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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여름 피어 오른 꽃 Aug 13. 2023

[발리 한 달 일기 04] 리조트 풀에서 만난 사람들


바람이 엄청 부는 날이다. 특히 우리 가족이 있던 폰독산티 에스테이트 리조트는 길리 항구에서 왼쪽에 위치해 있는데, 바람을 직격으로 맞는 곳인 듯 보였다. (섬의 반대쪽은 바람이 좀 덜했다.)


모래바람이 심하게 불어 몸에 모래가 튀어 따갑다 보니 원래 물놀이를 하려 했던 해변가는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그렇게 키 160cm가 채 되지 않는 내가 수심 150cm의 꽤 깊은 풀(pool)에 들어가 노는 사태가 일어난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르고, 풀 가장자리에 있는 단에 의지해서 발장구만 겨우 쳐대고 있었다.

폰독산티 에스테이트 리조트 풀
블랙핑크를 좋아한다는 프랑스 아이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엄청난 수영 고수 아기들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그 아이들의 부모 대신 나의 대리 육아가 시작되었다. 


내 곁에서 "Do you   know~?"를 연발하는 아이들…

"그거 알아? 나 체조할 줄 안다? 나 되게 유연하다? 그거 알아? 나 물구나무선다? 그거 알아? 나 잠영한다? 그거 알아? 우리 엄마는 거의 naked(비키니를 말한 듯)로 수영한다? 그거 알아? 우리 할아버지는 두 번 돌아가셨다? 피카추 알아?" 

질문의 무한궤도에서 정신이 헤롱 대는데...


질문을 던지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다이빙을 하고, 잠영을 하고, 수영을 한다. 



물이 전혀 두렵지 않은 아이들이 부럽다

나는 그저 그런 아이들이 부러웠다. 프랑스에서 왔고, 아빠는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 할머니는 인도네시아 마타람에 계신단다. 

영어도 잘하고 수영도 잘하고, 외향적인 성격에, 세계 각국 친구들과 에너지 넘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다보니,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그저 부끄러워 엄마 아빠 등 뒤에 숨어있던 수줍던 어린 시절의 내가 그려진다.


물 밖에만 계시던 엄마도 물로 끌어들였다. 그리곤 엄마도 나와 함께 풀 가장자리 단에 의지해서 함께 발장구를 쳤다. 팔이 아팠다. 계속 단에 몸을 의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한 백발의 백인 할머니가 얼굴을 내밀고 유유자적 유영을 하고 계신 것을 보았다. 그 몸짓이 우아하고 여유로워 시선을 끈다. 곧 눈이 마주치고 인사를 나눴다. 


영국에서 온 할머니로 12월 초에 자카르타로 입국해서 3월까지 가족들과 인도네시아를 여행하신다고 한다. 

수영을 못하는 나와 엄마를 보고는 본인도 수영을 늦게 시작해서 한 번도 완벽한 수영을 한 적은 없다고 얘기해 주셨다. 

그러게... 완벽한 수영이 아니라 하더라도 물에서 놀 수 있고 나를 지킬 수 있는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수영을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영국 할머니와의 사진이 없지만) 할머니를 다시 만난 리조트 앞 플리마켓에서 엄마를 찰칵

여행의 좋은 점은, 나이, 국적, 성별, 연령에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자극을 받는다는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 수록 할 수 있는 것은 줄어들 텐데,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진다면 심심한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이 될 것 같다. 


오늘 만났던 서양인들의 당당한 자세와 여유로움이 새삼 부럽다. 

나의 상상 속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것을 오롯이 집중해서 살아가는 듯 보이는 그 모습들도 여행의 한 장면으로 소중히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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