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한량주의보

by 반윤성
현실도피

퇴사를 결심한 사람에게 가장 께름칙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현실도피'일 것이다. 매일매일 고단한 현실에 견디지 못한 실패자가 되는 것 같아서 우리는 퇴사를 꺼리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퇴사가 하고 싶은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속한 이곳이 싫은 것이다. 물론 싫어할 이유는 충분하게 많다. 부장님의 발 냄새가 심해서, 담당자의 언행이 싫어서, 이 돈 받고 이 업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 싫증 나서.


입사했을 때 당당하고 신선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화장실 거울 앞엔 쓸쓸하고 초라해진 내가 서 있다. 이러려고 정말 그렇게 노력해서 이곳에 온 것일까 하는 약간의 자기 학대와 더불어 현실 도피를 결심한다.


그들을 위한 변호

마음먹고 나를 포함한 모두의 변호사가 되어본다. 그들의 입장에 서서 퇴사는 누구든 한 번쯤 반드시 해볼 만한 것이고, 결국 최종장에는 모두 퇴사자가 되는 것이기에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한다.


첫 번째, 도망치는 사람이 낙원을 기대하진 않는다. 우리 모두 평화로운 햇빛 아래 그저 평범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길 원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일단 다른 곳에서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다.


두 번째, 여러 교육 과정과 주입식 교육을 거쳐 우리는 잘 견디게 설계되었다. 때론 좋지만 오히려 그것이 족쇄가 되어 행복을 방해한다. 여기서 이것만 버티면, 또 그다음을 버티면. 자꾸 채찍질하며 스스로를 압박한다.


세 번째, 이곳에선 나를 담을 수 없는 크기가 되었다. 사실 3년 정도면 일에 필요한 기본적인 제반 지식은 다룰 줄 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어째서 계속해서 반복적이고 지루한 업무를 시키는 조직에 속해야 하는가?


결국 퇴사자는 다시 재직자가 된다

퇴사를 하게 되면 내가 있던 자리, 들어갈 자리 총 두 개의 공간에 내가 존재하게 된다. 실질적인 의미의 존재는 아니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충실히 근무를 했다면 그곳은 나의 부재를 느낄 것이고 내가 진행했던 업무로 내가 남아있는 것이다.


직전과 완전히 다른 업무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옮긴 이곳에서도 업무는 이어진다. 단지 환경이 바뀐 것일 뿐이다. 그것이 자영업이 되었든, 프리랜서가 되었든. 퇴사는 전 직장이라는 장소를 벗어난 거지 또 다른 말로는 입사가 된다.


여기서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양심'이라는 말로 덮어버리는 마음 한 편의 시큰한 감정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찌 보면 시시콜콜한 농담을 했던 동료들과 끝까지 믿어줬던 팀장님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그들은 또 알아서 자기 나름대로의 생을 꾸려가리라 애써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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