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는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야카와 베베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그런데 야카님...”
마야의 부름에 야카가 고개를 들었다. 마야는 순진 무구한 얼굴은 한 채로 천천히 입을 땠다.
"멸망이 뭐에요?"
마야가 내뱉은 물음에 야카는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이 밟고 있는 이 땅이 '빛의 요람'임을 떠올렸다. 멸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어린 거신을 두고 이 오래된 존재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두 거신 사이에는 침묵만이 흘렀고, 그러거나 말거나 베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마야에게 돌아갔다.
"이 우주가 아주 크나 큰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지. 다시 말하면 네 별이 위험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야카가 열심히 말을 골랐다. '위험'이라는 말에 마야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지만, 그 위험의 규모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야카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그건 네가 결정해야 해.”
야카가 마야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뿐이었다. 멸망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어떻게 할지 물을 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야카는 잘 알고 있었다.
“제가 결정하라고요? 어떻게요?”
“말 그대로란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거야. 네 별이니까. 너도 알다시피 별의 운명은 그 별을 소유한 거신만 알 수 있으니, 원한다면 이대로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도 있단다. 하지만 너무 걱정된다면…”
야카의 손짓에 천막 문이 휙 열렸다. 그 너머로 하트의 중심, 마망의 궁전이 보였다.
“요람의 주인인 이데아에게 보고를 올릴 수도 있겠지.”
“마망 ‘이데아’요?”
야카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마야는 시선을 조금 낮춰 궁전 바로 아래에 붙어 있는 아카데미를 봤다. 마망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베베는 파괴될 것이 틀림없었다. 요람에 위험이 될 이런 존재를 마망이 내버려 둘 리가 없으니까. 야카의 예언은 틀린 적이 없었다. 별이 없으면 자신은 이대로 아카데미에 입학할 자격을 잃는다. 그러나 이 순간, 마야에게는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고 꺼림직한 일이 있었다.
“베베…”
마야는 한 손으로 베베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작은 얼굴에서 빛나는 두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이 작은 별을 죽게 내버려 둬야 한다니. 마야는 슬픈 얼굴로 야카에게 물었다.
“얘가 우주를 멸망시킨다고요? 어떤 식으로요?”
“그건 나도 알 수 없단다. 내가 보는 건 결과야. 하나의 결과로 도달할 수 있는 수많은 길은 뭉뚱그려져 있지.”
그건 사실이었다. 야카의 예언은 확실했지만, 동시에 모호했다. 야카조차도 한 존재의 삶을 매 순간으로 나눠 읽어낼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렴.”
야카의 말에 마야는 ‘옴말라쉬’를 떠올렸다. 운명에 순응할 것.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 말 것. 그것은 운명을 대하는 가장 현명한 자세였다.
“네.”
야카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마야는 천막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하트의 중심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베베가 따랐다.
‘생각해 보면 베베를 들어 올렸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어. 아무리 별이 단단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작은 몸으로 바닥에 부딪혔는데 아파하는 티를 하나도 내지 않았잖아.’
베베를 돌아보며 마야는 계속 생각했다.
‘성격도 다른 별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 같아. 이제보니 빛의 갈래도 다섯 개가 아니라 여섯 개네.’
별을 만났다는 기쁨에 취해 마야가 잠시 잊어버린 사실이었지만, ‘6’은 빛의 요람에서는 불길한 숫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마야가 미간을 구기고 발걸음을 멈췄다. 눈앞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다. 하나는 워커들이 궁전으로 들어갈 때 사용하는 작은 입구였고, 다른 하나는 아카데미의 정문이었다. 마야는 자신이 망설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는 않았다. 자신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요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먼저 생각했다. 이런 식이라면 로스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요람을 잃어 전 우주를 떠돌아다니며 루카를 구걸하는 작자들. 물론 개중에는 나름대로 유능한 이들도 있었다. 그런 로스트들은 야카만큼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대우를 받았으며 종종 다른 요람들에 들러 일을 하고 보수를 받아 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로스트들은 책임감도 뭣도 없는 부랑자들이었다. 책임감. 마야는 그 단어를 되뇌이다가 주먹을 꾹 쥐었다. 그리고 그 손을 뻗어 아카데미 정문을 당겨 열었다. 겁이 났지만 마야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마야는 자신이 베베를 죽게 내버려 두는 쪽을 더 후회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자, 베베.”
마야는 여전히 멸망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베베를 향해 미소 지었고, 둘은 빛이 가득한 아카데미의 연회장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