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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성일 Feb 17. 2021

안녕, 우리들의 반려동물

 : 펫로스 이야기

보호자와 함께,
접수서의 빈칸을 채우다.






반려동물장례지도사 시점,

반려동물의 장례 절차가 시작되면.



내가 담당하 가족의 이별 예식을 위해 보호자와 나는 서로가 장례 접수서를 마주한 체 식 절차를 시작하게 다. 이때 접수서에는 생전 아이의 기본 정보를 기재하는 항목이 있고, 보호자에게 직접 수기로 작성을 부탁드린다.


모두가 잠시 기억을 해보면,

실제로 펜을 이용해서 내 소중한 아이의 이름을 과연 몇 번이나 수기로 기입해보았을까?


그렇다,

나부터도 우리 '싼쵸' 이름을 그 어디에서도

수기로 기재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보호자면 누구나 그럴 듯 내  아이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알고 있을 보호자들이지만, 생각지 못한 항목에 쉽게 펜을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아이의 품종을 기록하는 항목에서는 MIX ‘믹스’라는 글자를 앞두고 쉽게 쓰지 못하는 가족과 보호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특별한 아이’라고 쓰셔도 된다고 안내한다.


사랑하는 대상이었고 그 대상의 종류를 이제 와 나누는 것이 무의미한 반면, ‘믹스’라는 범주에  아이를 기록하는 부분에 대해 미안한 마음과 속상한 마음까지도 든다고들 한다.


접수서 항목에서 품종 명을 기재해 달라는 요청은 정확한 기록을 위해서지만, 한편으로는 품종이란 범주를 구획해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것 자체가 차별은 아닐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의 장례 절차 중 혹시 모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아이들의 정보로서 품종의 기록은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와 반대로 ‘믹스’는 물론 ‘똥개’라고 망설임 없이 기재하는 보호자들도 있다. 이는 다소 애정이 없어 보이는 어휘일지라도 그것이 아이를 적게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아이의 체중을 적어야 하는 항목이 있다. 그때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망설이게 된다. 투병 생활을 해 왔거나 노령이 되어 연명 생활을 해오다 사망한 아이들의 체중은 보통 야윈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호자에게 병원에서 측정한 마지막 체중을 기재하게 하는 것은 달리 보면 고통스러웠던 장면을 재생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나는 아이가 가장 예뻤을 때 체중을 적어 달라고 안내한다. 이제 와서 아이의 체중이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을 보호자도 알고 있고, 나도 안다. 그렇다면 꼭 필요한 행정 절차이지만 조금은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사소한 부분이 보호자의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최근에는 접수서의 ‘생년월일’과 ‘망년월일’ 항목을 각각 ‘가족이 된 날’, ‘소풍 떠난 날’로 수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보호자들은 아이의 장례 접수서를 직접 작성하면서 아이의 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미뤄두었던 눈물을 이르게 흘리기도 한다.


그때의 보호자 입장을 모두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아마도 내 아이의 이름을 직접 기입하면서 눈 앞에 잠시 동안 짧지 않은 필름이 순식간에 지나갈 것 같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절실했고 소중한 존재로 그리고, 그 어떤 존재보다 사랑했을 존재로 말이다.



'특별한 아이' 

'가족이 된 날'

'소풍 떠날 날'



그렇게,

반려동물의 이별 예식

보호자 시점에서부터 직접 시작된다.










「안녕, 우리들의 반려동물 : 펫로스 이야기」 중에서


http://brunch.co.kr/publish/book/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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