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두니 Feb 15. 2022

아빠는 언제 오실까

잠이 매달린 눈꺼풀을 비비며 레인지 전원을 켠다.

된장찌개가 데워질 동안 블라인드를 걷어야지.

차가운 베란다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조금 더 있다가, 베란다가 좀 더 데워지면 나가야지.

아침 해가 배어있는 블라인드를 멍하니 쳐다보다 소파에 몸을 누인다.


전화벨이 울린다.

이 아침에 누가.

아빠의 전화다.

아침 먹지 말고 기다리라 신다.

오늘 정월대보름이라 엄마가 나물이랑 찰밥을 했단다.

당신 아침 드신 후 우리 집으로 배달해 주신단다.


오늘이 보름이에요? 힘들게 뭐하러?

말이 혀끝에 걸렸지만 뱉지 않았다.

쇠심줄 옹고집의 결정은 변하지 않을 거고 이런 말은 사족일 뿐이니까.

그 사이 식구들은 된장찌개를 먹고 집을 나섰다.

나도 아침을 먹고 커피를 내렸다.


바로 노트북을 열어 글을 써야 하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아빠는 언제 오실까?

한 시간도 더 지났는데

아빠는 연락이 없다.


아빠의 낡은 소렌토는 문제없이 오고 있을까?

폐차를 해도 서운치 않을 차를

선뜻 새 차로 바꿔드리지 못하는 무능한 딸은 걱정만 하고 있다.

면허증을 반납해야 할 연세라 운전을 말리고 싶지만

드라이브를 진정 즐기는 아빠가 스스로 그만두는 날이 오겠거니 두고 보고만 있다.


아빠는 언제 오실까?

뭘 또 바리바리 싸서 온다고 늦는 거면 다행이겠건만.

어젯밤 흰머리 두 가닥을 발견해 슬퍼하고 있는 나이 든 딸에게

뭘 그리 챙겨 먹이겠다고 배달까지 해 주시는지.

하필 엘리베이터 정기점검을 한다는 방송이 나오고

아빠는 아직 소식이 없고.

 

이제 이런 거 안 챙겨도 되는데, 하며 투덜거리는 철없는 딸은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걱정이 한가득이다.

지금 어디쯤 지나고 계실까 떠올리며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덧.

결국 아빠는 10층을 계단으로 내려가셔야 했다.

- 아빠, 괜찮으시겠어요?

- 발만 들면 내려가는데 뭐, 들어가라.

계단 손잡이에 비치는 아빠 그림자를 길게 길게 바라보았다.


by duduni
by duduni


이전 18화 오래된 물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