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시계에는 자갈이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린 마야는 몹시 다급해졌다. 그래서 급히 몸을 일으키고는 온도가 높은 곳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별을 찾은 거신들이 별들을 데리고 떠난 탓에 더스트 링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마야는 더 빨리 달리려고 다리를 크게 내디뎠다. 하지만 그러는 바람에 오히려 발이 꼬였고, 다시 한번 바닥에 구르고 말았다.
‘이대로 끝인 걸까?’
마야는 너무나 비참한 나머지 일어설 생각도 못하고 가만히 앞 날을 상상했다. 유모의 말대로 별을 돌보는 일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그러나 어느 것도 마야가 바라던 일은 아니었다. 일개 워커 계급의 거신도 무언가를 바랄 수는 있었지만, 그걸 드러내선 안 됐다. 이렇게 끝이 나고,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못한 다음 하우스로 돌아가더라도 마야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터였다.
“뭐야, 이건 너무 작잖아.”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실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양도 이상하네. 이런 걸 가지고 가봤자 비웃음만 당하겠지.”
마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짙은 안개 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목소리의 주인인 듯한 거신의 실루엣뿐이었다.
‘도대체 뭘 보고 저러는 거지?’
호기심에 그 거신에게 다가가려던 마야가 일어서기 무섭게, 거신은 무언가를 마야 쪽으로 던지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마야는 자기 발에 부딪힌 그 물체를 한 속으로 들어 올렸다. 무언가 가볍고 따뜻한 것이 손 위에서 느껴졌다.
“이건…”
별이었다! 다른 별들에 비해 현저히 작은 크기였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별이었다. 마야는 방금 전 그 거신이 왜 실망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이 별은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아주 작았고 안개 속에서 발견할 수 없을 만큼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무척 귀여웠다. 마야는 노란색으로 은은히 빛나는 이 별이 마음에 들었다.
“안녕?”
마야가 인사를 건네자, 별은 마야의 손 위로 가볍게 둥둥 떠올랐다. 마야는 자신의 별을 만나면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진다던 친구들의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별은 자신을 거부하고 있지 않았다. 마야는 너무 기쁜 나머지 공중에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마야는 곧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공중에 떠 있던 자갈 시계가 자신의 눈높이에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마야는 자신이 더스트 링 위로 높게 떠 올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네가 한 거니?”
덜덜 떨며 별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아기별은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반짝이며 웃고 있었다. 마야가 별에게 내려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테스트를 끝내는 징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마야와 별도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마야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던 마야는 자신이 아주 조금 바닥 위로 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마 이것 역시 아기별이 한 행동 같았다. 손을 들어 별을 들여다보니 별은 징 소리에 놀란 모양인지 눈을 말똥말똥 끔뻑이고 있었다.
어린 별들이 물체를 마구잡이로 들어 올리는 일은 흔했다. 발성을 이용하는 거신과 달리 말을 할 수 없는 별에게 있어 중력은 일종의 언어였다. 아스텔라에서 거신을 거절할 때 중력을 반대로 사용해 밀쳐내는 것이 그 예였다. 아기 거신이 제대로 말을 배울 때까지 실수하듯, 아기별들도 아카데미에 들어가 중력의 올바른 사용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자주 실수했다. 하지만 거신이나 다른 별을 들어 올리는 짓을 하는 별은 거의 없었다. 적어도 남의 몸을 들어 올려선 안 된다는 걸 별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짓은 아주 무례한 일이야.”
더스트링을 빠져나가며 마야는 별에게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아기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별은 거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존재였고, 거신이 무언가 말을 하면 별은 미묘하게 반짝였다. 마야의 아기별 역시 마야가 말을 걸 때마다 반짝이고 있었으므로, 마야는 별이 그냥 자기 말을 무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귀여우니까 봐준다, 진짜…”
마야는 한숨을 쉬고 하트로 이어진 링크를 걸었다. 아기별도 마야를 따라 태연하게 날아갔다. 아기별이 날아 이동할 때마다 반짝이는 꼬리가 몸통을 쭉 따라갔는데, 노란색의 몸통과 달리 꼬리는 분홍빛이었다. 마야는 별의 꼬리가 자신의 머리칼과 같은 색이라는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물론 빛의 요람에서 태어나는 워커 계급의 거신들은 모두가 같은 머리색이었지만, 그래도 특별해 보였다.
“설마 내가 가장 마지막인가?”
하트에 도착한 마야는 야카의 천막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며 불안해했다. 시험관의 말대로 시험 시간 내에만 별을 찾으면 아무 문제 없었지만, 그래도 야카의 천막이 세워진 크리스탈 정원에 혼자 들어가려니 싱숭생숭했다.
“그래, 꼴찌라고 무슨 꼬리표가 붙는 것도 아닌데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게다가 너도 있으니 완전히 혼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지?”
마야가 애써 미소 지으며 별에게 말했다. 그러나 별은 그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은은하게 빛나는 분홍색 크리스탈을 지나쳐 천막으로 향했다.
“적어도 어딜 가야 하는지는 이해했나 보네.”
마야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별을 따라갔다. 거신보다 앞서 걷는 저 천방지축을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머리가 무거웠다.
“옴말라쉬.”
천막 앞에 선 마야가 경건한 마음으로 야카에게 인사했다. 옴말라쉬란 전통적으로 야카의 천막에 들어갈 때 사용하는 인사말로, ‘운명에 순응한다’는 뜻이었다. 별의 운명을 점치는 샤먼인 야카에게 걸맞은 인사말이었다.
“들어오렴.”
천막 안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카가 분명했다. 마야는 입구의 두터운 천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천막 안쪽은 이국적인 색채로 가득했다. 야카의 고향 요람은 아마 저런 색깔로 가득했으리라. 마야는 그렇게 짐작하며 야카 앞에 앉았다. 야카는 이미 오래전 요람을 잃은 ‘로스트’였지만, 떠돌이나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다른 로스트들과 달리 모든 거신의 존경을 받는 자였다. 그건 야카가 현존하는 모든 거신 중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존재인 데다가,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야카의 몸은 그가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는 걸 증명하는 듯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얗게 바래 있었다. 그러나 그 밖의 외관은 다른 거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직 어린 거신인 마야에 비해 세 배는 커다랬지만, 그 정도면 다 자란 어른 거신치고는 평범한 크기였다.
“네가 마지막인 것 같구나, 아가.”
야카는 인자한 미소로 마야를 맞이했다.
‘역시 내가 꼴등이구나.’
마야는 조금 슬퍼졌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지.”
야카는 마치 마야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넌지시 말했다. 그리고는 마야의 머리에 별의 시체로 만든 별가루를 뿌리며 축복의 기도를 외기 시작했다. 마야는 앞으로의 아카데미 생활이 부디 평탄하길 기도했다. 축복의 의식이 끝나자, 야카는 천막 구석에 쌓인 쿠션 위에 누워있던 아기별을 불렀다. 마야는 별이 감히 야카의 쿠션 위에 누워있었다는 사실에 기겁했지만, 야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자, 네 운명은 어떨지 한 번 보자꾸나. 이 별의 이름은 지었니?”
야카가 손끝에 올려둔 별을 바라본 채로 마야에게 물었다.
‘이름!’
야카를 찾아가기 전 어린 거신은 반드시 별의 이름을 지어줘야 했다. 그래야만 별이 예언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야는 자신이 그 규칙을 잊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쟤가 정신을 쏙 빼놓긴 했지만, 그런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다니.’
마야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별을 쳐다보았다. 당연하게도 별은 마야의 눈빛을 무시했다.
“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니?”
야카가 다시 한번 물었다. 마야는 놀라서 고개를 들어 야카를 보면서 입을 뗐다.
“그게…”
야카의 눈은 의문에 차 있었고, 마야의 머리는 하얗게 비어있었다. 아무거나 말해! 빨리! 마야는 스스로를 재촉하며 머리를 굴렸다.
“베베…요.”
“베베?”
갑작스럽게 지은 이름이었지만, 마야는 그 이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베베’를 보았다. 그러나 베베는 ‘정말 그게 최선이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야는 그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별의 이름은 베베에요.”
“그래, 알겠다. 베베. 이쪽으로 가까이 오렴.”
베베는 야카의 지시대로 그의 이마 가까이 다가갔다. 야카는 눈을 감고 조용히 베베의 미래를 읽어나갔다. 마야는 그 모습을 경외에 찬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뒤, 야카가 눈을 떴다. 마야는 야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잔뜩 기대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야카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야는 무거운 침묵을 묵묵히 견디며 야카의 예언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야카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