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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용희 Dec 10. 2018

반성 편

용희사전 26

반성


반성. 우리는 살면서 여러 일을 겪다 보면 실수를 하게 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긴다. 그럴 때 반성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반성을 하면서 살아가게 될까? 그리고 진심으로 우러나는 반성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반성은 양심에서 나오는 진실한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은 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반성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언행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봄.’이라 명시되어 있다. 


반성은 자기 검열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잘못, 부족함. 스스로 인정하는 일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반성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나에 말과 행동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특징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공격적이다.


쉽게 꼰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실 나의 부족함을 알아야 사람이 겸손해지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하지만 오만한 꼰대들은 나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실수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반성을 하기보단 정당화를 시키기 바쁘고 이유를 찾기 바쁘다.


이를 나는 오만함이라고 생각한다.


반성이 없는 사람은 과연 성장할 수 있을까? 


반성은 어쩌면 나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간이라고 볼 수 도 있겠다. 그 과정을 통하여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 하지 않고 나아가 개선점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반성할 일이 생겼다는 것은 창피한 일 일수도 있지만 어쩌면 좀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반성을 하지 않게 된다면 과연 나를 냉정하게 바라볼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반성은 스스로 뉘우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완벽하거나 정말할 수 없다. 그리하여 실수도 하게 되고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같은 문제가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은 어쩌면 잘못된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뉘우치지 못한 것이다. 아니면 반성을 안 한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럼 왜 반성을 안 하게 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일 우선적으로 사회적 위치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직장이 되었든 사업을 하든 우리는 각자 나름의 사회적 위치와 지위를 가지게 된다. 


그 결과 그 지위나 위치가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이 생기게 된다. 만약 당신이 지위가 높은 사람이고 당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이 못마땅하기만 하다면 당신은 꼰대일 확률이 높다. 


지위가 높은 어떤 이가 가지는 책임 중 하나는 자신보다 지위나 위치가 낮은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지위가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이 봤을 때 뭔가 부족해 보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능력과 가능성을 캐치하여 그것을 이끌어 내는 것이 조직에는 더 효율적이다.


헌데 못마땅하게만 생각한다면 그는 꼰대다.


그런 사람은 적어도 자신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전혀 죄의식이 없을 확률이 높다. 


오만 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그렇게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고 남이 우습게 보이기 시작하면 그는 스스로에게 반성하지 않는다.


만약 그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실수를 하게 되더라도 별일 아니게 생각할 확률이 높다. 


지위라는 권력을 남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반성을 안 하게 되는 경우는 타인과 자신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람이다.


사실 반성은 감정적인 마음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핵심은 감정이라고 본다. 

감정. 즉 마음이 없는 사람은 반성을 하지 않는다. 사이코 패스를 예로 들면 좋을 것 같다. 


오로지 이성만이 존재한다. 오직 결과만이 중요한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반성을 하지 않는다. 보통사람의 반성의 과정을 판단 미스의 수정으로 여겨지는 걸로 생각된다.


반성은 분명 고결한 것이다. 스스로 인정하고 뉘우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인정은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판단 미스라고 여기는 사람은 물론 인정의 과정을 겪겠지만 뉘우치는 개념보다는 방향의 재설정 정도로 생각하는 걸로 보인다.


그 안에 양심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반성이 긍정적인 요소만 있을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도 사소한 것에도 반성을 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사실 이런 경우 반성이라기보다는 자기 파괴에 가깝다.


이런 경우의 특징은 반성의 효과라고 볼 수 있는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을 학대한다. 


‘아 또 실수했어. 난 이래서 안돼.’


앞서 이야기했듯이 반복되는 실수와 사고는 제대로 된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그 결과 자신을 학대하게 된다. 그러다 최후에는 인정을 하게 된다. 


‘난 원래 이런 놈이야.’


물론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실수나 사고는 분명 바로 잡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더 나아갈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것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가 반성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반성의 부작용은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지만 자기만족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역시 반복되는 실수와 사고를 만들 수 있다. 


스스로를 감정에 취하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 감정에 만족한다. 


사람이 반성은 하는 것은 자기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개선하고자 해서 더 나은 나로 나아가기 위하여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반성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문제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인정했을 때 반성을 하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반성은 분명 나를 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을 이해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인간이 개체로서 하나로만 존재한다면 반성할 일은 없다. 그냥 내 맘대로 살면 그만이다. 


우리가 반성을 하는 것은 분명 사회 속에서의 내가 존재하기에 발현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반성은 타인과의 이해를, 그리고 공감을 나아가 교감을 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 잘난 사람도 있고 조금은 부족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재의 그 사회의 범주 안에서의 이야기라고 본다. 


지위나 역할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가치는 그러한 것으로 매겨지지 않는다. 


반성할 게 있다는 것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성장의 가능성을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너무 작은 일에 반성이나 자책을 안 하기를 바라며 꼰대들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 


사실 이렇게 글을 썼지만 나 역시 잘 안 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반성을 하려 한다. 더 나아지는 나를 기대하기에 반성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 또한 타인을 좀 더 알아가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 역시 크다. 언젠가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라며 반성 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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