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질이 남성이 되고 싶은 욕망이야 누구든 가지고 있을 테지만 실행으로 옮기기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일단 헬스장이 등록하는 것부터가 고민의 연속이다. 집에서 갈 건가? 회사에서 갈 건가? 주차는 가능한가? 언제 갈 건가? 일주일에 얼마나 갈 수 있는가? 등록비는 얼마인가? 할인은 얼마나 해주는가? 회원이 많은가? 머신 상태나 시설은 어떤가? 등등.
힘든 고민을 마치고 등록을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쇠덩이와 합을 맞추고 있는 근육의 향연과 와이드체스트프레스, 숄더프레스머신, 렛풀다운 등 마치 프로레슬링 기술같은 멋들어진 이름의 머신 앞에서 나는 그만 갈피를 잃고 만다. 보다 못한 트레이너가 다가와 덤벨을 쥐여주고 마치 인형술사처럼 내 팔을 조정한다. 손에 쥔 덤벨은 가지 끝에 매달린 잘 익은 감처럼 위태롭다. 이어 삼각근을 운동할 때는 승모근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데, 수능 영어 듣기의 부작용일까? 말뜻을 알아들은 것도 같은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머라구여?) 이어 운동은 30, 식단은 70! 이라며 식단 조절과 단백질 섭취를 권한다. 음… 죄송한데 운동 안 할래요.
나처럼 근력운동을 즐기지 않는 부류에게 소위 말하는 ‘쇠질’은 지속하기 힘든 운동이다. 웬만큼 운동해서는 눈에 띄는 변화를 보기 어려운 몸뚱이의 소유자인 내게(근육이 잘 안 붙는 체질) 육체적 성장의 기쁨을 누린다는 목표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럼 결국 무엇 때문에 결국에는 들었다가 놓고 말 그 쇳덩이들과 씨름해야 하는 것인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이 고통스러운 노동을 반복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그저 ‘운동했다’라는 자위 정도에서 그치니 지속성은 당연히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랬던 내가 지속적인 근력운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박하지만)을 시작하게 된 건, 역시나 달리기 때문이다. 달리기라는 것도 결국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이기에 조금 더 나은 러닝을 하기 위해서는 근육을 보강해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뜬금없는 게임 이야기. 최근 발매되는 모바일 게임은 대개가 레벨업 시스템을 차용한다. 조금의 경험치로도 곧바로 레벨업이 가능하므로 어떤 게임이든 초반은 아주 신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레벨업이 쉽지 않은 구간에 들어서기 마련. 그 시점에서 필요한 게 이른바 현질(!)이다. 창원NC파크(NC다이노스 홈구장)는 지반은 리니지 유저의 피 값(?)으로 다졌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달리기도 게임과 비슷하게 초반 성장 속도는 빠르다. 운동엔 완전 젬병인 내 경우에도 예외는 없어서 5㎞도 겨우 뛰던 시기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8~9㎞까지는 거뜬히 뛸 수 있게 되었고, 6분 내외의 페이스도 5분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들어서면 성장 속도가 현저히 둔화한다. 10㎞ 기준 5분 페이스에서 30초를 줄이는 데에도 거의 1년이 걸렸고 컨디션에 따라서는 4분 30초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마저도 힘들었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건 역시, 현질!! 러닝에서 현질이라면 결국 러닝화, 그러니까 카본 레이싱슈즈를 신는 것일 텐데 그래 봐야 눈에 띄게 기록이 단축되는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게임에서도 제아무리 값비싼 궁극의 아이템이라도 일단 게임 캐릭터가 어느 정도 레벨은 도달해야 들 수 있지 않던가. 결국 기록 단축을 위해서는 내 신체를 개조, 아니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수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달리기를 위한 보강 운동으로서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이소룡 같은 짜작짜작 갈라지는 근육형 인간이 되어야지, 라거나 드웨인 존슨 같은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몸을 만들어야지! 하는 허무맹랑한 목표도 아니고, 헬스를 하면 건강해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도 아닌, ‘더 나은 달리기’라는 구체적인 목표 의식이 생긴 것이다. 그러자 하기 싫어 마다하지 않던 근력운동도 그럭저럭해낼 수 있게 되었다.
쓰다 보니 무거운 중량으로 벤치프레스를 들거나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데드 리프트를 해내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말하고 말았는데, 실은 근력운동이라 해봐야 일주일에 한두 번, 그것도 유튜브를 틀어놓고 하는 맨몸 홈트레이닝이 전부이다.(이렇게 쓰고 보니 더 보잘것없이 보이네요) 그렇지만 맨몸으로 하는 운동을 무시할 수 없는 게, 런지나 스쾃으로 구성된 20분 하체 운동 세트만으로도 무릎이 훨씬 덜 아프게 된다는 것(최소 이틀은 근육통을 앓을 각오는 해야 하지만). 그리고 클런치와 플랭크로 구성된 10분짜리 코어 운동만 하더라도 달리기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보강 운동을 하기 전엔 몰랐던 코어가 달리기 효율 향상에 미치는 영향이나 대퇴사두근이 관절 건강에 주는 도움 등을 몸으로 체감했다.
내가 근력운동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운동하기 전에 하기 싫어 뭉그적거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굳이 차이를 꼽자면 예전에는 ‘에라이’하면서 그만뒀다면 지금은 투덜거리면서도 요가 매트를 꺼내와 바닥에 깔고, ‘어휴, 보기 싫어.’하면서도 유튜브를 틀어 크리에이터의 수익 창출에 공헌하고, ‘어휴, 하기 싫어.’하며 낑낑거리면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랄까.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아내는 웃으며 ‘그렇게 하기 싫으면 하지 마요.’라고 말한다. 그럴 때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해요.(왜냐하면 퍼뜩 몸을 레벌업 시켜서 러닝화계의 ‘진명황의 집행검’, 알파 플라이 넥스트% 시리즈를 사서 신고 말 거거든요!)’라고 말한다. 괄호 속의 말은 당연히 생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