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북 지원사업? 저번에 출판사 대표님이 말한 "되기만 하면 좋겠지요." 하시던 바로 그 사업이다. 매년 신청해도 한 번도 뽑힌 적이 없다던 로또 같은 사업. 1인 출판사 사정 상 내 책을 종이책, 전자책으로 내는 것 외에 비용이 많이 드는 오디오북까지 낼 여력은 없었다.
내 책이 오디오북으로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이 있었다. 책 쓰기 4년 전 첫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새벽에 요조님 노래 모음을 들으며 뛰곤 했다. 맑은 목소리가 주는 힘이 새벽과 잘 어우러져서 하루를 새롭게 살게 해 주는 희망의 목소리. 우연히 유튜브에서 요조님의 달리기 예찬 영상을 만났다. 요조님도 러너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영상에 흐르는 요조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저는 달리기를 꾸준하게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왜 달리는가? 사실 저는 달리기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지 달리기에 대한 동경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제가 달리기 자체에 동경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달리기를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많이 계셨어요. 아마 다들 아시겠지만 하루키도 달리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가죠.
뭐 하루키 같은 경우는 아예 책을 썼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도 썼는데 저는 이 책을 20대 때 너무너무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진짜 예술가병 걸린 20대 신수진의 질풍노도 시기를 정말 이 책 때문에 견디지 않았나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아무튼 이런 식으로 달리기에 대한 간접적이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는데 근데 왜 뛰지 않았는가?
저와 달리기와의 인연이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과 이제 경주를 하면서 달리기를 하게 되잖아요. 저 때는 국민학교였는데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달리기 경주만 하면 언제나 꼴찌의 주인공은 나였고 100m 달리기는 항상 20초가 넘었어요. 오래 달리기는 완주를 못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시는데 정말 사실이었습니다."
웃음이 났다. 나 역시 운동세포라고는 1도 없는 인간이라고 믿었다. 달리기는커녕 만보 걷기조차 못해서 이번 생에선 운동은 나와 먼 이야기라고 45년 간 믿고 살았다. 그런데 러너라니? 뭐든 잘 해내실 것 같은 요조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 더 공감이 커졌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난 달리기를 진짜 못하는 사람이구나라고 하는 확신이 너무나 굳건하게 생기게 되고 달리기를 못하니까 싫어하게 되고, 싫어하니까 안 하고, 안 하니까 당연히 못하고, 못하니까 싫어하고, 어떤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뭐 달리기뿐 아니죠. 제대로 끈질기게 운동을 해본 적 자체가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제가 또 몸에 땀이 나는 걸 무지 싫어하기 때문에 땀나서 싫다, 추워서 싫다, 더워서 싫다 온갖 핑계를 대면서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 완전 내 이야기잖아. 하하. 와이프가 나가서 운동하라고 떠밀면 억지로 나가서 10분 걷고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이나 먹으며 시간을 때우고 집에 들어가던 인간이 나였다. 다시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한 것이 작년이었습니다. 작년에 제가 책을 2권을 동시에 쓰면서 1년을 보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운동을 해서 체력을 키워놓지 않으면 제가 견디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작년 여름부터 야금야금 운동이라는 것에 취미를 붙여보려고 노력을 좀 했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책이 발간되기 직전에 달리기라는 것을 한번 해봤어요. 마침 그때 달리기를 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 앱을 하나 발견해서 그 어플과 함께 달리기를 시작 봤습니다."
달리기 어플? 어떤 어플인지 궁금했다.
"런데이라고 하는 어플인데요. 거기에 8주짜리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인데요. 제가 동네방네 얼마나 추천하고 소문을 내고 다녔는지 진짜 이렇게 얘기하기도 좀 민망할 정도네요. 광고는 아니고요. 광고였으면 좋겠습니다.(웃음)"
메모. 런데이. 오늘 찾아서 깔아보기로 했다.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어서 팬심으로 하는 그런 사심 광고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아무튼 그 런데이 앱으로 저는 처음 규칙적으로 달리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어요. 이제 7개월 차예요. 왜 달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사설이 너무 길었던 것 같습니다."
"달리면서 정말 좋았던 점이 있었어요.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는다'는 확실한 보장이 주는 희열이 미친 듯이 좋았습니다. 저는 뮤지션이자 작가이기 때문에 앨범을 내거나 책을 내면서 살아왔는데 이 앨범을 내거나 책을 낸다는 것은 내면 낼수록 너무나 명백하고 당연하게 점점 잘하게 되는 게 아니었어요. 책을 내면서도 이다음 책은 어떻게 쓰지? 앨범을 한 장 내도 이다음 앨범은 어떻게 내지? 항상 눈앞이 캄캄하고 눈앞이 막막한 그런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함 속에서 하는 작업이거든요."
"그런데 달리기는 너무 뚜렷한 거예요. 오늘 달리면 내일 기록이 좋아지고 또 내일 달리면 모레 일은 알 수 없는데 분명히 기록이 좋아질 거니까요. 그것이 주는 확실함, 분명함, 기쁨과 보람이 정말 얼마나 짜릿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한번 보여드릴까요? 런데이 앱으로 처음 달렸을 때 2019년 10월의 기록입니다. 이때 저는 1분 뛰고 2분 걷고 하는 식으로 2.48km를 뛰었고 평균 페이스가 9분대였어요.
가장 최근에 달린 기록을 이제 보여드릴게요. 2020년 5월 이거는 나이키 앱으로 기록한 건데요. 이때 저는 14k를 달렸고 평균 페이스가 5분대입니다. 어떠세요? 진짜 제가 미친 듯이 좋아할 만하죠. 이런 경험을 계속하면서 어떤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좀 웃길 수도 있는데 저는 달리면서 종종 웁니다."
아마 이쯤이었던 것 같다. 내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을 때가. 나는 어느새 영상을 보며 조용히 울먹이고 있었다. 요조님의 모든 말이 나의 인터뷰이고 달리는 나의 마음이었다. 그가 보여준 내 마음에 속절없이 가슴이 열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미친 사람 같이 하늘을 보면서도 울고, 음악을 들으면서도 울고, 나무 꽃을 구경하면서 강아지들 갑자기 눈물이 툭 하고 이렇게 욱 하고 이렇게 뛰다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그건 슬퍼서가 아니라 그 반대에 가까워요. 아! 정말 경이롭다. 너무 아름답다. 고작 800m도 완주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잡았던 목표는 5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거였어요.
이것도 사실은 내가 할 수 있을까 굉장히 의심했던 그런 목표였는데요. 저의 현재 목표는 풀 마라톤을 완주해 보는 것입니다.
겁나 오래 걸리겠죠. 근데 이상하게 겁이 안 나네요. 앨범 하나 낼 때마다 책 한 권 낼 때마다 항상 저는 겁났거든요. 이다음은 어떡하지 이제 어떡하지라고 하는 겁에 항상 질렸었는데 이건 겁이 안 나요."
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달리면서 나도 종종 울었다. 내 안에 그렇게 눈물이 많은 지 달리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조그만 성취에도 눈물이 났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내가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자각이 나를 울렸다. "넌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항상 달리기는 내게 속삭여주었다. 달리던 어느 날 밤에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요조님은 나의 마음을 꺼내어 그의 목소리로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 영상에 댓글을 달았다. 그날은 2020년 10월 27일이었다.
"요조님. 전 만보 걷다가 달리기로 넘어온 지 이제 한 달 되었어요. 뛰는 중에 듣기 좋은 음악을 찾다가 요조님 음악을 들으면서 힘든 언덕도 넘을 수 있었어요. 오늘 유튜브에서 요조님 달리기 추천 영상 뜬 거 보고 너무 놀랐어요. 이 영상 보기 전부터 요조님 음악을 들으며 달리기 하는 습관이 생겼거든요. 요즘 달리기가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에 빠져있었어요. 신기하고 감사해서 용기 내어 댓글 남겨요. 전 아직은 30분 정도밖에 못 뛰지만 계속 늘여가려고 해요. 좋은 어플 소개와 좋은 이야기에 감사드려요. 저도 언젠가 마라톤 완주라는 희망을 가져볼게요. 요조 님은 그 꿈 꼭 이루실 거예요."
나도 런데이 앱을 설치했다. 그 덕분에 나는 러너가 되었다. 42km 풀코스를 넘어 100km 울트라마라톤을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계기가 요조님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달릴 수 있도록 100km까지 가는 길을 열어준 분은 나에게 런데이앱과 달리는 이유를 영상에서 분명하게 보여준 요조님이었다. 책 프롤로그에 썼던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에서 신참 간호사가 환자에게 밥을 먹이려 떠주려다 배가 고파서 자기도 모르게 숟가락을 자기 입에 넣어서 어쩔 줄 몰라하던 그 장면이 바로 요조님이 낭독한 오디오북이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새벽을 달렸고 그의 노래를 들으며 힘든 시간을 버텨왔다.
4년이 지나 막 책을 출간한 지금, 말도 안 되는 용기가 솟아났다.
'승우야. 네가 달리기를 시작했던 4년 전엔 네가 책을 낼 거라곤, 그것도 달리기 책을 낼 거라고 상상이나 했었니? 아니잖아. 내향인인 네가 sns에서 너를 드러내고 솔직하게 너를 표현하고 있다는 걸 그때 상상이나 했었니? 넌 이제 책을 낸 작가야. 자신감을 가지고 용기를 내. 오디오북을 낸다고 상상해 봐. 그리고 너 책을 너의 달리기에 용기를 준 뮤지션, 작가인 요조님이 직접 낭독해 주시는 장면을 그려봐. 꿈을 꿔봐. 그 꿈을 위해 달려봐."
대표님과 나눈 오디오북 이야기를 떠올렸다.
"대표님. 제가 쓴 책 구조, 리듬, 내용 상 오디오 북으로 나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제작비가 많이 들더군요. 찾아보다가 제작비를 500만원까지 지원해주는 '오디오북 지원 프로젝트'가 있어서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어떠신지요?"
"네. 출간되면 전자책과 오디오북 지원사업에 지원하겠습니다. 오디오북은 경쟁률이 심해요. 매년 신청은 하고 있지만 소식이 없네요."
"대표님, 이번 저희 책 나름 경쟁력 있을 수 있습니다. 일단 술술 읽히고 재미가 있거든요. 제가 제 책 원고 퇴고하면서 기계음으로 읽어주는 낭독 어플로 들어봤는데 괜찮았어요. 운동과 도전에 관한 이야기니 한 번 지원해 볼 만할 것 같아요."
"하하. 되기만 하면야 좋겠죠."
오늘 대표님이 오디오북 지원사업이 시작되었다는 말에 지금까지 달려온 모든 순간이 스쳐갔다. 그 안에는 요조님이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더 이상 추가 지원이 불가능했다. 오디오북을 내려면 반드시 지원사업 선정이 필요했다. 그래야 지원금 500만원을 받고 오디오북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디오북 제작이 가능해야 요조님께 말이라도 꺼내볼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100km 울트라마라토너였다. 대표님께 말을 꺼냈다.
"대표님, 오디오북 지원사업 계획서 제가 직접 쓸게요. 제가 쓴 책이니 제 책이 뭐가 좋은지 어떤 특색이 있는지는 제가 가장 잘 아니까요. 기회를 주시면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음... 네. 작가님이 직접 써주시면 좋죠. 그런데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보통 대형 출판사들이 되더라고요."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작은 출판사면 어떻고, 1인 출판사이면 또 어떤가. 첫 책을 내는 초보작가면 어떻고, 책을 여러 권 낸 기성작가면 어떤가.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듯 출발선에 있을 때 우리는 분명히 더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러너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나는 오디오북 제작을 향한 출발선에 섰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쏟기로 했다. 20년 차 기획인으로 살아온 모든 노하우와 열정을 두 세 페이지의 오디오북 지원사업 계획서에 녹이기로 했다. 투고했던 그 정성과 노력 이상으로.
큰소리쳤지만 나는 오디오북 지원사업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출판사에서 매년 지원해도 떨어졌다면 이유가 있을 텐데, 그걸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지원서 양식과 빈 종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 데나 오디오북 제작사에 무작정 전화해서 여쭤보면 어떨까? 나는 전화기를 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