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무리하는 늦은 밤, 샤워를 할 때면 눈이 심심해 괜히 궁금하지도 않은 것들을 유심히 읽곤 한다. 주로 샴푸의 주요 성분, 글리세린 어쩌고, 계면 어쩌고 같은 것. 또는 세면대나 수도꼭지에 새겨진 브랜드의 이름 같은 것. 신기하게도 그것은 매일 보는데도 매일 까먹는다.
또 바디워시 회사의 로고는 누가 디자인한 걸까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치약에는 왜 호두씩이나 들어가는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그러다 늘 마지막에 눈이 가는 것이 바로 그 날의 하이라이트. 열어보면 매번 다른 포춘 쿠키 속 메시지처럼 매일 다른 것이 걸리는 수건 한 장이다.
어디서 어떻게 누구의 손을 타고 들어와 우리 집의 수건걸이에 걸리게 된 건지 그 사연이야 수건에게 물을 수도, 알 수도 없는 일. 다만 수건에 대해 내가 알 수 있는 일부의 정보는 그것의 아래에 적혀 있는 간략한 역사를 통해서다.
‘축 개업기념 89년 OO마트’, ‘경 개원 축 OO피부과’, 이런 축, 저런 축. 십 년은 가뿐히 넘는 수건의 보푸라기 인 역사를 찬찬히 보다 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약속처럼, 수건들은 모두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 같다.
마트가 새로이 문을 열던 날, 수건을 돌리던 그 날의 풍경은 어땠을까. 사람들로 복작이는 소란한 풍경을 쭉 상상하다보니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마트, 어떻게 되었을까. 이미 없어진 건 아닐까. 지구상에 이 수건 한 장만을 남긴 채로. 그러다 다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 십 년을 함께한 그 소중한 가게를 닫을 때는 왜 수건을 돌리지 않았을까. 떠들썩했던 시작과는 달리, 왜 소멸과 끝은 늘 홀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
축하할 일들에는 무엇이 어울리는지 생각해본다. 아기가 태어나고, 이웃이 가게를 열고, 결혼을 하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처럼 시작에 관련된 특별한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과연 시작만이 축하하고 기념해야 할 일일까 물으면 그렇지 않다는 대답으로 고개를 가로젓고 싶다.
고등학교를 마지막으로 마침내 십여 년의 공교육을 졸업하는 것. 삼십 년간 근속해 온 직장에서 은퇴를 하는 것. 십 년 넘게 운영한 가게와 작별하는 것까지도, 마땅히 축하하고 축하받아야 하는 일이다.
꽃망울은 개화와 함께 제 모습을 잃는다. 꽃 한 송이는 열매를 맺을 때 바닥으로 떨어진다. 끝은 그대로 홀연히 소멸하는 것 같지만 사실 모든 끝은 시작과 맞닿아있다.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맺음이 처음만큼이나 소중한 까닭이다.
언젠가 오늘처럼 멍하니 샴푸 통을 들여다봤을 때 그러다 또 멍하니 고개를 돌렸을 때, 그 곳에 축 폐업기념 혹은 축 완업기념이라는 이름의 수건이 걸려있다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하니 빙그레 웃음이 지어진다.
뒤돌아서는 모습이 처음의 모습과는 달리 쓸쓸해 보일지라도, 이대로 안녕을 말하는 것이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질지라도 “괜찮아, 그동안 수고했어”, “축하해, 무사히 끝마쳤구나” 하고 토닥여주는 포근한 수건이, 곁 가까이에 걸려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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