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 러닝(이라고 하긴 쑥스러운) 이야기
등산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차피 내려올 걸 뭐하러 올라가냐?'라고 타박을 줄만큼은 아니지만, 그다지 산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깊고 깊은 산중에서의 군 생활이 떠올려서인지는 모르겠다. 아, 어쩌면 맞을지도.
아무튼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산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다는 게 더 적확하려나. ‘나 OO산 등반했어.’라고 자랑할 만큼의 상징성이 있는 명산이 아니라면 굳이 오를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가을이면 돌아오는 단풍놀이 철에 단풍보다 더 화려한 등산복을 입고 산을 오르는 수많은 등산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건 당연지사. 대체 어떻게 단풍이 ‘놀이’가 될 수 있는 거냐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겠노라고 멀리까지 차를 타고 나서서 등산하는 행위 역시도 내 이해 가능 영역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당시의 내게 공기보다 신선한 것들은 얼마든지 있었으므로.
트레일 러닝의 시작은 보통 로드 러닝의 지루함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같은 코스를 반복해서 달리다 생기는 새로운 코스에 대한 욕구에 사로잡혀 이곳저곳 다니다 결국 산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다행히도 집에서 1㎞와 3㎞, 6㎞ 떨어진 곳에 각기 다른, 달리기 좋은 공원이 있기에 이 코스만 잘 순환해도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으니 그런 욕구를 느낀 적은 없었다. 게다가 나라는 인간이 워낙 변화를 기피하는 게으른 인간인데다가 멀리 나가기 싫어하는 집돌이 성향도 있는 터라 특정 장소까지 차를 몰고 가서 운동한 후에 마치고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번거로운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러닝 신조는 이렇다. 가까운 데서 달리는 게 최고.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났다. 트레일 러닝을 다룬 르포 <본투런>을 읽어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평지에서 뛰는 것도 힘들어 죽을 것만 같은데 산을 뛴다니 뭔 소리냐 싶었는데 읽다 보니 대자연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인물들의 모습에 점점 빠져들어갔다. 이거 어쩌면 트레일 러닝을 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겠는데,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마침 유튜브 알고리즘도 나를 트레일 러닝 세계로 눈을 돌리게 했다. 트레일 러닝이 발목이나 관절, 대퇴근 쪽 근육에 로드 러닝과는 다른 자극을 제공해 로드 러닝에 도움을 줄 수 있다나. 아, 로드러닝에 도움이 된다고? 몇 달째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 게으른 내 기록을 위해서라도 이거 안 할 수 없겠는데? 그렇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산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고로 무슨 일이든 시작하려면 장비를 구비해야 하는 법. 트레일 코스를 살펴보기도 전에 트레일 러닝화부터 검색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달릴 건 아니니까 비교적 저렴한 신발을 골라야겠다, 트레일 러닝화는 조금 크게 신어야 한다니 5mm 큰 걸로 주문하자. 이런 빈틈없는 잣대(?)를 들이대며 여러 사이트를 이리저리 떠돌던 끝에 적당한 트레일 러닝화 한 켤레를 구입했다. 이제 두 번째 과제. 새로 장만한 신발을 신고 어디를 달려야하나. 이건 기준이 단순했기에 첫 번째 과제만큼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다행히 베란다에서도 보이는 훤히 보이는 나지막한 산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구글맵으로 확인한 결과, 해발 250m! 훗, 이 정도는 찻잔 속 차가 식기 전에 깃발 꽂고 돌아올 수 있겠군. 기다려라, 동매산.
...이라며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실제로는 거의 달리지 못했다. 뭔, 길을 알아야 달리지. 조그마한 동네 뒷산에 등산로는 마치 이소룡 복근마냥 짜작짜작 갈라져 동네 곳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조금 달리다가 서서 길을 찾고, 다시 달리다 서서 두리번거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만만하게 봤던 이놈의 산은 내게 계속해서 선택을 강요했다.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아니면 직진이냐. 게다가 산이라는 게 같은 길이라도 방향에 따라 다른 형상으로 보이기 마련이라 돌아가는 길마저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나, 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한 시간가량 산을 헤매고 나서야 하산할 수 있었다. 그것도 출발지에서 한참 벗어난, 집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곳에 떨어져 있는 지점으로. 동매산이 던지는 선택 지옥에서 겨우 벗어나 땀투성이가 된 채 사람들 다니는 인도로 터덜터덜 돌아오던 그 날의 수치심이란... 이 치욕을 잊지 않으리.
이후 내게 치욕감을 안겨준 동매산을 혼쭐내기 위해 몇 번을 더 올랐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 길을 잘못 들어 같은 자리를 맴돈다던가. 정상으로 가는 급격한 오르막길로 잘못 들어서 무릎을 부여잡고 헉헉 거리며 등반을 하는 등의 굴욕을 더 맛봐야했다. 군대에서 천 미터 이상의 고지를 오르내리며 익혔던 독도법은 우리 동네 뒷산에서는 도무지 통하지 않았다.
단순히 기록 단축을 위한 훈련 목적이었다면 ‘이까짓 산. 힐트레이닝으로 대체해버릴테다!’라면서 진작에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거듭 산에 올라 길을 헤맸다.(길치인 걸까?) 도로 위를 달리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트레일러닝의 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달리기라는 운동이 본질적으로 지닌 ‘속도’에 관한 강박과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로드 러닝을 할 때면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며 페이스를 의식하지만 이상하게도 산을 달릴 때는 페이스를 거의 확인하지 않게 된다. 오르막에서는 자연스럽게 속도가 줄고 내리막에서는 조심조심 걷는다. 평탄한 구간을 만나면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다가 목이 마르면 멈춰서서 목을 축인다. 신선한 공기라는 것이 이렇게 좋은 거라는 걸 온몸으로 체감한다. 이 맛에 그렇게도 산을 오르는구나.
반복된 실패 덕분에 이제는 나만의 동매산 러닝코스를 만들어 조금씩 러닝다운 달리기(?)를 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동네 뒷산 안에서만 국한된 일이고 다른 코스로의 일탈은 아직 꿈꾸지 못한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위해서 겪어야 할 시행착오가 눈앞에 훤하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우리 집 뒷산에서 ‘실례합니다’를 외치며 노인분을 앞지르는 폐를 조금만 더 끼치려 한다. 이 코스를 찾기 위해 고생한 게 잊혀질 때쯤이면 다시 새로운 코스를 찾아 헤매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몽블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