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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Sep 26. 2022

난 내 이름 별로야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름'

ㅇ ㅣ ㄹ ㅡ ㅁ

말로 할 때는 몰랐는데 글자로 적고 보니 모양새가 생경하다.


자기 이름을 안 좋아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한다.

희소해서다.


이제껏 살면서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딱 한번 만났다.

그림을 배울 때 옆자리에서 같이 배우던 사람이었다.

그림 이야기를 하다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이름을 묻길래 알려주었다.

"전 김두경이라고 해요."

"예?!! 엄마야! 저도 두경인데."

"진짜요? 우와아!"

"저 이때까지 이 이름인 사람 한 번도 못 봤어요. 처음이에요!"

"저도요!"


우린 손을 맞잡고 방방 뛰었다. 성만 다르고 같은 이름이었다.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을 만난 기분이 묘하고 신기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우리 이름 너무 별로지 않아요?"

"아니 왜요? 난 내 이름 좋아하는데."

"너무 남자 같잖아요. 뜻도 안 좋고."

하긴 남자 이름이란 말을 들어 검색을 해 본 적이 있다. 죄다 남자였다. 중성적이라 더 괜찮구만. 그런데 뜻이 안 좋다는 건 무슨 말이지?

"뜻이 왜...? 한자가 어떻게 되는데요?"

"막을 두에 옥빛 경요."

"어머! 저랑 뜻도 똑같아요!"  

"신기하네. 막을 두 쓰는 사람 잘 없던데. 이름도 맘에 안 드는데 옥빛까지 막는다니까 더 별로잖아요. 안 그래요?"

"아, 저랑 완전 반대로 알고 계시는데요?"

갸우뚱하는 두경 씨에게 나의 뜻풀이를 알려주었다.


"빛은 밖에서 들어오는 게 아니에요. 옥빛은 내 안에 있어요. 내 안에 가득 찬 빛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지 않게 막아야죠. 얼마나 좋은 뜻이에요?"

"네??? 헉!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그러니까 두경 씨 이름을 좋아해 봐요. 바꾸실 것도 아니잖아요."

두경 씨는 한참을 멍한 얼굴이었다.


그로부터 두경 씨를 몇 번 보지는 못했다.

벙찐 표정의 그 짧은 순간이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그의 관점을 바꾸었기를.

나와 이름이 같은 두경 씨가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살고 있으면 좋겠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름은 평생 나와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

이름에 만족하면 계속 그렇게 잘 살면 된다.

그런데 이름이 맘에 안 들거나 뜻이 좋지 않다면?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아껴주면 된다. 빛의 발원지를 밖에서 안으로 바꾼 것처럼. (아, 물론 내 경우는 원래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흔한 이름은 그만큼 좋은 뜻과 어감을 갖고 있어 많은 이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친숙한 데다 같은 이름을 가진 지인이 한 명쯤 있어 금세 정이 가고 친근감이 들어 좋다.  

드문 이름은 희귀하기에 한번 더 되새겨보고 기억에  오래 남기도 한다. 나만 지닐 수 있는 특별함이 있어 좋다.

렇게 정신 승리하며 살아보는 거다.


내 삶은 내가 만들어가듯

내 이름도 내가 가꾸어가는 것이다.



거울 속의 오리? 거위?처럼 나랑 같은 이름의 사람을 만났다  photo by dud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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