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균형을 잃고 무언가에 집착하는 분들에게
2023년 초부터 경제적인 압박이 크게 느껴졌다. 점점 금리가 올라가고 담보대출이자가 높아졌다.
설상가상으로 마이너스 통장의 이자 또한 무서운 기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남편이 우리 마이너스 통장을 빨리 없애야겠다며 걱정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화실비로 제법 큰 액수를 쓰고 있었는데, 남편과 경제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스로 화실비가 부담스러워졌다. 더 정확히 말하겠다. 화실을 다닌 지 3년이 가까워 오고 있었는데, 뚜렷한 아웃풋이 없는 유지 답보상태였기에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뜨끔했다.
화실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머릿속에 가득 찼지만, 바로 실행하지는 못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고 내가 무엇 때문에 주저하는지 계속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혼자 계획을 세워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같이 서로를 북돋아 주며 일을 진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달리 말하면 혼자서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는 취약하다는 말도 된다.) 그런 이유로 화실을 다니기로 한 것인데 그 넛지가 사라져도 괜찮을까? 화실을 그만두면 그림 그리는 동료들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정말 괜찮을까? 나는 아직 배울 것이 한 트럭은 더 남은 것 같은데 지금 그만둬도 될까? 정말 “혼자” 할 수 있을까? 나에게 그림은 취미가 아니라 내가 마지막으로 꾸는 오랜 꿈이었기에 고민은 날로 무거워져만 갔다.
화실에 대한 온갖 상념들( 더 정확히는 그림에 대한!)을 뒤로하고 내 씀씀이를 먼저 돌아보았다. 한 달 생활비를 정해 그 안에서 쓰려고 노력했지만 종종 변동지출이 있었다. 매번 몇십만 원씩 넘기기 일쑤였고 정신을 차리지 않고 마구 써댈 때는 정해놓은 생활비를 크게 벗어나기도 했다. 지출을 통제해야만 했다. 고민 중에 그동안 눈여겨보던 가계부 소모임에 들었다. “지금은 전업주부”인 나는 가계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그림에만 쏠려있던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조금씩 가벼워졌다.
몇 달 뒤 나는 내 두려움을 마주하기로 했다.
화실을 그만두었다. 딱 만으로 3년 되는 시기였다.
화실을 그만두고 나서 며칠은 정말 공허했다. 화실 단톡방에서 서로 그림에 대해 진지하게 나누는 이야기, 저녁마다 올라오는 산책 사진들이 그리웠다. 그 감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그런 나를 달래주려고 혼자 숲으로 산책을 많이 다녔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화실은 넛지가 되어줄 수는 있지만 결국 나 자신의 계획은 스스로 연구하고 실험해 보면서 나에게 맞는 옷을 내가 찾아 입어야 한다는 것. 인간관계는 흐르는 생명체와 같아서 계속 흐르기에 그때그때 나에게 제일 좋은 인연이 찾아와 준다는 것. 그 인연은 내가 마음만 열고 있으면 언제나 찾아온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림을 중심으로 내 인생 계획을 세웠다면 지금은 내 삶의 균형을 생각한다. 언제나 내가 중심이고 그 뒤에 가족이 있고 그 뒤에 내 꿈이 있다.
그림으로 몸부림쳤던 나를 용서해라
나는 눈에 비치는 것에 정신이 팔려,
삶에는 너무 소홀했다.
-고흐, 나의 형/이세 히데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