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돌보는 거신(巨神)이라면 누구나 이 진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꼬마 마야만이 때때로 이 문장을 떠올렸고, 별에게도 끝이 있다는 사실에 슬퍼했다. 마야는 누구에게도 그런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건 거신답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야는 종종 자신이 왜 그런 기분을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언제나 결론은 같았다.
그건….
“마야!”
마야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친구들과 나란히 ‘하우스’의 마당에 서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어린 거신들 앞에는 그들을 돌보는 유모 거신이 서 있었다. 그는 자상했던 평소 모습과는 달리 단호한 얼굴로 마야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야, 오늘이 무슨 날이지?”
마야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태연히 대답했다.
“네, 오늘은 태어나서 열두 해를 맞이하는 거신들이 참가하는 아스텔라가 열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더스트 링에서 아기 별들이 태어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
유모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어린 거신들에게 차례로 질문을 옮겼다.
“세라, 아스텔라가 무엇인지 대답해 보렴.”
“어린 거신이 처음으로 거주지역을 벗어나 더스트 링으로 나아가 자신의 아기별을 찾는 시험을 치르는 행사입니다. 별을 찾지 못하거나, 별에 계속 거절을 당하다 시험 시간이 끝나면 거신은 아카데미에 입학할 자격을 잃습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거신은 처음으로 별을 맞이하게 됩니다.”
“잘 대답했다. 그 이후에 대해서는 디어가 얘기해 볼까?”
“음, 우선 별을 데리고 하트로 가서 야카께서 머무는 천막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야카께서는 어린 거신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고 아기별의 운명을 점쳐주십니다. 그리고, 어…..”
“거기까지 얘기해도 좋아. 슈메트라가 이어서 대답해 보렴.”
“네! 그 뒤로 어린 거신은 아카데미에 입학해 7년간 별을 돌보는 법을 배웁니다. 열아홉이 되면 거신은 별과 함께 별이 붙박일 자리를 찾아 떠날 수 있게 됩니다. 별이 붙박일 자리를 찾게 되면 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에너지원인 ‘루카’를 수확해 이곳, 요람으로 보내게 됩니다.”
“좋아. 다들 잘 대답했다. 자, 오늘은 그 모든 것의 첫 발자국을 찍는 날이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자랑스러운 ‘빛의 요람’ 출신 거신답게 더스트링으로 나아가, 여러분의 선배들처럼 좋은 별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유모는 단호하지만, 너그러운 어조로 말하며 어린 거신들을 둘러보았다. 어린 거신들은 대체로 결연한 얼굴을 하고선 곧게 서 있었다. 아스텔라는 대다수의 거신들에게 중요한 시험이었기 때문에 모범생은 물론, 평소에 장난기가 많은 거신까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이 시험에 진지한 마음으로 임했다. 그런 가운데 마야만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유모는 마야가 긴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해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렴. 별을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얼마든지 있잖니? 마망 곁에서 일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나처럼 유모가 되거나 거신들의 알을 돌보는 정원사가 되도 괜찮단다. 공부를 충분히 하고난 뒤엔 아카데미에서 교수로 일할 수도 있지. 중요한 건 요람에 보탬이 되는 거지 무슨 일을 하는지가 아니란다.”
유모의 걱정과는 달리 기대로 들뜬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마야는 고개를 살짝만 들어 가만히 끄덕였다.
‘오늘, 드디어 내 별을 만나게 될 거야!’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었지만, 마야는 사실 자신의 별을 받는 그 자체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 별의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별과 함께 우주로 떠난다는 사실이 퍽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아스텔라가 별을 경영할 기회를 얻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거신들과 비교하자면 마야의 기대감은 아주 희한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자신뿐이라는 것을 마야도 알고 있었다. 거신에게 있어 별은 그저 에너지를 얻는 자원일 뿐이었다. 마야는 다시 한번 별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마음 한쪽이 구겨지는 듯이 아파왔다. 낭만이라느니, 슬픔이라느니… 별에게 그런 감정을 갖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마야는 감정적이고 생각이 많은 자신이 불량품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인 건 적어도 겉모습은 요람에서 태어난 모든 자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테니까. 정원사들은 손상 되거나 불량한 알들을 깨는 것을 주저 하지 않았다. 겉 모습에 비해 내면을 숨기기는 쉬웠다. 적어도 지난 십 이 년간은 그랬다. 그러니 별을 갖게 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야는 다른 거신들과 함께 더스트 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더스트 링은 다른 지역보다 밀도가 높았다. 덕분에 어린 거신들은 약한 압박을 버티며 힘들게 시험관의 뒤를 쫓았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가스와 먼지는 점점 더 짙어졌고, 갓 태어난 아기 별들이 내뿜는 열기 탓에 주변 온도도 점점 더 올라갔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마야는 문득 며칠 전, 친구들이 별에 대해 떠들어대던 것을 떠올렸다.
자신의 별을 만나면 가슴 한구석이 아주 뜨거워진대.
이런 온도에서 신체가 더 뜨거워질 수도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별을 찾는 신호라면 잊지 않는 게 좋겠지.’
비록 근거 없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마야는 그런 사소한 것들도 잘 기억하는 편이었다.
“자, 모두 자리에 서도록.”
시험관의 말에 어린 거신들은 모두 발걸음을 멈췄다. 마야는 곁눈질로 다른 하우스에서 온 거신들을 보았다. 낯선 얼굴들이었지만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함께 하게 될 동기들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경쟁자일 뿐이겠지.’
마야는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어떤 별이든 상관은 없었지만, 기왕이면 크고 밝은 별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건 다른 거신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마야도 잘 알고 있었다.
“시험 시간은 다음과 같다.”
시험관이 따라온 보조거신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보조는 들쳐 매고 있던 보따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매듭을 풀었다. 그 안에는 거대한 자갈 시계가 들어 있었다.
“이 자갈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 별을 찾아야 한다. 시험이 끝나면 입구 쪽의 징이 울릴 것이니 참고하도록. 질문 있나?”
“시간이 지나기 전에만 별을 찾으면 별을 인도해 하트까지 가는 건 시험 시간과는 무관하다는 말씀인가요?”
머리를 한쪽으로 땋은 한 거신이 손을 들고 물었다. 마야가 알지 못하는 얼굴로, 다른 하우스 출신인 것 같았다.
“그렇다. 하지만 야카께서는 오늘 하루만 요람에 머무시니, 그전에는 도착하는 게 나을 테지.”
시험관의 말에 질문을 던진 거신이 미소로 답했다.
“더 이상 질문이 없다면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시험관은 한쪽 손을 공중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자갈 시계가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뒤집어지면서 유리 안에 들어있던 자갈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린 거신들이 안개 속으로 달려갔다. 마야 역시 그 틈에서 같이 달렸다. 짙은 안개 사이 사이로 희미한 빛들이 일렁였다. 아기별들의 빛이 틀림없었다. 한 방향을 향해 달리던 거신들은 저마다 그 빛들을 쫓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마야는 그 빛들 중 어딜 향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나머지 자리에 멈추어 발만 동동 구르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다른 거신들은 안개 속으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마야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주변을 두리번대던 마야는 우선은 가장 가까워 보이는 빛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다른 거신이 있었고, 별과 짝이 되어 하트를 향해 떠나고 있었다. 마야는 당황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다른 빛을 향해 달려갔으나 같은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마야는 계속 내달렸고, 더스트링 이곳저곳에서는 기쁨의 환호가 들려왔다. 어느새 시간은 절반 가까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야는 지쳐서 잠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야, 이럴수록 침착해야 해.”
그렇게 말하며 마야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쿵쾅대는 심장이 진정되자, 마야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신중하게 주변을 살폈다. 아주 먼 곳에서 몇몇 별빛들이 보였다. 그러나 너무 흐릿했다. 하지만 마야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조금 뚜렷한 빛무리를 발견했다. 마야는 그 빛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가스와 먼지들을 손으로 살살 헤쳐가며 빛 앞으로 나가자, 그곳에는 마야의 몸집만 한 크기의 푸른 별이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다지 큰 크기의 별은 아니었지만, 다섯 갈래로 산란하는 빛의 형태가 무척 아름다웠다. 마야는 자신도 모르게 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별도 마야에게 서서히 다가왔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마야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아얏!”
그 순간, 갑자기 마야의 시야가 까매지더니 등에서 큰 고통이 느껴졌다. 별이 반중력으로 마야를 밀쳐 바닥으로 내팽개친 것이었다. 마야는 등을 쓸며 자리에 앉아 푸른 별을 올려다 보았다.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더는 마야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건 명백한 거절이었다. 어떤 이유이든 이 별은 마야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마야는 자신이 별에게 거절당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안타깝게도 마야는 이런 상황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아스텔라에서 탈락하는 거신이 3분의 1은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자신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사이 다른 거신이 푸른 별에게 다가갔다. 시험이 시작하기 전, 시험관에게 질문을 했던 그 거신이었다. 별은 이번에도 천천히 다가가 땋은 머리를 한 거신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는 곧 그 거신의 곁에 섰다. 거신은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마야를 슬쩍 쳐다보더니 별을 이끌고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