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퇴사일기 25화

나만 힘든 것일까?

퇴사 일기 #25

by 키르히아이스

퇴사에 대한 내 생각과 경험을 담은 이 책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쓰려고 했던 것은 회사 생활하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글로나마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나에겐 이 책의 출간 자체가 힐링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았으니 말이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게 없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기쁘지 않은데 기쁜 척, 아닌데 맞는 척을 못 한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항상 그런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런 게 너무 싫었다.


10년간의 회사생활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완전히 다른 업종의 회사들에 다녔기 때문에 남들보다 색다른 경험도 많이 할 수 있었고 서로 비교가 가능했다. 그래서 미련 없이 회사라는 울타리를 떠나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실패도 많았지만 지금까지의 내 경험들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책으로나마 그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얼마 전 퇴직 후 처음 맞는 연말은 남다른 기분이었다. 왁자지껄한 회식도 없었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도 없었다. 고향에 한 번 내려갈 만도 한데 내가 계획해둔 일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참기로 했다.


대학 졸업 후 줄곧 직장인이었던 내가 이렇게 글 쓰는 작가가 되었다. 내가 작가가 될 것으로 생각한 지인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원래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만약 회사에서 ‘읽는 자유’라도 허용이 되었다면 이렇게 전업 작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취직하고 나서는 책을 읽기가 어려웠다. 일에는 기계처럼 익숙해졌지만 내가 꿈꾸던 생활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원했던 회사생활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해서 저녁에는 한두 시간이라도 그날 하루를 되새김할 수 있는 그런 삶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지고 아침에 눈 뜨면 전속력으로 회사를 향해 달려가는 그런 일상을 평생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들 부러워하는 회사와 연봉이 눈앞에 있었지만 정상적인 삶으로는 그것을 붙잡을 수 없었다. 옳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누구나 가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번씩 해볼 것이다.


‘나만 힘든 것일까?’

‘힘들다고 느끼는 게 비정상인가?’

‘내가 너무 나약한 것인가?’


나는 불합리한 것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고 일에 대한 의욕도 떨어지는 편이다. 회사에서는 그런 불합리한 일을 계속해야 했고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었다. 생각하지 말라는 직장 상사의 주문이 이어졌다. 누가 나를 좀 설득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누구도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렇게 10년 넘는 회사생활 끝에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고 이것을 회사 속에서는 구현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shutterstock_headAche.jpg

내 생각을 포기하고 남들처럼 행복을 찾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내가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내 시간과 생각, 건강, 의지까지 다 양보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옳다면 실행을 미뤄야 할 이유가 없다. 지금 할 수 없다면 내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지만 난 이 말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행복을 미루지 마라. 오늘 행복하지 않다면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


언제나 미래만 보고 사는 삶은 싫다. 하고 싶은 일을 미래로 미루면 그때 가서 미래의 논리에 의해 또 밀려날 것이다. 오늘부터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해도 그것이 찾아질지 알 수 없다. 하물며 평생 사회에 맞춰가려고만 하다가 언제 내 삶을 찾을 것인가? 나중에 하겠다고 미루다가는 영영 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렇게 해볼걸.’


항상 이런 후회만 하고 있다면 지금이 바로 기회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내 길을 찾아야 한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진흙탕에 넘어져도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


새해를 맞는 나의 기분은 지난 몇 년과 다르다.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그게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출근할 때 땅만 보고 한숨을 내쉬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시끌벅적한 연말 회식 자리에서도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내일 또 불합리한 일을 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 “리멤버(이 멤버 리멤버)!”를 외치는 건배사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회사원이 아닌 지금의 나에게 연말과 새해는 하루가 지난 것 말고는 큰 차이가 없다. 그저 새로운 하루,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얼마 전에 친한 직장 동료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순간적으로 전화를 받을까 고민했는데 나를 걱정하는 소리라면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 걱정을 들으면 더 자신이 없어진다. 용기를 내서 전화를 받아보니 다행히 다들 응원만 해주었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가끔 연락해 주는 그들이 고맙다. 난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런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shutterstock_LeadingBoss.jpg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불완전한 인간이다. 내가 대단해서 이 책을 통해 조언하는 게 아니다. 먼저 경험해봤고 실패도 해봤기 때문에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배워야 하고 경험해야 하는 Beginner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직장동료를 사람 대 사람으로 친해지려고 했다. 일찍부터 나는 회사형 인간이 아니었다. 나한테 도움이 되든 안 되든 마음이 통하면 친하게 지냈다. 부서장이 찍어서 괴롭히는 사람과도 잘 지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더 그의 편이 되었다.


이익이 되냐 안되냐는 애초 생각도 안 했지만 생각한다고 해도 결국 현재 기준에서 생각한 것일 뿐이다. 지금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그렇게 친해진 사람들은 항상 내 옆에 있다. 그것만으로 나는 이미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부하직원은 무시하고 오로지 위만 쳐다보고 사는 생활은 싫었다. 내 옆의 동료가 중요하고 그게 내 자산이었다.


내가 회사를 나올 때 눈물 흘리던 선배, 후배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래도 내가 회사생활을 완전히 잘못한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동료는 혹시 다른 회사에 취직이 안되거든 자기가 소개해주겠다고까지 했다. 그냥 말이라도 고마웠다. 이익과 상관없이 친해진 사람들은 이렇게 항상 내 곁에 있다. 내가 줄 수 있는 게 없어도 먼저 도와주려고 한다.


많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나와서 시행착오가 있었다. 모든 일은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단지 그것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내 경험은 이런 일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출판이 안 되더라도 어딘가에 썼을 내용이다. 내가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shutterstock_scream.jpg

퇴사 후에는 늦게까지 일하는 날도 많고 휴일도 없이 내 일에 매진하고 있다. 회사에 있을 때는 그렇게 하기 싫은 야근이었는데 이제는 피곤함보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열심히 한 일이 직장 상사의 말 한마디로 물거품이 될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고 내 계획대로 한 일이기 때문에 후회도 없다.


이 일의 결과물은 온전히 내가 받을 것이고 그 책임도 내가 질 것이다. 누군가의 지시로 이해되지도 않는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내 일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방향도 내가 결정하고 있다. 그래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의욕이 느껴진다.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일이다.


회사에서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우리나라 회사에서는 아직도 합리성보다 조직 논리에 치중하고 있다. 어떤 의견도 조직 논리로 깔아뭉갤 수 있다. 내가 싸워서 바꾸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바뀌게 될 것이다. 내가 좀 빨랐을 뿐이다. 내가 말하고 생각한 것이 10년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길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글을 읽고 시원하다고 말해주는 분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힘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현실이 서글프기도 하다. 그러나 이 말은 해줄 수 있다. 당신이 걱정하든 하지 않든 세상은 변하고 있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변화의 싹이 트고 있다.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 지어진지 모르는 빌딩이 도심에 들어서는 것처럼 사회는 갑자기 변해있을 것이다. 그때 당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당당하면 된다. 그리고 그 문화의 주역이 돼서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면 된다.


나도 힘들었으니 너도 고생해보라는 심보는 버려야 한다. 나는 힘들었지만 너희들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누리라고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런 생각을 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아주 작은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퇴사 후 1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전반적인 소회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갔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충분히 했다는 것이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살면서 이렇게 하루하루 납득되는 삶은 없었다. 단순히 편한 삶보다는 이해할 수 있는 삶이 살고 싶었다.

shutterstock_CloudyWindow.jpg

회사생활이 마음에 안 든다고 모든 사람이 퇴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다른 환경에 가도 얼마든지 잘해나갈 사람들이 있다. 퇴사 이후의 삶은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직이든 퇴사든 새로운 삶을 향해 가는 것인 만큼 내 행복을 최고의 기준점으로 삼아야 한다.


‘여태껏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 결심이 필요하고 때로는 가진 것을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다. 위험 부담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꿈만 꾸는 삶보다는 백번 낫다고 생각한다. 도전할 기회가 있다면 도전하는 것이 그런 기회조차 없었던 삶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선택지가 있다면 충분히 고민한 뒤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 결행하도록 하자.


이 책에서는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회사생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내 퇴사에 대한 경험을 쓰고 싶었다. 책을 써놓고 많이 수정했지만 그게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여러 회사에 다니면서 그들만의 회사 문화를 접해보지 못했다면 이렇게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경험도 없이 수많이 책들이 나오는 요즘이지만 그런 식으로 가식적인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이직, 퇴사에 대해 유연한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회사는 전쟁터, 회사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있다. 회사원들이 계속 우물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마력이 있는 말이다. 이게 실제로 회사원들이 만들어낸 말인지도 의심이 간다.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회사는 전쟁터가 맞다. 그런데 회사 밖은 지옥일 수도 천국일 수도 있다. 회사가 주는 것을 밖에서도 똑같이 바라는 사람에게는 지옥일 것이고 누군가 주는 것을 바라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내는 사람에게는 천국일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조금 용기를 얻었기를 바란다. 삶을 바꾸는 것은 용기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용기는 별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퇴사 일기를 읽은 것만으로도 당신의 용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나머지는 행복해지려는 당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keyword
이전 24화퇴사가 남긴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