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엄청 부는 날이다. 특히 우리 가족이 있던 폰독산티 에스테이트 리조트는 길리 항구에서 왼쪽에 위치해 있는데, 바람을 직격으로 맞는 곳인 듯 보였다. (섬의 반대쪽은 바람이 좀 덜했다.)
모래바람이 심하게 불어 몸에 모래가 튀어 따갑다 보니 원래 물놀이를 하려 했던 해변가는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그렇게 키 160cm가 채 되지 않는 내가 수심 150cm의 꽤 깊은 풀(pool)에 들어가 노는 사태가 일어난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르고, 풀 가장자리에 있는 단에 의지해서 발장구만 겨우 쳐대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엄청난 수영 고수 아기들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그 아이들의 부모 대신 나의 대리 육아가 시작되었다.
내 곁에서 "Do you know~?"를 연발하는 아이들…
"그거 알아? 나 체조할 줄 안다? 나 되게 유연하다? 그거 알아? 나 물구나무선다? 그거 알아? 나 잠영한다? 그거 알아? 우리 엄마는 거의 naked(비키니를 말한 듯)로 수영한다? 그거 알아? 우리 할아버지는 두 번 돌아가셨다? 피카추 알아?"
질문의 무한궤도에서 정신이 헤롱 대는데...
질문을 던지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다이빙을 하고, 잠영을 하고, 수영을 한다.
나는 그저 그런 아이들이 부러웠다. 프랑스에서 왔고, 아빠는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 할머니는 인도네시아 마타람에 계신단다.
영어도 잘하고 수영도 잘하고, 외향적인 성격에, 세계 각국 친구들과 에너지 넘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다보니,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그저 부끄러워 엄마 아빠 등 뒤에 숨어있던 수줍던 어린 시절의 내가 그려진다.
물 밖에만 계시던 엄마도 물로 끌어들였다. 그리곤 엄마도 나와 함께 풀 가장자리 단에 의지해서 함께 발장구를 쳤다. 팔이 아팠다. 계속 단에 몸을 의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한 백발의 백인 할머니가 얼굴을 내밀고 유유자적 유영을 하고 계신 것을 보았다. 그 몸짓이 우아하고 여유로워 시선을 끈다. 곧 눈이 마주치고 인사를 나눴다.
영국에서 온 할머니로 12월 초에 자카르타로 입국해서 3월까지 가족들과 인도네시아를 여행하신다고 한다.
수영을 못하는 나와 엄마를 보고는 본인도 수영을 늦게 시작해서 한 번도 완벽한 수영을 한 적은 없다고 얘기해 주셨다.
그러게... 완벽한 수영이 아니라 하더라도 물에서 놀 수 있고 나를 지킬 수 있는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수영을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의 좋은 점은, 나이, 국적, 성별, 연령에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자극을 받는다는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 수록 할 수 있는 것은 줄어들 텐데,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진다면 심심한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이 될 것 같다.
오늘 만났던 서양인들의 당당한 자세와 여유로움이 새삼 부럽다.
나의 상상 속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것을 오롯이 집중해서 살아가는 듯 보이는 그 모습들도 여행의 한 장면으로 소중히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