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구한 러닝화는 <월드런 J-7>이었다. 방금 ‘구한’이라고 했는데, 구매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지인에게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러닝화를 구입하기에 뭔가 망설여졌던 시기였다. 신발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뭘 사야 할지도 모르는 데다가 그나마 알고 있는 브랜드였던 나이키는 기능에서나 가격에서나 내 미천한 실력에 비해 지나치게 과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전국마라톤협회 홈페이지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신발이었으므로 일단 마라톤 하는 사람들이 신는 건 확실한 것 같긴 한데, 약간 미심쩍은 구석이 없진 않았다. 투박한 디자인은 그렇다 쳐도 추억의 브랜드 ‘월드컵’과 ‘프로월드컵’ 사이에 미묘하게 걸쳐 있는 듯한 ‘월드런’이라는 브랜드 네임이 특히 마음에 걸렸다. 뭐랄까, 간지 아니, 맵시가 안 난달까. 게다가 색깔도 부담스러운 형광이다. 이런 색깔을 대체 어떻게 신는담.
떨떠름한 표정으로 살펴보는데 세상에, 힐 컵에 ‘이봉주’ 사인이 떡 하니 있는 게 아닌가. 이봉주라니, 한국 마라톤 영웅이 내 신발에다가 사인을 (미리) 해둔 것이다! 갑자기 멋이라는 게 폭발했다. 지나치게 화려한 거 아닌가 하던 형광이 갑자기 영롱해 보였다. 이 형광이야말로 마라톤화의 정체성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상징적인 색감이라는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이건 뛸 때만 신어야 하는 신발인가 봐! 아무렴, 이런 색깔의 신발을 신고 걸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 하고 편파적 시선을 던지기 시작하다가 결국 ‘뭔지 몰라도 이런 것이야말로 마라톤화 아닐까’라는 생각에 도달하고 말았다.
막상 신어 보니 가볍고 발이 편해서 착용에 부담이 없었다. 러닝 입문자에게 러닝화의 착화감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인 사람에게 불편한 착화감은 그 자체가 밖으로 나가길 거부할 수 있는 강력한 핑곗거리가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신발을 신을 때는 적어도 ‘신발이 불편해서’라는 핑계는 대지 않았던 것 같다. 색깔이 부담스러워서라면 몰라도.
정들었던 나의 첫 러닝화 J-7. 자세히 보면 이봉주 선수 사인이 보인다.
첫 러닝화이다 보니 아웃솔이 갈린 줄도, 미드솔이 죽은 줄도 모른 채 700km는 족히 달렸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만성 무릎 통증에 시달리게 된 게 쿠션이 약한 신발을 어설픈 자세로 우당탕 달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아웃솔, 미드솔 같은 기본 용어조차 생소했을 시기였으므로 그저 ‘이건 (무려 이봉주 사인이 있는) 마라톤화’라는 것만 믿고 부지런히 신어댔던 것이다. 이후 뉴발란스 1080 v11을 신어 보고 나서야 비로소 J-7은 입문자에게는 그다지 좋은 신발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플레시폼의 말캉한 맛을 봐버린 것이다. 최상급 쿠션화를 처음 신었을 때의 놀라움과 감격이란. 10㎞ 정도는 통통 튀어서 순식간에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착각이었습니다만.)
<뉴발란스 1080 v11>을 구입하고 나서도 정든 첫 러닝화를 도무지 버릴 수가 없어서 종종 산책용으로 신고 다녔다. (형광색 신발을 신고 어떻게 걸을 수 있냐던 그 사람 맞습니다.) 이 녀석을 신으면 지나가는 사람이 ‘음, 저 사람은 러너임이 틀림없어. 지금 신고 있는 저 눈부시게 화려한 형광 신발로 얼마나 달렸기에 지금 워킹용으로 사용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할 것만 같았다. 러너라면 그런 거 있지 않나. 누군가가 내가 지닌 러너로서의 정체성을 눈치채줬으면 하는 마음. (나만 그런가요?)
정이 쌓인 러닝화와 이별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뉴발란스 1080 v11을 비롯한 여러 신발은 러닝화로서 수명이 다했음에도 아직 신발장에 보관해 두고 있다. 아웃솔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아직 멀쩡한데 버리기가 너무 아깝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그걸 신고 뛸 수는 없어서 새 신발을 들여놓다 보니 안 그래도 비좁은 신발장이 한계에 다다랐다. 어쩔 수 없이 가장 먼저 그간 정들었던 월드런 J-7을 수거함에 고이 보내주었다. 수거함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어찌나 씁쓸하던지. 제를 지내는 기분으로 그날은 새우깡에 소주를 마셨다.
최신 러닝화에 욕심이 없는 건 아니라 오늘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눈요기를 하는데 좁아터진 신발장에서 고생하고 있는 러닝화들을 생각하면 선뜻 지갑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아내 눈치도 좀 보이고) 그러니까 새 신발을 사려면 기존의 신발을 닳게 만들어 버려야 한다는 말.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아식스 글라이드라이드2>의 아웃솔을 갈아버리기 위해 달린다.
아, 근데 말입니다. 아식스는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 걸까요? 뭔 놈의 신발을 이렇게 튼튼하게 만들었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