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윤 Oct 05. 2020

두 번이나 두개골을 열었다

 수술 전 의사가 말했다. 종양의 조직학적 등급이 1등급부터 4등급까지 있다. 종양 조직 검사 결과, 아빠 왼쪽 머리에는 교모세포종이 붙어 있는데, 4등급으로 가장 악질인 종양이라고 한다. 3년 전에 첫 수술 했을 때는 2등급이었지만, 올해부터는 4등급으로 분류가 되었다고 했다.


 언어와 운동 기능을 좌우하는 신경세포 사이사이에 종양들이 들러붙어 있어서, 수술하게 되면 언어 장애와 오른편 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수술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언어장애와 편마비가 빠르게 오고 그렇게 죽는다고 했다. 최대한 마비가 안 오게 수술을 하겠다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수술해도 안 해도 같은 결과였다. 아빠는 두 번째 뇌종양 제거 수술하기로 결정했다.   


 2월 16일, 토요일 엄마와 함께 아빠 담당 신경외과 교수님 면담을 했다. 수술 후, 첫 면담이었다. 아빠는 2번째 수술을 해냈지만 오른쪽에 마비가 오고 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수술 붓기 때문인지 신경을 건드려서 인지는 확실하게는 모른다. 앞으로 3주 후에 3주간 방사선 치료를 하고, 재활하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아빠는 최소 2달간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한다. 멀쩡하게 살고 싶어서 수술했는데, 수술 직전보다 상태가 안 좋은 아빠 모습을 보니 정말 수술이 최선인가 싶었다. 수술해도 안 해도 마비가 오는 거였는데, 머리를 가르고 방사선을 쏘고 더 강한 약을 먹어야만 하나 싶다. 살기 위해서 했던 수술이 아빠의 일상과 몸을 더 망가트린 거 같다.


 병실로 돌아와 좀 쉬다가 점심 식사 시간이 돼서, 아빠 식사를 도와드렸다. 아빠가 오른손을 못 사용해서, 내가 직접 죽과 반찬을 입에 넣어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이 회진을 왔다. 아빠에게는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고, 앞으로 입원을 더 해야 하고 등등 진료실에서 들었던 말들의 반복일 뿐, 긍정의 문장들은 들을 수 없었다.


 교수는 옆 환자에게도 갔다. 옆 환자도 뇌 수술을 했다. 교수님이 한 말을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환자 보호자의 큰 목소리 교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알아버렸다.


"어머 자기야. 종양을 100% 다 제거했데. 악성 아니래, 양성이래. 아 살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장 교수님이 명의네. 자기야 진짜 고마워."


 그녀는 병실 안에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전화해서는 너 빨리 지금 춤추라고, 퇴원하면 우리 같이 춤추자고 했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진단 결과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했다. 분명 기쁜 일이긴 했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들뜬 목소리를 그만 듣고 싶었다. 불편하고 짜증 났다.


 하지만 아빠가 앞에 있었다. 나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상반된 진단 결과를 듣고, 옆 환자의 진단 결과가 자기 것이길 바라는 마음은 아빠가 더 컸을 테다. 나는 묵묵히 죽을 수저로 푸고, 그 위에 반찬을 올려서 아빠 입에 넣어드렸다.


 우리 아빠도 같은 교수한테 수술받았다. 우리 아빠는 양성도 아닌 악성 종양 가득 떼어냈는데, 다 떼어 내지도 못했고, 또 언제 얼마큼 커질지도 모른다. 아빠는 스스로 식사도 어렵고 나랑 대화도 못하는데. 그리고 나도 아빠랑 같이 춤추고 싶다.


 속상했다. 다른 사람의 기쁜 일에 같이 기뻐할 수 없고 질투가 일어나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이런 감정이 일어나는 내가 미웠다.




이전 07화 뒷모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