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길이 공사 중으로 혹은 산사태로 막혀버린 것 같은 날들의 연속이다. 출력될 거리는 없고 입력에 몰두하고 싶은 요즈음이다.
책상에 앉아 책 대신 서랍을 여는 아이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노트북 대신 TV를 켰다. 리모컨을 누르는 순간에도 그런 선택을 한 나를 비난하면서.
[세계문학기행 - 문학의 길을 걷다.]
제목에 끌려 잠시 멈칫하는데 화사한 파리의 풍경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나도 모르게 리모컨을 내려놓고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작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였다. 그의 책을 끝까지 제대로 읽은 것은 없지만 똘망한 이미지와 그나마 읽었던 부분들의 내용이 매우 기발했던 것이 호의적인 인상을 주었던 작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표적 작가이기도 하다.
그를 만난 곳은 한 카페다. 그는 매일 이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고 한다.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머물며, 지인이 지나가면 악수를 나누고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들을 들으며 글을 쓴다.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인사를 나눈 후 바로 글쓰기를 이어가는 것 말이다. 베르베르의 단골 카페를 일부러 찾아오는 팬들도 많은데 그 북적이는 틈에서 글을 쓸 수 있다니. 한 번에 몇 가지 일을 하는 작가라고 하니 이런 집중이 가능한 것 같다.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그 카페를 찾는다고 했다.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까지 한 영화도 있다고 한다. 글쓰기로도 바쁠 텐데 영화까지 할 생각을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자신은‘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영화든 책이든 모두 이야기를 전하는 수단이니.
그림과 글쓰기를 병행하기가 힘들기도 하거니와 어느 하나에 집중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좋은 답을 들었다.
스케줄로 바쁜 그가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바로 '산책'이라고 한다. 산책을 하면서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어? 나랑 비슷한데!
그는 숲에서의 명상뿐 아니라 집에서도 명상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상상력의 원천을 묻는 질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라고 답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며 소설가로 살면서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유대가 지속되기 힘든 것이다.
나 또한 너무나 공감하는 바였다. 그와 나는 우선순위를 다르게 두고 있었다. 잦은 모임들이 한창 스트레스로 다가오던 때였다. 그 시간을 할애하고 나면 나의 창작 시간은 없었고 그것이 나의 딜레마였다. 코로나 상황이 본의 아니게 그 스트레스를 정리해주긴 했다. 앞으로 나의 삶의 우선순위를 재고해 봐야겠다.
by duduni
과학잡지 기자로 7년을 일한 후 첫 데뷔작이 [개미]였다. 어릴 때부터 자연에 관심이 많던 그는 개미를 직접 키우기도 했다. 소설 [개미]를 쓰는 데 12년이 걸렸다고 한다. 6년 동안 출판사에 의뢰했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실망하거나 좌절하진 않았냐는 물음에 그는 그저 '더 발전해야 할 부분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단다. 출판사에서 글이 별로라고 할 때마다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썼다고. 슬퍼하거나 절망적인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의기소침해진 내게 실낱같은 희망과 반성을 동시에 준 프로그램이었다.
엄마로 아내로 주부로 띄엄띄엄 일이 들어오는 프리랜서 작가로 살면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녹록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이 또한 핑계일지 모른다. 일하는 엄마들도 거뜬히 자기 삶을 잘 꾸려 가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글 쓰는 작가들도 있으며, 이곳 브런치만 해도 열정적인 분들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일이 있고 없고, 시간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몰두’와 ‘집중’의 문제다.
제대로 몰두해 본 지가 언제인가? 온전히 집중할 줄은 아는 것인가?
나 스스로 쉽게 유혹되는 것들을 잘라낼 줄 알아야 한다. 한 번에 될 수 없다. 습관을 들여야 한다. 몰두하고 집중하는 습관. (비슷한 의미를 두 번 정도는 써 줘야 각인이 된다)
뛰어난 작가도 매일 글쓰기와 명상과 산책을 이어나간다. 누군가가 읽을 글을 쓴다면 누군가가 볼 그림을 그린다면, 하루하루의 조각들이 모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