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의 일출과 여행의 마무리
A의 제안으로 바투르 일출투어를 하기로 한 날.
나는 잠이 여간 많은 편이 아닌지라 한국에서도 일출을 본 적이 없어 내심 심드렁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2시에 일어나서 2시 30분에 픽업차량을 탔는데, 세상에... 픽업차량이 오프로드를 달리는 줄 알았다.
차가 엄청나게 흔들려대는 바람에 계획했던 숙면은 취하지 못했지만, 덕분에 새벽의 발리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들을 구경하며 바투르 산으로 향했다.
약 2시간여를 달려 아직 어둠이 짙은 새벽 4시 반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리뷰에서 본 것처럼 확실히 기온이 낮다. 경량패딩을 챙겨가길 잘했다 생각하며 목까지 단단히 지퍼를 채웠다.
그곳에서도 담요를 빌려주는 상인들이 많으니 준비해 가지 않았다면 빌렸어도(찝찝하지만) 괜찮았을 것 같다.
우리는 준비된 여러 지프차들 중 가장 작고 낡아 보이지만, 빨갛고 귀여운 지프차에 당첨되었다. 그때 지프차는 문이 없단 것을 처음 알았다. (열고 타는 문도, 창문도)
뒷바퀴를 밟고 활기차게 올라타 앉으면, 의지할 곳은 차 프레임 밖에 없다. 그 봉을 잘 잡고 바투르 산의 오프로드를 달리기 시작했다.
30분여를 덜컹덜컹 달려 올라가다 보면 짙은 어둠에서 희미하게 밝아져 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여러 대의 지프차가 주차된 형태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곳이 지프 일출 투어 장소이다. (구글 맵에 아예 장소가 지정되어 있었다.)
지프차에 올라 해가 떠오를 방향을 바라다보고 있는데, 아쉽게도 오른쪽에선 큰 덩어리의 구름이 옮겨올 것 같고, 해가 떠오르는 지점엔 굳은살처럼 짙은 구름이 깔려 움직일 생각을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 해의 빛은 엄청난 강렬함이 있었고 오히려 더 묘한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태양과 하늘은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무슨 색이라고 형언하기도 어려울 변화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해 뒤로 뿜고 나오는 빛의 에너지는 붉게도, 푸르게도, 하얗게도 뻗나 갔다.
이것이 사람들이 일출을 보며 느끼는 '힘참이고, 벅참이고, 경건함이구나...' 싶었다.
일출 보러 오길 잘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 중에, 옆에서 A는 왜 2~3분에 한 번씩 사진을 찍냐고 묻는다.
A는 사진 찍을 시간에 온전히 내 눈에 담으라고 한다. (나는 변해가는 하늘의 색과 형태를 다 담고 싶은걸…?)
나의 경우는 간직하고픈 순간이 언젠가는 기억이 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있다.
지금 이렇게 글로 기록하는 것처럼, 소중한 시간의 면면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변함없이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상황에 몰입하지 못한다면, 그때의 온전한 감정은 사진을 보고도 남지 않겠지.
그래서 A의 말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나도 이젠 사진을 좀 줄여보고, (그래도 남길 것이다.) 그때의 상황과 공기, 그리고 내 감정을 오롯이 들여다보는 훈련을 해봐야겠다.
돌아오는 길에는 Black lava를 보러 (검은 용암) 지프차로 또 30분을 달려갔다. 검은 용암에서 사진도 찍고 돌 2개도 주워왔다. (그랬더니 내 가방 안에는 화산재가 덕지덕지...)
어느덧 지프의 거친 승차감이 익숙해지고, 부드러운 포장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A와 나는 상체가 차 밖으로 나오도록 일어나 보았다.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달려보니, 그야말로 해방감이 느껴진다!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 왜 그렇게나 달리는 차에서 일어나는 장면이 나오는지 이제야 이해를 좀 해본다.
피곤함이 몰려들어 돌아오는 차에서는 코도 골며 기절해 잤다.
여간 일찍 일어난 것이 아니라 피곤이 가시질 않는 걸 보니 역시 만만한 일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리에서 느낀 강인하고 짙은 일출의 에너지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발리의 여행은 마무리를 하려 한다.
남부투어에서 시작하여 쿠타에서 길리로, 우붓에서 짐바란으로, 다시 쿠타로 이어진 여행길의 면면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한 새로운 인연들과 소중한 가족, 친구와 함께했던 뭉근한 추억을 안고 다시 서울의 나로 힘차게 살아가보련다.
힘이 들면 이 일기를 다시 열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