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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영 Oct 03. 2023

11.대공허(1)

마야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붙잡힐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마야가 가만히 한쪽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마야의 눈에 들어왔다. 색이 바랜 크리스탈이 이곳 저곳에 장식 되어 있는 높은 천장을 보며 마야는 자신이 누워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어났구나.”


익숙한 목소리에 마야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색이 바랜 크리스탈. 그것은 고향을 잃은 떠돌이들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떠돌이들에겐 크리스탈은 쓸모가 없었다. 장식을 할 만큼 필요하지 않은 것은 더욱 당연했다.


“그렇게 급히 일어날 필요는 없단다.”


마야는 놀라 목소리의 주인을 올려다 보았다. 야카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마야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대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는 그러니까……. 그래, 빛의 요람 기준으로 이야기 해주자면 반 나절을 쓰러져 있었단다.”


“제가요?”


“그래. '반 나절'쯤 전에 갑자기 네가 이 곳에 나타났어. 정신을 잃은 채로 말이지.”


야카의 말에 마야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여긴…….”


“내 거처라고 하면 알아듣기 쉬울거란다. 다른 거신들은 ‘대공허’라고 부르는 곳이지.”


대공허. 별은 우주 위에 일정하게 놓여 있지 않았다. 우주를 멀리서 볼 수 있다면 별이 많이 모여있는 곳과 단 하나의 별도 빛나지 않는 곳을 관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별이 단 하나도 없는 곳, 멀리 빛나는 별빛만이 겨우 닿는 곳을 거신들은 ‘공허지대’라고 불렀다. 야카의 거처는 그 공허 중에서도 가장 넓었다. 어떤 이는 그 곳이 야카의 고향이 있던 자리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요람이 죽고 시간이 더 흐르면 요람을 이루던 것들이 점점 밀려나 공간을 비우기 때문이었다. 그런 텅 빈 공간에 자신이 갑자기 나타났다니, 마야는 그 이야기를 이해 할 수 없었다.


“혹시 무슨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되니?”


야카의 물음에 마야는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곧 그동안 겪었던 일들에 대해 털어놓았다.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을 지나 연구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던 찰나, 이야기를 듣던 야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근처에 있는 커튼을 열었다. 커튼 너머에는 베베가 작은 쿠션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베베!”


마야가 베베에게 달려가려하자 야카가 마야를 제지했다.


“저 애는 아직 더 자야 할 것 같으니 깨우지 마렴.”


“하지만…….”


“다치거나 목숨이 위험한 상태는 아니야. 그저 많이 피곤한 것 뿐이란다. 너와 자신을 이곳 까지 옮기느라 말이지.”


“옮겼다고요?”


“그래.”


야카가 베베의 머리 위로 담요를 덮으며 대답했다.


“네가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해봤을 때, 네 별에게는 강한 힘이 잠재되어 있는 것 같구나. 이데아가 하려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힘과 관련이 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마야는 야카의 예언을 떠올렸다. 우주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이야기. 혹시 그건 이 힘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베베를 위험한 존재로 만드는 것인지 마야는 알 수가 없었다.


“고대에 살던 어떤 별들은 닿은 물체를 먼 곳으로 이동시키는 힘이 있다고 들었어. 중력을 이용해 공간을 휘어버리는 거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데아가 힘을 탐낼만도 하겠구나.”


“마망이 베베의 힘을 원하신다고요? 어째서요?”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겠구나. 어쨌거나 나도 이데아에겐 떠돌이 중 하나일 뿐이니까. 이방의 존재 말이다.”


“하지만 야카님은…….”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오래전에 멸망한 요람 출신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아. 요람의 기밀이 있다면 그걸 로스트에게까지 알려줄 리는 없잖니?”


야카가 조용히 미소지었다. 마야는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마야가 확실하게 이해 할 수 있는 진실은 오직 베베가 자신을 구해주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마야는 베베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이 든 아기 별들이 그러하듯 베베는 특별히 빛을 내지 않았지만, 열기가 느껴졌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니?”


야카가 넌지시 물어왔다. 마야는 침묵을 지켰다. 정확히는 할 말이 없었다. 제대로 된 계획을 가지고 요람을 떠난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는 그마저도 틀어졌다. 이번엔 베베의 잘못도 아니었다. 자신이 제대로 숨어 있지 않은 탓이었으니까.


“저는 그냥 베베가 죽지 않기를 바랐어요.”


마야가 한숨을 내뱉듯이 말했다.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는 건 저도 알지만, 그래도 제 별이 죽는 걸 지켜만 볼 수는 없었거든요.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그 바람은 여전해요. 문제는 방법을 모른다는 거지만요.”


“이 별을 운명으로부터 구하고 싶다는 뜻이니?”


“네.”


마야는 이 대답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운명에 대해 점지해 준 야카 앞에서  그 운명을 부정하는 말을 하다니, 당장 쫓겨나더라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야카는 화를 내기는 커녕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벽으로 천천히 걸어가더니 책 한권을 꺼내 왔다.


“아가, 네가 도서관에서 보았다는 책이 혹시 이거니?”


그렇게 말한 야카가 마야를 들어 책 위로 올려주었다. 책에는 <탈라리움>이라는 글씨가 박혀 있었다. 마야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럼 혹시 ‘우주의 현자’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니? 이 책을 쓴 거신이란다.”


“아니요, 처음 들어봐요.”


“오, 그는 무엇이든 알고 있단다. 먼 옛날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모아 이 책을 몇 권 만들었는데 나에게도 한 권 주었지. 하지만 그를 만나기는 건 쉽지 않아. 찾아가기 힘든 곳에 은거하고 있거든. 공허지역 중 한 군데에 사는데, 그 지역은 중력장이 엉망이라 보통의 배로는 갈 수 없어서 말이지.”


야카가 책을 덮으며 현자에 대해 열심히 설명 했다. 그러나 마야는 야카가 어째서 자신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 수 없었다. 의문에 찬 마야의 얼굴을 발견한 야카는 소리내 웃으며 마야에게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갑자기 멋대로 이야기를 늘어놔 버렸지?”


“아, 아니에요. 저는 그저…….”


“아가, 다시 한번만 묻자꾸나. 네 별을 운명에서 구하고 싶다고 했지?”


야카가 조용히 물었다. 마야는 조금 긴장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방법을 하나 알려주마.”


“방법이요?”


“솔직히, 확실한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어.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알려주마.”


야카가 고개를 숙여 마야를 바라보았다.


“알고 싶어요. 가능성이 있다면 뭐든지요!”


“좋아, 그렇다면 알려주도록 하지. 아까 말한 현자 말이다. 그를 찾아가는 거야. 그라면 운명을 바꿀 방법에 대해 알지도 모르거든. 아까 말했듯이 그는 뭐든지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쉽게 찾아갈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물론 그렇지. 그런데, 나에겐 그에게 갈 수 있는 배가 있단다. 네가 원한다면 빌려주도록 하마.”


“그게 정말이세요?”


“그럼.”


마야의 물음에 야카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자, 이제 가볼까?”






밖에 나와서야 마야는 야카가 사는 곳이 거대한 동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다지 크지 않은 암석 위에 자리잡은 동굴은 우주에 덜렁 놓여 있어서, 시동 중인 중형 우주선 처럼 보였다. 그 주변은 대공허라는 이름답게 텅 비어 있었다. 하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요람과 비교하면 너무나 적막한 공간이었다.


“자, 이건 내가 더 이상 쓰지 않는 배란다.”


야카가 동굴 밖에 매달린 천막을 열며 동그란 배를 하나 꺼냈다. 야카가 빛의 요람에 올 때마다 타고 오는 마차에 비하면 낡고 작았지만, 마야에겐 충분히 큰 크기였다.


“이 배에는 특별한 요술이 걸려있지. 앞에 놓인 장애물을 피해 어떤 길이든 찾아갈 수 있어.”


“와, 멋져요. 그런데 요술이 뭐예요?”


“고대의 거신들은 저마다 요술을 부릴 수 있었단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 이제 그런 능력을 가진 거신은 많지 않지. 요람의 주인인 마망들이나, 아니면 미래를 볼 수 있는 나 정도야.”


야카의 대답을 들은 마야는 잠시 멈칫댔다.


“왜 그러니?”


야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제게 배풀어주신 친절은 정말 감사드려요. 그런데 실례가 아니라면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뭐든 물어보렴.”


야카가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마야는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왜, 저를 도와주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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