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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락 이강휘 Sep 08. 2023

어차피 러닝은 외로운 운동인 것

혼자 달리는 이야기

많은 사람이 무리 지어 달리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영상은 스쳐 지나질 못하는 편이다. 달리는 사람이 진짜 많긴 하구나, 하면서 멍하니 보게 된다. 열로 맞춰 질주하는 러너들을 보면서는 잘 달리는 사람도 정말 많구나, 하면서 거듭 놀란다.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훈련이 힘들든 아니든 영상 속 달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들 즐거워 보인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얼굴에 맺힌 밝은 미소들이 슬금슬금 내 입가에 전염될 기미가 보일 즈음, 채널 주인장의 말로 영상이 마무리된다. 함께 뛰어보세요. 그러면 더 쉽고 편하게 러닝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마라톤동호회나 러닝크루 참여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 채널 주인장의 의도를 섣부르게 추측해보자면, 힘든 훈련 속에서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에 느끼는 안도감을 강조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고통 속에 싹트는 전우애랄까.(아, 죄송. 군대 생각에 그만.) 게다가 저 젊은 친구보다는 빨리 뛸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도취감(?), 어제는 저 친구에게 뒤처졌지만 오늘은 한번 이겨보리라는 경쟁심(!) 등속이 발휘되면 단독으로 훈련하는 것에 비해 단체 훈련에 참여했을 때, 더 나은 성취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제아무리 ‘러닝’이라는 공동관심사로 모였다고는 하나 모르는 사람들과 대면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꽤 부담스러운 일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싫은 건 아닌데 낯선 사람으로 가득한 모임에 뻘쭘해 하는 걸 못 참는 편이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도 금방 사람들과 어울리는 ‘인싸’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편해하는 기색을 잘 숨기면서 그럭저럭 적응해나가는 사람도 많던데 내겐 그것마저도 참 어렵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김보경 선수가 어느 방송에서 이렇게 속내를 털어놨다. “내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 어쩜 내 마음을 이렇게 탁월하고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나. 나나 김보경 선수나 주변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족속인 것이다.

천성이 게을러서 그렇다. 달리기만으로도 내재해 있는 부지런함의 최대치를 끌어 쓰고 있는데, 여기에 다른 사람과의 친목까지 도모하기엔 아무래도 무리다. 함께 달리는 것의 효용을 고려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여차여차한 이유로 혼자 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임도 싫고 혼자도 싫으면 난감할 뻔했는데 다행히도 그건 면했다. 나란 사람 자체가 혼자 있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인간이다.(혼술도 잘 합니다!) 그래서 혼자 뛴다고 해서 외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으니 외로움에 적응한 게 아니라 혼자 뛰어도 즐거우니 기꺼이 혼자 뛰는 걸 선택한 것이다.

게다가 큰 이점도 있다. 혼자 달릴 때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저 러닝복을 입고 러닝화 끈을 매는 것만으로도 회사나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독립된 ‘혼자’라는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흔히 남자는 자기 영역을 보존하려는 본능적 욕구가 남아 있기 때문에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디 쉬운가. 예전엔 내 게임기와 컴퓨터와 책이 있었던 방을 커가는 아이에게 내주다 보면 결국 남는 건 화장실밖에 없다. 오죽하면 남자들이 나이가 들수록 화장실 이용 시간이 길어지는 건 비단 노령화로 인한 소화 기능의 약화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있을까. 아, 누가 한 말인지 몰라도 절대적으로 공감한다.(남성분들 눈물들 닦으시고.) 그렇지만 혼자만의 공간이 화장실인 건 왠지 좀 비참하니까 물리적 공간은 포기하도록 하자. 대신 러닝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홀로 달리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다. 어제라는 잣대를 오늘의 내 몸에 대고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 내 다리의 상태에 대해 면밀하게 살피고 더 달릴 수 있는지 묻는다.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 호기심이 깃들면 좀더 다리를 뻗어보며 심장의 울림과 떨림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서 나라는 존재를 오롯이 만나는 것이다.

대회에 나가면 다들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면서 함께 몸을 풀고 대화를 나누며 웃고 즐긴다. 반면 주로 혼자 출전하는 나는 홀로 몸을 풀고 질주를 하고 대회 출발선에 들어선다. 레이스가 시작되면 함께 웃고 떠들던 ‘인싸’러너나 혼자 대기 장소 구석에서 몸을 풀던 외로운 주자(네, 접니다.)나 모두 혼자가 된다. 어차피 러닝은 외로운 운동인 것이니까. 외로움이 달리기라는 운동의 절대적인 매력이니까. 달리기가 주는 이 행복한 외로움을 누리는 것이 질려버릴 때까지 내 달리기 습관은 바뀌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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