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는 사람도 멋진 사람이 되는 방법
공원이나 광장을 가면 사자 동상이 많이 있다. 사자의 용맹함을 우러러보는 사람들의 자세가 나타난 것인지 그 동상엔 날카로운 이빨과 휘날리는 갈기가 표현되어 있다. 낮에는 모든 색이 뺏겨버린 회색의 바위 조각 같아 보이지만 밤에 무심코 봤다가는 딸꾹질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그 동상은 적의 털을 바짝 세우게 하는 사자의 밀림의 왕 모습을 가득 담아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사자에게는 그런 웅장한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사자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상상해본다면 자신의 자식을 노리는 동물에게 분노를 느낄 것이고 자신보다 몸집이 큰 존재에게 어쩌면 1%의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죽어가는 동료의 모습에 슬픔을 느껴 사냥을 하고 싶지 않아 할 수도 있다. 외적으로는 모두가 감탄하는 반짝이는 갈기와 끝이 날카롭게 서린 발톱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만의 속 깊은 진실은 그들만이 알 뿐이다.
이것은 잘나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생 시절 나에게 잘나 보이는 사람은 발표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철학과 전공 특성상 거의 모든 수업이 발표와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말을 잘하는 사람은 특출 나게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들을 동경과 질투로 바라봤었다. 내향적인 나로서는 가뭄에 콩 나듯 존재하는 발표를 안 하는 수업을 들어왔었기에, 4학년부터 피할 수 없었던 발표 수업에서는 구석에 박혀있다시피 하며 몸을 쭈그러트렸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난 괜히 전공 책에서 모르는 게 있는지 찾으려 고개를 박고 있었다. 다른 학생분이 준비했던 발표를 했고 질의응답 시간이 왔다. 나는 궁금한 게 생겨도 손에 제어 가동장치가 걸린 듯 멈춘 채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만 듣고 있었다. 이거 좋은 질문 같은데 질문해볼까? 하고 생각하자마자 나의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긴장을 정말 잘하는 사람이라면 알 텐데, 다리가 떨리면 입이 위아래로 떨려서 위아래 이가 딱딱딱하고 계속 부딪힌다. 이렇게 떨리는 상태로 말을 하면 내가 긴장하고 있는 게 다 티가 날 텐데 싶었다. 일단 이 긴장을 늦추기 위해 그래, 발표하지 말자 하고 포기했다.
내가 그렇게 긴장감의 편에 서서 정신없을 때 나의 앞자리에 앉아있던 학생이 손을 들었다. 이분은 매번 수업 때마다 질문을 하고 답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전달력도 좋고 질문 내용도 좋아서 내가 감탄을 하면서 봤었다. 어쩜 그렇게 자기 생각을 전달하고 답도 잘하는지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그때도 손을 드시는 걸 보고 오늘은 또 어떤 좋은 말을 할지 기대했다. 그런데 바로 뒤에 앉았던 탓일까? 그분의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들렸다. 이상하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싶어서 책상 위에 얹은 그의 손을 보았다.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의 이가 부딪히는 소리만큼 떨렸고 그의 손은 나의 다리가 멋대로 움직이는만큼 흔들렸다. 나만큼 떨고 있는 게 보이는데 그는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말도 버벅거리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질문과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전달하고 답을 얻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느꼈다. 긴장되지 않아서, 너무 마음이 편안해서 질문을 하는 게 아니구나. 목소리 떨림이 모두에게 전해지고 떨리는 손을 제어하지 못해도 질문을 해도 되는구나 하고.
그분이 발표하는 겉모습은 멋져 보이고 흠집 하나 없이 완벽해 보였지만 그 깊은 속은 나와 같다는 게 위안이 됐고 격려가 됐다. 멋진 사람은 완벽한 조건들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나약함도 받아들이면서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마치 진짜 사자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알지만 멋져 보이는 것처럼.
그때부터 두려운 일을 할 땐 그분처럼 나의 나약함을 그대로 보기 시작했다. 그 학생의 모습을 본 덕분인지 4학년 2학기 마지막 대학생 때는 전부 발표수업으로 수강신청을 했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발표와 질의응답을 했지만 수업시간마다 하나 이상의 질문을 했다. 몸뚱이는 집에 있었음에도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 학생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게 발표를 잘하는 사람도 덜덜 떠는데, 나도 떨어도 돼! 하고. 긴장하고 무서워하는 나의 나약함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고 생각하자 편안했다.
약해도 돼. 떨어도 돼. 목소리가 갈라져도 괜찮아. 발표가 하기 싫고 무서워도 돼. 나의 약한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유가 된다는 의미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내가 발표를 무서워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발표를 할지 말지는 선택사항이 아니게 돼버린다. 무서워하는 상태에서 발표를 할지 말지는 그것을 이겨내거나 그것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지만 무서움을 인정해버리고 맘껏 무서워한다면 없앨 필요도, 이겨낼 필요도 없게 된다. 그저 긴장하면서 발표를 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질 뿐이다.
진짜 사자는 매우 용맹해 보이고 멋있어 보인다. 밀림의 왕이고 그 무엇도 그것의 분위기를 이길 수 있는 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진짜 사자는 안다. 자신에게도 약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그것들은 살아있기에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것들이니까. 그들 중에도 사냥 하러 가는 것에 무서움을 느낄 것이고 동료가 다치는 것을 힘들어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기꺼이 안고서 고고하게 걷고 경이롭고 깊은 포효를 뿜어낸다. 그러한 모습은 가짜 사자상이 나타날만큼 멋진 모습이지만 가짜는 그런 긍정적인 모습만 원할뿐이다. 하지만 진짜는 부정적인 것들도 받아들이며 행동한다. 그러니 쪽팔리는 것도, 누군가 날 싫어한다는 것도, 눈치 보는 것도, 우울해하고 용기가 없는 것도 모두 내가 느껴도 되는 것으로 허락만 한다면 우리는 모두 리얼 라이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