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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여름 피어 오른 꽃 Aug 11. 2023

[발리 한 달 일기 03] 거북이와 함께 수영을


길리에서 기대했던 또 하나는 스노클링이다. 맑디 맑은 에메랄드 빛 바닷속을 보는 것이 몇 번이나 할 수 있는 경험이겠는가…

어떤 바닷속 세상을 만날지 기대하며 아침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다시 나의 정신적 육체적 버팀목 '아네론'을 먹고 배를 탔다.

구명조끼를 입고, 오리발을 차면, 수영을 못하는 나도 물속에서 걱정 없다 이거야…!

배를 빌려 타고 총 세곳의 포인트를 돌았다.

긴장은 좀 되었지만 큰 걱정 없이 첫 번째 스노클링 포인트에서 물속으로 뛰어들는데, 이게 웬일인가...!

나는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구명조끼가 풀리며 몸이 360도로 회전하기 시작했고, 스노클링 마스크에는 입과 코로 물이 들어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팁 : 스노클링 마스크를 빌렸더니 너무 사용감이 많은 것을 주었나 보다. 처음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부피가 좀 크더라도 한국에서 사가길 추천한다.)


그렇게 몸이 돌고 있는 와중에, 수영을 잘하시는 아빠마저 물속에서 경황이 없음이 느껴지고, 급기야 내 눈앞에 갑자기 아빠의 지갑이 둥둥 떠간다. 아빠가 수영복 주머니에 지갑을 넣고 물에 뛰어드신 거다!

(*팁 :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물에 뛰어들기 전 소지품은 꼭 배에 꺼내두길 바란다.)

내가 잘한 일 중 하나는 물속 사투 중에서도 아빠의 지갑을 낚아 채 배 위로 던졌던 것이라고 자부한다.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의 여행은 이날로 망했다.


그러던 중 나는 한 명의 가이드에 이끌려 (그야말로 질질 끌려) 얕은 해변으로 가게 되었다.

계속 마스크에 물은 들어오는 와중 수심이 얕아져 일어나 보려 시도하는데,  애먼 오리발이 오히려 방해가 되어서 일어나지 지도 않고,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러던 중 갑자기 '씨!!! 떠뜨르! (See! turtle)'라는 소리가 들려, 물을 먹든 뭘 하든 필사적으로 물속을 헤엄쳤다.

정말 바다거북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나와 같이 헤엄도 쳐준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다른 수많은 스노클링어(?) 들이 발견하기 전에 홀로 거북이와 유영하며 즐기는 시간을 꽤 가졌다.

거북이와 나. 같이 헤엄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황홀하다.

힘들게 다시 가이드에 이끌려 배로 돌아가고 나니 너무나 지쳐계신 아빠가 보였다.

처음 물에 뛰어들고 정신없이 물을 먹고 뱅뱅 돌고 하기를 반복하던 중 갑자기 내가 사라지니, 혹시나 내가 몸이 안 좋거나 문제가 생겨 해변가로 끌려나가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아빠가 엄청나게 나를 찾아 헤매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바닷물을 너무 많이 먹고 진이 다 빠지셨나 보더라.

너무 짠 물을 많이 먹은 나머지 아빠는 구토까지 하셨는데, 그 와중에도 스노클링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사나이였다.

울렁거리는 속에도 바다를 함께 즐겨준 아빠

세 곳의 스노클링 포인트에서 아빠는 울렁거리는 속에도 불구하고, 물속에 들어오길 주저하지 않으셨다.

마지막 포인트에서는 그래도 둘 다 좀 정신을 차리고 스노클링을 할 수 있었는데, 조류가 꽤 센 곳이라 아빠와 손을 꼭 잡고 헤엄을 쳤다. (서로 떠내려가지 말도록 지켜주며…)

더 이상 젊지 않은 딸과 이젠 누가 봐도 시니어인 아버지, 두 부녀의 힘든 물과의 사투였다.


아빠는 괴로우셨을지라도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 물에 뛰어든 것이며, 바닷물을 엄청나게 먹고 토한 것이며, 엄마와 신이 나게 놀렸다. 나중에는 그게 다 나를 찾기 위해 애쓰다 고생한 걸 알고는 마음이 깊게 아팠지만...

나이가 70이든 80이든 모험을 멈추지 않을 우리 아빠.

앞으로도 그의 호기심과 탐험심이 영원하길 응원하며, 아빠의 건강이 허락할 수 있도록 잘 관리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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