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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여름 피어 오른 꽃 Oct 22. 2023

[발리 한 달 일기 13] 발리 요리를 배워봤습니다.

발리 전통음식 쿠킹클래스를 들어보려 한다.

처음에는 '혼자이거나 한 명 정도 더 있겠지?' 할 정도로 소규모 그룹을 예상했다.

그런데 픽업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보게 된 광경은...

앞에 쫘르르 앉아있는 외국인들이 모두 같이 쿠킹 클래스를 들을 사람들이라고?

약 13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내리자마자 누군가가 나에게 '자기소개해라! 노래해라!'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한국식 유머가 아니었던가!! 이거 전세게 통용인가?!!)

그래서  '이제 내 차례니?' 하고 나름 당황하지 않은 척 웃으며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이것에 당황하겠어!' 하며 실제로는 잔뜩 당황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인상 좋은 이탈리안 아저씨가 건넨 농담이었고, 그의 놀라운 친화력으로 커플 혹은 친구들과 함께 온 일행 사이에서 유일한 나 홀로 참가자였던 나는 덜 어색하게 무리에 녹아들 수 있었다.

요리를 배우기 전 시장투어를 하며 재료를 산다.

그의 이름은 이탈리아인 마틴이었고, 그의 아내는 러시안인 올가였다. 10여년 전 미국에서 만났던 러시아인 친구도 올가였던지라 한층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25년여 전 터키에서 만났고 지금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근처에 산다고 한다.

마틴은 그야말로 사람 좋아하는 극 E 성향의 친화력 만렙 아저씨였고, 그를 자유롭게 풀어두면서도 늘 여유롭고 부드럽게 지켜주는 올가는 성품이 참 좋아 보였다.

마치 그들의 딸처럼, 살뜰하게 챙겨주는 그들 사이에 앉아, 김치에 대해, 한국에 대해, 그들의 만남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또 다른 일행은 두바이에 산다는 인도인 부부, (허니문을 왔다고 해서 진짜인 줄 알았더니, holiday마다 허니문이라는 그들 식의 조크였다.) 뉴질랜드의 대학생 친구들 4명, 호주 퍼스에서 온 부부와 그들의 무뚝뚝한 아들까지.

처음에는 시시 때때로 어느 무리에 껴야 자연스럽고 덜 부담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꽤 큰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함께 재료도 손질하고, 식사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마칠 때 즈음엔 헤어짐이 아쉽기까지 했다.

설명들은 순서대로 하나씩 해가다보면 그럴듯한 음식이 완성되는 마법!

혼자 온 나는 각 커플, 가족들을 관찰해 볼 수 있었는데, 그것도 참 재미있었다.

우선 올가와 마틴은 정말 소년 소녀 같았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적개심이 전혀 보이지 않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녹아들었다.

게다가 아마도 50~60대일 그들은 아직도 사진 찍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올가가 '나 사진 찍어줘, 이렇게 찍어줘'라고 하면 마틴은 기꺼이, 그리고 열심히 찍어주면서도 본인 고집을 부렸다. (렌즈를 아래로 향하게 한다든지) 그러면 올가는 '그거 아냐, 다시 찍어, 위로 올려서 다시 다시'라고 연거푸 재촉하는데, 이 일상적인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엽고 웃음이 나는지….

호주 퍼스 부부의 아들은 상당히 시크했는데, 내 동생이 생각났다. '이 재료 냄새 맡아볼래?' 하면 '아니 싫어.' / '이거 해볼래?' 하면 '아니 난 안 할래.' / 혹여나 엄마가 기침을 하면 몸을 잔뜩 피해버리는, 그야말로 무뚝뚝한 아들의 모습이었다. 저러고는 친구들 만나면 전혀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혼자 상상을 해본다.   

인도 부부와는 남북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우리도 언젠가는 독일처럼…'이라는 말을 듣고는, 남편이 아내에게 '저 말 무슨 뜻인지 알아? 이해했어? 독일의 히스토리를 아느냐는 뜻이야.'라고 굳이 짚어 얘기한다.  그 모습이 왜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지...

상투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세상 사람 사는 게 정말 다 똑같구나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ㅎㅎ


쿠킹클래스를 다녀와서 음식 말고 웬 사람들만 보고 온 얘기만 잔뜩 적고 있나 싶은데, 사실 음식도 정말 맛있었다. 우리가 만든 건데 이렇게 맛있을 일인지 신기했다. (물론 클래스 호스트의 철저한 계획하에 우리는 움직였을 뿐이다.)  특히 코코넛 숯불에 구운 치킨 사태는 그 맛이 일품이었고, 발리에 와서 처음 먹어본 가도가도 샐러드나 머시룸 수프, 치킨 카레까지 입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직접 만든 음식이 맛있기까지 해서 모두 놀라워하며 즐겁게 먹었다.

사실 모두 일행이 있는 집단에 나 홀로 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호주 여행에서도 그랬고, 스페인 여행, 로마 여행에서도 그랬지만, 어디서든 그 일행들 사이에 적당히 끼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와 고도의 눈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꽤 많이 지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홀로 여행일 때마다 이런 액티비티에 참여하는 것은, 혼자일수록 더 다양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고, 액티비티를 하는 의미가 충분히 더 크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런 혼자 여행을 얼마나 더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의 도전도 멋졌고, 잘했다고 스스로를 새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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