접 그린 꽃과 네잎 클로버가 그려져 있다. 강인해 보였던 아빠의 아기자기한 감성이 느껴졌다. 아빠의 손재주는 남달랐었다. 30년간 도면을 그리고 금형을 만드는 일을 하셨고, 미술 한번 배우지 못했지만 내 미술 숙제를 도와주시곤 했다.


 아빠는 이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수 없다. 두 번째 뇌종양 수술을 받고 오른편 마비가 왔기 때문이다. 식사부터 화장실까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화도 어렵다. 아빠는 뭐라뭐라 말하지만, 우리 귀에는 웅얼웅얼 소리로 들린다. 처음에는 그런 그가 안쓰러웠다. 재활 치료를 하면 좋아질 거라 믿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났다. 아빠는 힘이 점점 빠졌고, 그런 그를 병간호할 때면 힘에 부쳤다. 날 왜 고생시키나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윤이에게 해주지 못한 일 때문에 미안한 마음뿐이다. 앞으로도 다 못하겠지만 노력하겠다. 영원히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겠다,’


 나는 아빠를 위해 해야 할 일에 불평하기도 했었는데, 아빠는 자신의 큰 수술을 앞두고도 나를 위해서 더 못해줘서 불편해했다. 무한하고 순수한 사랑이 눈으로 들어와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런데 난 이 편지를 몇 번째 읽는 건지 모른다. 볼 때마다 새롭다.


 아빠를 보러 병원에 갔다. 나를 보고 왼쪽 광대가 빵빵해지도록 웃는 그가 귀여웠다. 귀를 파고 손톱을 깎아주는데 함께 숨을 쉬고 내 옆에 존재해주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아빠의 사랑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꾸준히 기억하고 싶다. 마지막 편지를 내 안에 선명하게 담아 두고 싶다. 그를 타투해야겠다. 동생에게 사진을 보내야겠다.
   

아빠가 그린 그림
아빠가 내게 준 편지
이전 12화 요플레와 고구마는 맛있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