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잘 모르지만

재즈를 글로 들으며 놉니다.

by 이락 이강휘

나도 내가 이렇게 될지 몰랐다. 적어도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호흡하는 교사라면, 적어도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 멤버들의 이름 정도는 알 수 있을 거라, 아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모른다는 것은 아이들을 이해해야 하는 교육자로서의 책무에 어긋날뿐더러 아이들과 호흡하겠다는 교사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뭐,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가수들에 크게 관심이 없다. 예전에 딱히 별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 아이돌처럼 그들이 삶에서 떨어져 나가는 과정도 자연스러웠다. 텔레비전을 잘 안 보다 보니 그들의 면면을 알기 힘들어졌다. 그들의 노래에는 더욱 관심이 없다. 아이들이 일단 들어보시라며 플레이리스트도 짜주기까지 했는데도 도무지 들을 마음이 안 생긴다. 멤버들 이름을 아는 건 ‘샤이니’에서 끝난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세계 곳곳에 뿌리내린 다국적 ‘아미’들에게 맞아 죽을 것 같지만 방탄소년단 멤버 이름도 잘 모른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모른다. 뭐,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그렇다고 음악을 듣지 않을 수는 없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왔다 갔다 2시간씩 차에 매여 있는 몸인데 운전을 해야 하니 딱히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라디오는 광고가 너무 많고, 그나마 프로야구 시즌은 그럭저럭 견뎌왔지만 요즘은 응원하는 팀이 너무(진짜 너무!) 못해서 그것마저 신통찮다. 팟캐스트라는 보물 같은 매체가 있긴 하지만 주로 듣는 쪽이 정치나 인문학 분야이어서 ‘내가 운전하면서까지 머리 아파야 해?’라는 반감이 들 때가 왕왕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음악인데, 도무지 들을 만한 것이 없었다. 당시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아이유’ 말고는 없었다.(아이유 씨, 진짜 팬입니다!)


그러다 눈을 돌린 게 재즈다. 사실 평소 재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20대 초반 시절, ‘Fly to the Moon’에 반해, 아는 형에게 ‘재즈 곡 좀 소개해주세요.’라고 했더니 부지런한 형은 손수 CD를 구워 선물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중적 재즈 엑기스’라고 제목을 달아서 팔아도 손색이 없는 대중적인 곡들이었는데, 그 형 덕분에 재즈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는 마련해 놨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 CD 이상으로 재즈를 찾아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사실 알려고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도 포기에 한몫했다. 관심 가는 음반을 모두 구입하는 것은 주머니 가벼운 나에게는 터무니없는 사치였던 것이다.


살다 보니 아이돌 음악은 지루해졌고, 인디음악은 누가 누군지 아이돌보다 더 모르겠고, 영어를 모르니 팝송은 재미가 없고, 그렇지만 음악은 필요했다. 그러니까 필요에 의해서 다시 재즈 카드를 꺼내 들게 된 것이다. 재즈가 어렵다는 얘기는 들어왔던지라 마구잡이로 들을 수는 없고, 재즈에 대한 설명을 해 놓은 것이 없나 싶어 서점을 어슬렁거렸다. 검은색 표지에 나팔을 부는 흑인 위에 ‘JAZZ IT UP’이라고 적힌, 강렬한 포스가 좔좔 흐르는 책(JAZZ IT UP(남무성))이 보였다. 두께에서 오는 두려움을 만화책이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으로 물리치고 구입해 읽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만화책에 소개된 음반을 들으며 성실하게 읽었다. 세상이 좋아졌다는 게, 요즘에는 예전처럼 음반을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나 유튜브를 이용하면 책에 소개된 유명한 음반에 수록된 곡 정도는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플레이리스트에 재즈곡이 차곡차곡 쌓여갔고, ‘클리포드 브라운은 혈기왕성하지만 세련되었군.’ 혹은 ‘소니 롤린스는 뿌룽뿌룽하는 느낌이라 재밌군.’하는 나름의 느낌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재즈를 전혀 모르는 사람 앞’(꼭 필요한 전제이다.)에서라면 재즈사도 1시간 정도로 요약정리해서 알려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자신감이 붙은 김에 일단 독서모임에서 ‘당신의 첫 번째 재즈 음반 12장(황덕호)’를 추천해서 같이 읽었다. 재즈를 전혀 모르는 분들이라 내가 책 내용을 정리할 때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듣고 계셨다. 나는 공부한 걸 써먹는 재미에 빠져 더 몰입해서 설명드렸다. ‘이렇게 설명을 듣고 음악을 들으니 나름대로 재미있네.’라는 모임원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에 <재즈 듣는 소녀들>이라는 방과 후 수업을 개설했다. 재즈사를 재미있게 풀어낸 ‘오감재즈(전진용)’을 읽고 재즈를 들은 후에 나름의 감상을 써내는 수업이다. 모든 감각이 예민한 청소년들이라 재즈에 대한 흡수도 빠르다. 혹시나 재즈를 지루하거나 어려운 음악으로만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우려로 시작했던 수업이 어느덧 마무리가 되어간다. 지금까지 써낸 아이들의 글에서도 재즈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다행이다. 이 친구들이 성인이 되면 언젠가는 재즈 음반을 구입하고 재즈공연장에 발을 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수업 때 학생들에게 예시로 보여주기 위해서 에세이를 써봤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재즈에 대한 지식이라고 해봐야 책 몇 권 들쳐본 정도이고, 그렇다고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연주할 수 있는 악기라고는 통기타를 코드 잡아 치는 정도. 심지어 악보도 못 본다.) 음악을 재료 삼아 놀아보고 싶은 마음에 꾸준히 글을 쓰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재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곡을 해석하거나 뮤지션에 대한 정확한 정보로 음반의 경향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은 나에게 없다. 다만 재즈를 모르는 사람도 에세이를 쓰는 방식으로 재즈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사람이 재즈 수업은 어떻게 진행했는지도 끼적여보려 한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노는 것도 가지가지네.’ 정도로 생각하고 부담 없이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재즈를 들으면서 우리나라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음악이 별로 없다는 말을 체감했다. 재즈 음반 치고는 그다지 희귀한 음반도 아닌데도 그걸 구해들을 수 있는 사이트는 희귀하다. 결국 유튜브를 찾게 되는데, 웬만한 음반은 다 있다. 이래서 다들 유튜브 유튜브 하는구나 싶다. 소수의 소비자일지언정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면 설사 대중성이 다소 떨어지는 음악이라 하더라도 제공해주려고 노력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천편일률적인 음반 시장이 다변화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재즈 뮤지션들도 더 이상 공연장에서 ‘Fly to the Moon’을 연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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