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퇴고와 편집]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
여기, 퇴고를 시작하는 창작자가 있다. 그는 자신이 쓴 모든 문장과 사랑에 빠져있다. 이 문장은 새벽 3시에 겨우 썼고, 저 문장은 멋진 비유를 담고 있다. 그는 글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화려한 수식어를 덧붙이고, 아까운 문장을 이리저리 옮겨본다. 결과물은 어떨까? 핵심은 지방층에 묻히고, 이야기는 속도를 잃는다. 이것이 '더하기'만 아는 퇴고가 부르는 첫 번째 비극이다.
여기, 또 다른 창작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글에 자신이 없다. 냉정한 피드백 한마디에 그는 글 전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는 감정에 휩쓸려 글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난도질'한다. 이야기의 속도를 내기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의 감정선을 덜어내고, 명료하게 만든다며 작품 고유의 목소리(Voice)를 삭제한다. 이것이 '기준 없는' 퇴고가 부르는 두 번째 비극이다.
퇴고는 더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과정이다. 내가 공들여 쓴 문장이라도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해친다면 과감히 삭제해야 한다. 두 비극은 퇴고를 '감정'의 영역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퇴고는 열정으로 쓴 글을 '냉정한 이성'으로 분석하고, '기능'에 따라 판단하는 자기 객관화의 영역이다.
우리는 왜 버리지 못할까? 내 글을 '자식'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고가 완성된 순간, 그 글은 더 이상 나의 '자식'이 아니라 독자에게 가치를 전달해야 하는 '제품'이자 '실험체'이다.
따라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어떻게 더 잘 쓸까'가 아니라, '어떤 문장이 기능하고, 어떤 문장이 기능하지 못하는가'를 판단할 '냉정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퇴고는 '이 문장이 좋은가?'라는 감성적 질문이 아니라, "이 문장이 작품의 핵심 목표에 기여하는가?"라는 기능적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내 글에 냉정한 메스를 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우는 용기'는 맹목적인 용기가 아니라 '정확한 기준'에서 나온다. 이 5가지 기준은 우리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나침반이다.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다. 아무리 멋진 문장이라도, 지금 독자가 따라가고 있는 핵심 메시지, 플롯, 혹은 인물의 감정선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방'이다.
✓ (남길 것) 메시지, 플롯, 캐릭터 아크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문장.
✓ (덜어낼 것) 그저 분위기만 내거나, 앞에서 한 설명을 불필요하게 반복하는 문장.
좋은 글은 촘촘한 인과로 묶여있다. 이 문장이 빠졌을 때 다음 문장이 '왜?'라는 질문에 부딪힌다면, 그 문장은 플롯을 전진시키는 '뼈대'이다. 하지만 없어도 이야기가 흘러간다면? 그것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풍경 묘사일 수 있다.
✓ (남길 것) 원인, 결과, 인물의 동기를 선명하게 드러내어 플롯을 앞으로 밀고 나가는 문장.
✓ (덜어낼 것) 없어도 이야기가 흘러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문장. (특히 불필요한 배경 설명)
초고는 종종 우리의 머릿속만큼이나 복잡하다. 독자는 그 복잡함을 해석해 줄 시간이 없다. '~적인', '~에 대한' 같은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추상적인 표현을 구체적인 동사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문장은 힘을 얻는다. 짧고 선명하게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 (남길 것) 구체적인 이미지, 단일한 의미, 힘 있는 동사 중심의 문장.
✓ (덜어낼 것) 추상적인 표현, 중복되는 수식어, 없어도 되는 군더더기 표현. ('~에 대한', '~적인', '~것이다' 등)
글에도 호흡, 즉 리듬이 있다. 모든 문장을 짧게 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긴박한 추격 씬에서 배경을 묘사하며 늘어지거나, 인물의 슬픔을 충분히 보여주기 전에 다음 장면으로 건너뛰는 문장은 독자의 감정선을 끊는다. 장면의 속도와 문장의 호흡을 일치시켜야 한다.
✓ (남길 것) 몰입의 흐름을 유지하는 문장. (긴박한 씬에서는 짧게, 감정 씬에서는 알맞게)
✓ (덜어낼 것) 긴박한 장면에서 불필요한 설명으로 늘어지거나, 감정 장면에서 급하게 건너뛰어 속도를 깨는 문장.
이것은 명료함만큼이나 중요하다. 명료함만 좇다 보면 모든 글이 건조한 설명서처럼 변할 수 있다. 이 문장이 나만의 스타일, 캐릭터 고유의 말투, 작품 전체의 톤(Voice)을 드러내는지 확인해야 한다. 아니라면, 사전에서 빌려온 듯한 진부한 표현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 (남길 것) 캐릭터 고유의 말투, 작품 전체의 톤과 태도(Voice)를 드러내는 문장.
✓ (덜어낼 것) 어디서 본 듯한 진부한 표현, 사전적이고 딱딱한 설명체의 문장.
이 5가지 기준을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한 것이 바로 이 챕터의 '한 문장 규율'이다. 퇴고할 때 이 규율을 나침반 삼아, 모든 결정을 이 문장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 규율을 바탕으로, 모든 문장을 다음 5가지 질문으로 빠르게 판단해 볼 수 있다. 'YES'가 3개 이하라면, 그 문장은 '용기 있게 지워야' 할 후보다.
1. 이 문장은 주제, 플롯, 감정선 중 하나를 강화하는가? (핵심성)
2. 이 문장은 이전/다음 문장과 인과로 연결되는가? (인과성)
3. 더 짧고 단호한 문장으로 바꿀 수 없는가? (명료성)
4. 이 문장은 장면의 속도를 살리는가? (리듬감)
5. 이 문장은 캐릭터나 서사의 고유한 목소리를 유지하는가? (고유성)
백 마디 설명보다 하나의 사례가 낫다. 이 기준들이 어떻게 '기름 낀' 문장을 '근육질' 문장으로 바꾸는지 직접 본다.
✓ (Before) "그녀는, 어쩌면 그녀의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알 수 없는 어떤 슬픔 같은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저녁 하늘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 (After) "알 수 없는 슬픔이 북받쳤다. 그녀는 붉게 물드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결정 과정]
+ 핵심성: 슬픔을 느끼고 하늘을 본다. (Before: Yes, After: Yes)
+ 인과성: 원인(슬픔)과 결과(바라봄)가 있다. (Before: Yes, After: Yes)
+ 명료성: "어쩌면~지도 모르는", "어떤~같은 감정" 등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심각하다. (Before: No, After: Yes)
+ 리듬감: 한 문장이 너무 길고 복잡해 호흡이 끊긴다. (Before: No, After: Yes)
+ 고유성: 특별한 목소리가 없다. (Before: No, After: Yes)
결과적으로 'Before' 문장은 핵심 기능은 하지만(YES 2개), 명료성과 리듬감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 독자의 몰입을 방해한다. 'After' 문장은 이 모든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두 문장으로 리듬을 살리면서도 핵심을 명료하게 전달한다. 이것이 바로 '지우는 용기'가 만들어낸 차이다.
퇴고는 열정으로 쓴 초고에 대한 냉정한 '결정'의 과정이다. 문장이 아니라 역할을 남기고, 분위기가 아니라 인과를 남기고, 글의 양이 아니라 리듬을 남겨야 한다.
이 모든 결정을 하나의 문장, '한 문장 규율'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퇴고는 핵심만 남기고 인과로 묶어, 리드미컬하며 짧고 선명한 목소리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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