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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JHEY Oct 30. 2022

온천 여행

까도 까도 깔 것이 무한히 나오는 회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콩가루가 되도록 부려 먹히던 순진한 초년생들이 있었다. 하루 온종일을 함께하며 영혼을 갈려서일까. 퇴사한 지 수년이 흘렀음에도 몇몇과는 그곳에서의 분노 치미는 사연들을 동력 삼아 종종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는 친구가 되었다.


연차가 쌓이는 대신 체력은 증발해버렸는지 오랜만에 떠난 이번 여행은 마치 요양 같았다. 장소도 마침 온천이었는데 그저 물에 몸을 담그고 있기만 했을 뿐임에도 웬일인지 피로가 아니라 얼마 없는 체력이 노곤노곤 녹아버렸다. 반복되는 철야와 잦은 출장도 거뜬히 해내던 우리였는데 이제는 고작 세 시간의 느긋한 물놀이도 버거워 밤 아홉 시를 넘기자마자 모두 곯아떨어져 서로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운동을 안 해서일까. 아니야, 그때 그 망할 놈의 회사에서 체력을 다 땡겨 썼기 때문이라며 문제의 회사는 또다시 소환당하고 말았다. 다행인 건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다 같이 체력이 후달린 거라 앉아 쉬는 시간이 절반이었음에도 아쉬워하는 이 없었다는 만족스러운 후기. 아마도 다음 여행은 더 느긋하지 않을까.


야근이고 출장이고 여행이고 같이 빡센 것만 하던 이들과 이렇게 느린 템포에 접어든 게 새삼 신선하다. 인생의 짧은 지점을 공유하던 사이에서 그치지 않고 흐르는 시간을 함께 하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다. 그놈의 회사는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밀지만 이런 인연을 남겨줬으니 영 최악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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