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근육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안 날. 그때부터 본격적인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시험 준비로 점철된 엄혹한 이십 대를 보낸 후 맞이한 삼십 대. 우울했던 이십 대를 보상받으리라는 일념으로 술이며 담배며 야근이며 스트레스며, 아무튼 건강에 나쁜 것들은 죄다 몸속에다 때려 붓는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나이 칸에 4자를 적어야 하는 해가 되자 그 방탕한 십 년이 한 뭉치로 날아와 보잘것없는 중년의 육체에 사정없는 복수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먼저는 날갯죽지가 말썽을 부렸다. ‘말썽’이라고 하면 뒤에 ‘꾸러기’가 붙는 말이라 좀 귀엽고 가볍게 느껴지는데 실상은, 어휴, 정말 고통스러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날갯죽지에서부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전해져오는데 그게 어느 정도냐면, ‘내 몸 안에 있던 날개가 드디어 날갯죽지를 찢어버리고 돋아나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 이걸론 이 아픔이 설명이 안 되네요.
웬만하면 치유는 자연에 맡기는 편인데 이번은 참기가 힘들어서(혹시 진짜 날개가 돋을지도 모르고) 병원 진료를 받았는데 X레이 판독 결과 날개는 없었고(약간 아쉬웠습니다.) 능형근 통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당시 컴퓨터 앞에 꽤 오랜 시간 앉아 있을 일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게 원인인 듯했다. 병원을 나와 물리치료를 받으러 한의원으로 갔더니 내 연배쯤 되어 보이는 한의사가 날갯죽지 언저리를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누워있는 내 몸을 보고, “운동 안 하시죠?”라고 물었다. 나는 마치 숙제 안 한 어린아이가 선생님께 대답하듯 쑥스럽게 “네.”라고 대답했더니 “우리 나이엔 이제 운동해야 해요.”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튀어나온 자기 배를 매만지며.
한의사의 말을 듣고 운동을 바로 시작했냐. 그런 드라마틱한 변화는 넷플릭스에서나 나오는 거고, 능형근 통증이 진정이 되는 속도에 맞춰 생활 태도도 서서히 방탕 쪽으로 키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도를 높여볼까 하고 엑셀러레이터를 밟으려는 순간, 이번엔 왼쪽 엉덩이와 고관절 쪽에서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겼다. ‘골칫거리’라고 하니, 살짝 신경 쓰이긴 하지만 무시해도 그럭저럭 살만한 것 정도인 건가? 정도로 오해할 수 있겠는데, 이것도 겪어보면 무척 고통스럽다. 음, 뭐랄까. ‘무지하게’ 아픈 게 아니라 너무 ‘짜증 나게’ 아파서, (과장을 살짝 보태면) 다리 하나 없으면 많이 불편하려나?, 하고 진지하게 생각할 정도다.
결국 또 병원에 갔다. 이번엔 CT촬영을 해봐야 한다며 스타워즈나 스타트렉, 암튼 외계인 나오는 영화에서나 보던 미래지향적 원통 안에 들여보내곤 내 눈을 가린 후 빛을 쏴댔다.(기분 묘하더군요.) 지구로 무사 귀환한 내게 의사 왈, “이상근 증후군입니다.” 원인은 역시 운동 부족. 서로 친할 리 없는 양방과 한방에서 한목소리로 통증의 원인을 운동 부족으로 꼽았다면 이제야 말로 운동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길로 아무렇게나 주워 입고 집 앞 산책로를 뛰기 시작했다.
한 달 정도 꾸준히 뛴 결과, 거짓말처럼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대략 2년이 지났는데, 능형근이나 이상근 같은 부담스러운 이름을 가진 근육에서의 통증은 재발하지 않고 있다. 지금 가진 통증이라면 러닝 후 찾아오는, 각종 무시무시한 이름의 증후군에 비하면 새발에서 피나는 정도인 오른쪽 무릎 통증 그리고 기분 좋은 근육통이 고작이다. 게다가 몸도 좋아졌다. 흐릿하게나마 왕(王)자(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오래 보아야 보인다.)가 보일 만큼 뱃살이 빠져 못 입고 모셔만 두었던 바지를 다시 입을 수 있게 되었고, 팔뚝에 미약하게 선 핏줄(얘도 그렇다.)에 고무되어 난생처음 민소매 티셔츠를 사보는 사치를 누리기도 했다.(음, 자주 입어지진 않습디다.)
러너라면 누구나 러닝 전도사가 된다. 주변에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면 병원 갈 생각 말고 일단 뛰어보라며 등을 떠민다. 대부분은 무시로 귀결되었던 전도 실패의 참담함을 딛고 최근 최초로 친구 한 명을 러닝으로 전도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순탄하지 않았다. 내 말을 듣고 혼자 며칠을 뛰어본 친구는 무릎과 발바닥 통증에 대한 고해성사를 풀어놓았다. 나는 노련한 목회자로 빙의해 이 몽매한 성도에게 내 능형근과 날개 이야기, 이상근과 외계선 납치 경험을 간증한 후 말했다.
보라, 형제여. 그것은 그대 근육 발달의 미숙함으로 발생하는 문제이요 모든 입문자의 고민이라. 달림의 꾸준함으로 말미암아 문제는 일시 해결되고 그대의 잔병은 나을지니, 형제여, 일시라도 개의치 말지어다. 이후 그 성도는 지금 잘 달리고 있다. 할렐루야.
아마추어 러너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아무래도 건강일 것이다. 처음에는 속도에 욕심을 냈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건강한 몸으로 오래오래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주말 아침 러닝을 하러 나가면 (적게 봐서) 70대로 보이는 러너께서 열심히 달리고 계시는 모습을 본다. 연배가 있으신 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꽤 긴 거리를 뛰어오셨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아내에게 ‘저분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저 연세에?’ 하니 아내가, ‘자기도 나이 들어도 저렇게 뛰어요. 신발은 사줄게요.’ 한다. 신발값이 병원비보다 저렴할 거라는 아내의 섣부른 예상과 러닝화가 어느 정도까지 비싸질 수 있는지 보여줄 나이키의 대결이 자못 기대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