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지하철역으로 향하다 성수동의 한 빵집을 지나쳤습니다. 가게 문 밖으로 줄이 엄청나게 늘어서 있더라고요.
‘빵이 얼마나 맛있길래 저렇게 오래 줄을 서 계실까? 빵도 손님들도 대단하지만 나는 엄두가 나질 않아.’라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친구의 시선이 그곳에 멈춰있었어요. 순간 또 생각했죠. ‘왠지 줄을 서게 되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던 찰나에, 친구가 이야기하더라고요. ‘저기 빵 맛있는데 동생들 사다 줄까?’ 그녀가 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제 마음도 말랑해져선 거뜬히 기다릴 수 있겠더라고요. 친구의 손을 냉큼 잡고 긴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내내 궁금했어요.
‘매장 안엔 대체 어떤 빵들이 즐비해 있을까? 맛은 과연 어떨까?’
순서가 다가옴에 따라 가게 내부를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아주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매대 뒤엔 오븐들이 가득 차지한 상태였고, 사장님께선 겨우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빵을 팔고 계셨어요. 보통 빵집에 가면 빵 굽는 냄새나 장소의 분위기에 마음을 뺏기곤 하잖아요? 그런데 이곳에선 그보다 사장님께서 장사하시는 모습에 마음을 홀딱 뺏겨버렸습니다.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으셨을 텐데, 마주하는 한 분 한 분께 빵 종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시고, 매진이 임박했을 땐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미리 공지를 주기도 하셨어요. 그의 선함에 이미 반했지만, 더 마음이 동했던 건 그 바쁜 와중에 연신 웃음을 잃지 않으신단 거였습니다. 단지 예의로 건네는 미소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일에 아주 흡족해하고 있다는 기운이 물씬 느껴졌어요.
드디어 차례가 되어 저희도 그의 안내를 듣는데, 직접 구우셨을 빵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빵을 소개하시는 그의 두 눈은 영롱했어요.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의 표정은 결코 수완에 대한 만족이 아니었어요.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 그 자체에 대한 만족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온몸엔 특별한 아우라가 둘러져 있었어요. 너무도 큰 사람처럼 느껴졌고, 저는 그를 마냥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이따금씩 몸담은 일에 대한 애정이 잦아들 때가 있습니다. 아마 그로부터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순간들일 텐데요. 가령, 뜻이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커질 때. 혹은 뜻에 맞는 일을 행하고 있지만, 지속가능성이 불분명해서 불안감이 커질 때, 우리는 일의 가치 혹은 나의 가치를 의심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나의 일을 마냥 좋아할 수 없는 데에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그런데 과연 일의 가치와 그 일을 행하게 하는 원동력 사이엔 어떤 장력이 존재하는 걸까요? 물론 특정한 일의 가치란 게 당연히 평판만으로 결정될 순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요. 그럼에도 사뭇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그런 인정의 정도가 생계와 직결되는 척도가 돼주곤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웬만하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또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을 통해 최소한의 인정을 받고 싶습니다. 적어도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에라도 기댈 수 있어야 그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으니까요. ‘내’가 하고 있거나 하게 될 일이 가치 있길 바라는 이유는, 그것이 명분이 돼주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지속하게 하는 명분.
우리는 타인의 인정이 나의 가치를 결정지을 수 없단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타인의 인정이 행하는 일에 대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순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행하는 일이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것 같단 의구심이 일기 시작하면 두려워지곤 합니다. 이런 의심이라면 극구 사양하고 어떻게든 빨리 떨쳐내고 싶건만, 어쩐지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더욱 찰싹 엉겨 붙는 기분입니다.
저로서는 그런 몸부림을 치다 제풀에 지쳐있던 참에 빵집 사장님의 모습을 보게 된 건데요. 어떻게 그렇게나 기운이 넘치시는지, 어떤 원동력으로 지금껏 해 오실 수 있었는지 정말 여쭙고 싶었지만, 이는 당연히 마음속 물음에 불과했고요. 실제로 묻지 못해 아쉽던 와중에 고맙게도 기억 속 한 인물이 떠올랐습니다. 아무래도 그가 등장했던 영화를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다시 보며 각별히 더 감화됐던 장면을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