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기대어 내일을 기대해> 중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을 봤습니다. 이 안에는 어린이 미인대회 출전이란 올리브의 개구진 목표를 위해 온 가족이 뛰어드는 여정이 담겨있지요. 그들은 꼬박 2일을 내리 달려 어렵사리 캘리포니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올리브는 그토록 소원이던 무대에 오르게 되죠.
한데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들인 갖은 노력이 배반이라도 당하듯, 망신을 당할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대회의 테마와는 다르게 코믹한 장기자랑(물론 너무도 사랑스러운)을 준비한 탓이었어요. 올리브는 천진난만하게 무대를 이어가지만, 장내는 어수선해지기 시작합니다. 곧 그녀를 향한 야유가 쏟아질지도 모르는 상황, 올리브가 그를 감당하지 못하리라 판단한 가족들은 다 같이 무대로 난입하고야 말죠. 그리곤 각자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다 같이 웃음거리가 되기로 작정한 거죠! 정작 올리브는 그들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지만 어쨌든 즐겁게 무대를 마칩니다.
한편 영화를 통해 이 장면을 본다면 대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올리브가 아주 든든하겠구나’란 사실을. 그녀가 정말 충만한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음을. 그 사랑은 대회의 상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이란 것도요. 장면의 코믹함과는 대비되게 어찌나 감동적이던 지요.
나를 전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전적으로’, 왜인지 가슴이 뭉클해지는 부사입니다. 그런데 극중 올리브가 힘을 얻을 수 있던 이유는 과연 온 가족 모두의 힘이 합쳐져서 가능했던 걸까요? 그렇다면 범위를 조금 더 축소시켜 보면 어떨까요? 단둘 만 남겨보는 거예요. 곁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얼마나 절대적인 힘이 되어주는지 말입니다.
먼저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속 장면인데요. 냉큼 수중발레에 도전한 남편을 비꼬는 동생에게 일침을 가하는 아내의 대사입니다.
“우리 남편이 남자답진 않아도 흉볼 생각은 없어. 그이도 그걸 숨기거나 다른 사람인 척할 필요 없고. 그이가 뭘 하건, 난 그이가 자랑스러워. 우린 서로 자랑스러워해.”
이보다 든든한 지지는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비록 그녀는 화에 울컥해서 이야기했던 장면이지만, 저는 다른 의미로 울컥해버린 장면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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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내의 꿈을 지지해 주는 남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영화 <줄리&줄리아>의 한 장면인데요. 요리책 출간을 위해 무려 8년을 힘써왔지만, 출판 과정에서 길이 막히자 풀이 죽은 아내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길이 있을 거야. 우린 끄떡없어. 누군가는 당신 책을 출판할 거고, 당신 책을 읽고 진가를 깨달을 거야. 당신 책은 훌륭하니까. 당신 책은 천재적이고 당신 책은 세상을 바꿀 거라고. 내 말 믿지?”
그리고 그의 응원은 곧 현실이 됩니다. 책 출간은 물론, 미국에 프랑스 요리의 대중화를 선도하기까지 하죠. 이 이야기는 『프랑스 요리 예술의 대가가 되는 법』의 저자, 줄리아 차일드의 실화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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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세계 챔피언에게 도전한 무명 복서, 영화 <록키>의 이야기인데요. 경기가 성사된 후 늘 호기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이지만, 그 이면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너무도 큰 도전이었으니까요. 한편, 늘 상황 탓만 늘어놓느라 어떠한 시도조차 못 하는 그의 매형은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록키에게 표출하며 그를 비아냥거립니다.
“도와주는 사람 없인 좋은 기회도 안 와.”
그러나 그의 옆엔 든든한 지지자, 아내가 있어 주었죠.
“아인슈타인은 2번 낙제했어. 베토벤은 귀머거리였고 헬렌 켈러는 장님이었어. 록키, 당신에게도 기회가 온 거야”
아내의 든든한 응원에 힘입어 록키는 훈련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결전의 날, 기나긴 15라운드 경기를 끈질기게 버텨낸 록키가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거듭 외쳤던 이름은 ‘에이드리언!’ 자신을 향한 지지를 아끼지 않던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이었습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곁에 둔다는 것. 이는 개인이 가진 능력보다 더한 힘을 갖는 것 같아요. 또한 다수의 간헐적 인정보다는, 소수의 분명한 온정이 훨씬 더 힘이 센 것 같고요. 이전에 스쳐 갔고 앞으로 스쳐 갈 그 수많은 마주침보다 내 곁에 확실히 안착해 준 이들은 ‘숨’처럼 소중합니다. ‘품’처럼 따뜻하지요.
곁에 그런 사람을 두는 일이란 순조롭지만은 않은 일상, 너무 날카로워서 때론 나를 베고 지나가는 평판, 이 모든 것들에 괘념치 않거나 마땅히 떨쳐낼 수 있는 안전 막을 몸에 두르는 일이라 생각해요.
돌이켜보니 살면서 정말 필요한 건 힘들이지 않고 무던하게 행복한 삶보다는, 예측하기 어렵고 모진 삶 가운데 마음 둘 한 곳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간혹 몹시 누추해져 버린 나를 다독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한없이 움츠러든 나라도 끌어안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 이보다 더한 안도와 축복이 있을까요.
삶이 언제나 평온할 순 없겠죠. 사실 호락호락하지 않아 버거울 때가 더욱 많은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면, 삶을 헤쳐가기에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이의 응원과 지지 안에서는 그 어떤 불안도 잠재워지곤 하니까요.
당신의 주위에도 분명 당신을 진심으로 위하고 지지하는 그(녀)가 있을 테죠. 부디 그 마음을 한 번 꼭 쥐어보세요. 마음 편히 한 번 안겨보세요. 마음 안 호수에 그 한 사람을 들이는 순간, 지금껏 못내 성에 안 차던 안정감의 수위가 한껏 올라 차고요, ‘그렇지 이 기분이지’라며 이제야 비로소 호수가 꽉 채워진 포만감이 들 겁니다.
어디에도 통하지 못한 마음을 비빌 곳이 한 곳 있다는 건, 누구도 알아 채주지 못하는 헛헛함을 안아줄 누군가 곁에 있다는 건, 지친 나를 뉘일 수도, 누추해진 몸을 꽁꽁 숨길 수도, 추운 마음을 추스를 수도 있는 푸근한 이부자리를 두는 일일 테죠.
어느 날엔가 나를 모질게 휘두르는 바람 안에서, 한 발짝 내딛기도 두려운 안개 속에서 가장 큰 안도를 주는 것이라면, 단연 마주 잡은 손일 겁니다. 이때 전해 받은 온기란 마음에 이불을 덮는 것과 진배없지요.
우리가 지금 곁에 있거나, 앞으로 안착해 줄 이에게 이런 말을 전할 수 있기를 빕니다.
‘간혹 오늘을 살아내기가 너무도 버겁고 지칠 때가 있지만, 그래도 그대가 있어 줘서 괜찮다. 그대도 그랬으면 좋겠다.’
- 출처 -
º이번에 기댔던 작품│
-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미스 리틀 선샤인」, 2006
- 질 를르슈,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2019
- 노라 애프론, 「줄리 앤 줄리아」, 2009
- 존 G. 아빌드센, 「록키」,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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