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크가 소원입니다

by 러너인

책 한 권을 만났다. 내 책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 눈에 띄었다. 내 나름으로 내 책을 알리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그 책은 인터넷 기사까지 올라와 있었다. "나는 듯이 가겠습니다"라는 책이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작가 어머니의 사진이 책 표지에 담겨있었다.

책 소개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독박 돌봄자가 된 나는 돌봄 고립과 무너진 일상에도 보란 듯이 달리고 읽고 쓰며 나는 듯이 가겠습니다." 21년 차 특수 교사 대 10년 차 돌봄자, 돌봄의 일상을 기록하고 성찰하다.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눈가가 촉촉해졌다. 무너진 일상에도 보란 듯이 "달리고 쓰며". 이 대목이 가슴을 적셨다. 나도 달리기를 시작할 때 그런 심정으로 나를 살리기 위해 달리고 썼다. 엄마를 혼자서 10년 간 혼자 돌보고 있는 특수 교사. 방학이면 해외 배낭여행이 취미였던 씩씩한 그녀가 한순간에 집 안에서 엄마를 돌보게 된 장면에서 또 한 번 무너졌다.


그 책은 언론에서 소개되고 판매지수도 나보다 두 배는 거뜬히 넘었다. 그 책과 작가를 모를 때는 부럽기만 했다. 하지만 깊은 이야기를 만나자 무장해제되었다. 누가 이렇게 완전한 희생으로 엄마를 돌볼 수 있을지...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얼마나 힘겨운 나날을 보냈을지 생각하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그녀를 팔로우했다.


며칠 후 주말 북토크 소식이 올라왔다. "나는 듯이 가겠습니다."를 쓴 김진화 작가님의 북토크였다. 기쁜 마음에 신청하려다가 멈칫했다. 부산이었다. 나는 수원에 있으니 북토크에 가려면 KTX를 타고 하루를 써야 했다. 너무 먼 것 같았다. 부산 북토크에서는 작가님의 어머니가 직접 나오신다고 했다. 어머니가 오신다는 말에 아무리 멀어도 달려가기로 했다. 생각지도 못한 용기가 솟았다.


문제가 있었다. 주말이라 열차표가 없었다. 가서 작가님을 직접 뵙고 싶었다. 주말 기차표가 없어도 부산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금요일 저녁은 아직 표가 있었다. 하루 먼저 가려고 숙박을 잡았다. 기차표를 못 구하면 하루 전에 부산에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책과 작가님께 끌렸을까. 자신을 누르며 달렸을 그녀의 달리기가 가슴을 두드렸다. 누군가를 응원하기 위해 수원에서 부산까지 달려가기로 한 건 처음이었다. 무작정 dm을 보냈다. 작가님 북토크가 너무 가고 싶어서 표가 없길래 숙소를 예매했다고. 작가님을 존경한다고 썼다.


D-1. 금요일 아침 겨우 표를 구했다. 숙소를 취소하고 다음날 KTX로 부산에 내려갔다. 작가님의 책을 열차 안에서 다 읽었다. 벅찬 가슴으로 작가님의 북토크를 듣고 어머니를 뵈었다. 그때를 시작으로 다른 작가님들 북토크에 다니며 응원했다. 갈 때마다 내 책도 한 권 준비해서 손 편지를 써서 작가님께 선물했다.


작가님들 북토크에 다닐수록 간절함이 커졌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기로 했다. 4년간 글을 써온 인스타그램을 떠올렸다. 릴스 최대 길이는 3분, 틈나는 대로 3분 온라인 북토크를 하기로 했다. 첫 글을 올리고 4월 28일 첫 온라인 북토크를 시작했다.

"매일 한 편, 온라인으로 작은 북토크를 엽니다.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속 문장으로,

오늘 당신의 마음에도 조용한 응원을 건넵니다."


북토크 기회가 나지 않아도 부산으로 서울로 다른 작가님들 북토크에 다니며 응원하며 내 책을 선물하고, 내 sns에서 릴스를 만들어서 3분 북토크를 했다. 2주간 매일 새벽마다 녹음해서 올렸다. 조금씩 지쳐갈 때, 부산까지 원정 북토크로 나를 이끈 진화 작가님께 연락이 왔다. 그가 말했다. 온라인 북토크도 좋지만, 용기 내서 진짜 오프라인에서 북토크를 해보셨으면 좋겠다고. 한 번만 해내시면 앞으로 얼마든지 잘하실 거라고 응원을 남겼다.


한걸음 더 용기를 냈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작가님들은 보통 동네서점에서 북토크를 하곤 했지만, 나는 도서관을 선택했다. 책을 내기 5년 전 나를 러너로 만들어준 광교호수공원에 있는 광교푸른숲도서관에 북토크 제안서를 보냈다. 책을 내고 끊임없이 노력해 온 러너작가라고 썼다. 혼자서 첫 풀코스를 완주한 이곳에서 첫 북토크를 하고 싶다고. 광교 푸른숲도서관에서 6월 18일로 북토크 일정 잡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그 소식을 오후에 듣고 저녁 러닝클래스에 도착했다. 트랙에서 코치님과 매니저님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동안 나의 모든 간절한 노력을 알고 계신 분, 내가 어둠에서 빛으로 달리고 있을 때 나보다 나를 더 믿고 응원해 주신 분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다시 나를 사랑해 보겠다고 애쓰던 시간들이 있다.

달려보겠다고,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다시 일어나겠다고. 입술을 깨물고 달리고 달려온 간절한 시간들이 있다. 그날의 달리기는 내가 나를 위해 발로 쓰는 응원가였다. 지금까지 내가 간절함으로 달려왔음을 그날 가슴으로 느꼈다.

숨차게 달려 문을 두드리고 첫 북토크를 만들었다. 정승우라는 한 인간이 기특했다. 용기란 미모사 같다. 살짝만 건드려도 활짝 열리는 미모사처럼. 손댈 용기를 내기까지 어렵지만 간절함이 닿으면, 닫힌 문이 미모사처럼 활짝 열린다는 것을.


책을 낸 지 2개월 반, 북토크를 간절히 원한 지 1달 반 만에 첫 오프라인 북토크가 잡혔다. 6.18 수, 광교푸른숲도서관 밤 7시 30분. 40분 모집에 36분이 신청해 주셨다. 하루 전 글을 올렸다.

"첫 북토크 D-1. 초대합니다.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정승우입니다.

"출발선에 있을 때 우리는 분명히 더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러너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내일 밤 첫 북토크를 엽니다. 2025. 6. 18(수) 저녁 7시 30분. 저를 러너로 만들어준, 첫 풀코스를 뛴 광교호수공원 내 '광교푸른숲 도서관'이에요. 제 책 에피소드 '8자를 그리다'의 8자 코스가 있는 러닝 성지이기도 하죠. 내일 러닝복장이 아닌 낯선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다."


그날이 밝았다. 첫 북토크를 했다. 한 달 동안 무슨 이야기를 전할까 고민했다.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70페이지 ppt에 내 이야기를 담았다. 어릴 적 쓰던 콤파스. '함께 내딛는다'는 뜻. '달리기로 삶의 콤파스를 그리자'가 첫 북토크 주제였다.


달리면서 우리는 점점 긴 거리를 뛰고 용기와 자신감이 생긴다. 그 성취는 달리기를 넘어 삶의 모든 영역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달리기로 콤파스의 다리를 넓혔다면, 그 다리를 축으로 회전시켜 자기 삶의 원을 더욱 크고 아름답게 채워야 한다.


내가 원을 넓혀가기 시작한 계기와 숨겨진 이야기들, 영혼의 어두운 밤에 달리기가 준 용기를 말했다. 내향인인 중년의 아저씨가 어떻게 세상의 문을 열고 달리면서 다른 이를 위로하는 법을 배웠는지. 왜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진심을 가득 담아 따뜻한 댓글을 다는지 그 이유를 말해 주었다.


하나의 결정적 순간은 항상 다음의 결정적 순간을 만든다. 사소한 댓글 하나가 몇 년이 지나 얼마나 귀한 인연으로 이어졌는지. 댓글 하나가 4년 후 요조님의 내 책 낭독으로, 댓글 하나가 수년 후 책 출간 멘토로 이어지고, 댓글 하나가 소중한 분들과 연결시켜 준 이야기. 용기가 필요한 도전을 꿈꿀 때 내가 어떻게 SNS를 통해 꿈을 선언하고 이루어왔는지를 전했다.

무조건 작가 되기 글쓰기 모임 첫날, sns에 무작정 "나는 오늘부터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글을 올렸다. 누구나 비웃을 이야기였지만, 그 뒤 3개월 후 나는 투고로 출판사와 출간 계약했다. 42km가 최장거리였던 시절, 100km 울트라마라톤을 꿈꾸고 또 출사표를 띄웠다. 3개월 뒤 청남대에서 완주의 꿈을 이뤘다.


가장 어두운 밤, 별은 가장 환하게 빛난다.

오디오북 지원사업 선정, 북토크 선언 등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모든 걸 걸고 SNS에 올린 그 작은 용기가 등을 떠밀었다. 꿈꾸던 그날의 나와 북토크 자리에 서기까지 두 발로 그려온 삶의 도전 이야기를 오신 분들께 전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모르는 분들이 자리에 앉아 내 말을 경청하는 순간, 그 시선에 감동받았다. 그가 폰을 꺼내 정성껏 준비한 발표자료를 찍는 그 장면이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나는 그날의 나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뜨거운 불씨 하나를 선물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그가 달리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삶의 콤파스를 세상에 꺼내 들도록, 그 콤파스로 삶의 원을 당당하게 그리도록 보잘것없는 나의 도전과 모험을 통해 용기를 주고 싶었다.


베스트셀러 작가님들은 출간 후 한 달 안에 1,000부 이상이 나가고 2쇄, 3쇄에 들어가지만 나는 아직 절반도 되지 않았다. 더 많이 팔리기를 소망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너무 잘되어 첫 책에 우쭐하지 않도록. 그래서 지금 이 애매한 상황이 오히려 고맙다. 나를 위해, '빠르게'가 아닌 '바르게' 달리기로 결심한 내 책에 고맙다. 우리는 자기만의 속도로 천천히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을 뿐이니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날도 더운데 잘 마쳤냐고. 사실상 출간기념회인데 잔치처럼 준비해줘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 없이 혼자 외롭게 했을까 봐 걱정하셨다고 했다. 러닝 클래스 매니저님과 코치님, 함께 달리시는 분들이 케이크와 꽃. 마음까지 준비해 주셨다. 외롭지 않았다고 하니 엄마가 말씀하셨다. "같이 운동하는 분들이 가족보다 낫구나.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달리고 쓰지 않았다면, 용기내어 러닝클래스에서 매니저님과 코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쩌면 아직도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고 있을지 모른다.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던 아프고 아픈 시기에 홀로 도서관에 앉아 하루를 보내던 때,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너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매주 트랙 위, SNS에서 격려해 주신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


첫 북토크가 끝났다. 책을 가져온 분들과 눈을 맞추며 사인을 했다. 이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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