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 Feb 23. 2022

당신이 서 있던 지점들을 이으면

- 누구라도 삶에 걸려 넘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작품에 기대어 내일을 기대해> 중



 누구라도 삶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을 보며 든 생각인데요. 그 안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각기 다른 사연으로 시련의 수렁에 빠져있습니다. 사업 혹은 재취업이 쉽지 않거나, 꿈이 멀게만 느껴지거나, 남모를 가정사 혹은 가슴 저린 과거 등을 안고 있지요. 그런데 이런 상황들, 영화 속에서나 주어지는 생소한 경험은 아닐 테죠. 우리 모두는 언제라도 길고 짧은 터널들을 만납니다. 그 어둠 속에서의 두려움과 고통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기에,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 공감을 하기도, 이런 이야기로부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영화 속 그들이 각자의 아픔을 나누며 서로 치유해가는 과정처럼 말이에요.     


***

 그런데 과연 그들이 수영장으로 간 이유, 그리고 수중발레단 입단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예상컨대, 처음부터 수중발레의 매력에 끌렸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보단 ‘지원했을 때 진입장벽이 낮은 곳이어서’, ‘다른 곳과 달리 나를 반겨주는 곳이어서’란 이유가 컸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곳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돼주었던 거죠.     


 자신의 가치에 스스로 자신할 수 없던 시기, 그들에겐 무엇이든 전념할 것이 필요했습니다. 무어라도 시작해야 했거나, 어디라도 속해야 했거나, 훈련에 몰입할 때만이라도 현실의 고충을 잊어야 했죠. 

 다행히 훈련을 거듭할수록 그들은 잃었던 활력을 조금씩 되찾아갑니다. 수중발레에 대한 애정 또한 자라나고요. 더 나아가 대회 출전이란 동일 목표까지 생기면서, 그들은 각자가 덮고 있던 그늘로부터 차츰차츰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그들의 도전을 비웃거나 비아냥거리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그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습니다. 마음이 상할지언정 물러서지 않아요. 그들은 한껏 움츠려있을지언정, 결코 자신을 놓지 않지요.

 '첨벙첨벙', 풀장 안에서 그들이 온 힘 다해 찼던 발차기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치열한 발버둥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이들을 두고 그 누가 패배자라 단언할 수 있을까요?

 


***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기도하게 하소서.
(중략)
내 자신의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기도> 


 이제 겨-우, 아주 조-금, 이 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된 시간도 끌어안는 것이 삶이라는 사실을요. 그 시간 동안 하염없이 앓는 것이 아닌, 그 시간 또한 어김없이 안는 것이 어둠을 잘 해쳐가는 법이라는 것을요.     


 삶이 언제라도 나를 뒤흔들 수 있음을 인정하면, 그 바람이 어느 존재에게나 닥칠 수 있음을 이해하면, 불시에 들이친 반갑잖은 상황 탓을 조금은 덜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대신 자신을 지켜내는 데 온 힘을 쏟을 수 있게 되는 것 같고요. 우리가 삶을 다스릴 힘을 평생 얻지 못하겠지만, 나를 다스릴 힘은 언제고 기를 수 있을 테지요.      


 그런 점에서 영화 속 수중발레단(나의 영웅들)은 위 기도를 몸소 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었을 테지만,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각자가 짊어진 고통이나 열등감을 이겨내고 있으니까요. 그 모든 여정과 그들이 되찾아가는 웃음을 보며 정말 큰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쥐게 되지요.      


***


 실제로 어떤 콤플렉스나, 빛을 보지 못한 나의 어떤 면, 불만스러운 환경, 갑작스레 닥친 시련 등은 상상만으로도 어둠 속으로 뒷걸음질 치게 하지만, 그 어둠이 결코 끝을 뜻하지는 않는단 사실을 이 영화로부터 배웠습니다. 도리어 지금의 나를 완성해 내기도 한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에요.     


 그러나 이 또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아니죠. 우리 주변에서도 일련의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가령, 한창 꿈을 펼칠 나이에 손을 다쳐버린 어느 드러머는 독특한 색깔의 밴드 보컬로 재기해 활동 기간 내내 큰 사랑을 받았지요. 뮤지션 장기하 님의 이야기입니다.     


 집에 보탬에 되기 위해 일찌감치 생업에 뛰어드느라 꿈을 미뤄야만 했던 작가 지망생도 있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동경을 떨쳐내진 못했고, 늦게나마 대학에 들어가 문예 창작 과정을 수료하지요. 그러나 등단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대학로 극작가로 꾸준히 활동하며 결코 펜을 놓지 않은 결과, 드라마 각본 집필 제안을 받아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게 됩니다.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의 대작들을 집필해 내신 스타작가 김은숙 님의 이야기지요.


 결국, 어떤 절망적 상황이라도 그때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은 시련의 수렁이 아닌, 성장의 한 가운데인가 봅니다. 별과  별을 이으면 고유의 별자리가 되듯, 우리가 과거에 섰거나 앞으로 서게 될 모든 지점은 훗날 빛으로 이어져- 저마다의 특별한 아우라가 되어줄 테지요.     


 누구라도 삶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대도 괜찮다는 용기를 다집니다. 살아보겠단 그들(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의 첨벙첨벙- 발버둥이 말 그대로 예술이 되었듯, 우리 모두의 발버둥 또한 각각의 작품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 연재 시리즈:  <작품에 기대어 내일을 기대해> 중



- 출처 -


º이번에 기댔던 작품│질 를르슈,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2019

ºPhoto by @sharonmccutcheon on Unsplash



이전 11화 부르짖지 않고 끌어들인다는 기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