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과 아쉬운 작별, 그리고 새로운 짐바란 리조트 여행기
간밤에 A가 도착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새벽 1시 반쯤 도착했으려나? 잠옷 바람에 길목으로 데리러 나갔는데, 고요한 새벽의 정적을 깨고 차소리와 함께 익숙한 한국어 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여행을 오기 전 A가 바쁘기도, 아프기도 해서 꽤 오래간만에 보는 것인데, 게다가 낯선 인도네시아에서 만나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했다. '생각보다 반갑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시답잖은 고민도 했더랬다.
그런데 웬걸, A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반갑고 설레기 그지없었다. 내가 덩치만 크다면 폭 감싸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숙소에 들어와 목이 말랐던지 맥주 두 캔을 쉼 없이 들이키고는 Klook 드라이버의 한국어 실력에 놀란 얘기, 한국어 실수가 귀여웠던 얘기 등을 두런두런 해주었다.
(드라이버는 서투른 한국말솜씨로 A에게 "왜 지금 왔어? 인도네시아 계속 비 오고 명절"이라고 반말로 질문을 해댔다 한다.)
한숨 자고 일어나 게스트하우스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먹고 짐을 맡기고 우붓을 좀 돌아보러 나왔다.
모두 다는 어렵더라도 내가 지냈던 우붓은 이런 곳이라고 A에게 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먼저 우리는 커피를 수혈하러 Seniman Coffee를 갔다. 여기서 A는 거의 커피 원액 600ml를 샀는데, 이건 결국 여행이 다 끝날 때까지 먹지 못한다.
그리고는 우붓 왕궁을 지나 사원도 둘러보고, 우붓 마켓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여행 내내 A가 유용하게 쓰고 다니던 챙이 넓은 여성용 모자를 샀고 (머리가 커서 들어가는 것이 이것밖에 없었다.) NOVI라고 적혀있는 노비계의 인싸옷과 같은 마소재의 상하의를 샀다. 그런데 이 옷이 A에게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렸고, 시원하게 잘 입고 다녔다.
마지막으로 Ibu Rai 레스토랑에 데려가 점심을 먹으려 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나의 물갈이와 같은 배앓이가 시작되어 곤란해졌다. 남은 여행... A와 함께 잘할 수 있을까?
시간이 되어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짐을 찾고, 호스트와 작별 인사를 했다. 게스트하우스 Darba 앞의 단골 가게 아주머니와도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내 마음을 알아준 마냥 닫혀 있던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아쉽다, 잘 가고 다시 발리에 오면 만나자."라는 아쉬운 인사와 함께 살살 아픈 배를 움켜쥐고 짐바란으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짐바란에서는 호평이 가득했던 '아야나‘,그중에서도 가성비가 높은 '림바 바이 아야나'에서도 묶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좋은 리조트라고 하니 아야나가 어떤 곳일지 기대가 높았는데, 막상 지금은 우붓을 떠나고 게스트 하우스를 떠나는 것이 더 아쉬운 마음이다. 그 사이 우붓에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아야나는 기대했던 것보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택시를 타고도 한참을 들어가서야 메인로비가 나왔는데, 얼마 전 게스트하우스 예약으로 한번 데었던 탓에, 이번엔 부디 순탄하길 소망했다.
하지만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것인가.. 갑자기 나의 실명과 예약자 명이 다르기 때문에 입실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아고다에서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을 했더니 구글의 닉네임이 예약자명으로 되어 있었다. (*닉네임 XX Happy)
나의 닉네임이 나 본인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 정성을 알아준 것인지, 힘들게 방 키를 얻어낼 수 있었다. 혹시나 구글 등 타계정으로 로그인을 할 경우에는 꼭 확인하자. 예약자명!!
이 뒤로 나는 호텔 곳곳에서 Ms. Happy 씨로 불렸고, 때론 예약자명을 확인하던 데스크의 직원들이 "Ms.Happy! wow!" 하며 이름에 대한 격한 리액션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날은 짐바란으로의 이동에만 2시간이 넘게 걸렸고, 둘 다 전날 늦게 자 피곤했으니, PEPITO라는 마트만 다녀온 후, 호텔에서 편안하게 식사하기로 했다.
아야나의 레스토랑으로 이동해서 각자 인도네시아와 타이 음식을 시켰다. 때마침 저녁 라이브공연이 있던 날이었었던 터라 편안한 음악을 들으니 피로와 긴장감이 조금씩 가시는 느낌이었다.
둘째 날이 되어서야 이 넓은 아야나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탐색을 해볼까 한다.
아야나에는 10개가 넘는 수영장이 있다고 하는데, 너무 많으니 이것 참 어디서부터 어떻게 즐겨야 할지 더 막막한 느낌이다.
그래서 내가 묵었던 Rimba wana에 있는 자그마한 수영장에 갔다. 내심, 좋은 곳 먼저 가야 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가까운 곳 먼저 파악해 보자.' 싶어 마음을 바꿨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방과 가까이에 수영장이 있다는 메리트, 그늘과 볕의 조화가 적절했던 장점이 참 컸던 곳이었다.
슬렁슬렁 물놀이를 하고 볕에 몸을 좀 말린 후, 헬스장을 가보기로 했다. 오늘은 Rimba의 헬스장으로 향했는데, 기구가 많진 않았지만 알차게 짜인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요가만 며칠을 하다가 정말 오래간만에 덤벨을 들었고, 워킹 런지로 하체 운동도 했다. 그리고 A와 같이 플랭크로 마무리를 했다.
저녁에는 아야나의 명소인 '락바'를 가기로 했다. A가 좋은 자리를 부탁하며 전화 예약을 했고, 우리는 아야나로 향했다. 어제는 비가 오고 구름이 가득해서 석양을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락바를 가는 만큼 석양이 잘 보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오늘도 비가 오락가락하는 하늘이고, 구름은 꽤나 껴있었지만 우기인 발리 날씨의 묘함은 구름의 이동이 매우 빠르고 그만큼 비도 금세 그친다는 것이다.
석양이 보일 서쪽 하늘에 구름이 가득한 상태에서 자리에 앉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구름이 이동하고, 걷혀가며, 강렬한 황금빛 노을에 눈이 부셨다.
오늘도 석양을 못 볼까 걱정했을 필요가 없었다고 말하듯 강하고 큰 석양을 보여주었다. 물론 5년 전 발리에서 본 그 붉디붉고 구름 한 점 없던 석양은 아니지만 말이다.
꼭 이래야만 한다.라는 정답을 만들어놓지 않는다면, 오히려 내가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형태의 노을도, 여행도,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