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이 되도록 아이는 기어 다녔다. 몸의 왼쪽은 편마비로 굳어있어 움직이지 못하고 비틀려 있었다. 오른손으로 힘을 주면 왼쪽 몸은 비틀어진 채로 따라가며 기어 다녔다. 물리치료사는 걷는 게 힘들 거라고 했고 다니는 대학 병원에서도 몸의 중심인 코어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아이의 치료가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남편은 그런 아이를 두고 가정예배를 드리다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루아가 걷기 전에 혼자 일어설 수 있도록 기도해 보자. 걸으려면 혼자 일어설 수 있어야 되잖아. 오늘부터 혼자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시라고 기도해 보자. 먼저 발에 힘이 들어가야 하니 발목에 힘이 생기게 해달라고 말이야. "
하나님 우리 루아가 혼자 일어서게 해 주세요. 그리고 걸을 수 있도록 발에 힘을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걸을 수 있을까?... 병원에서도 치료실에서도 아이의 몸이 온전하지 못해서 걸을 거란 확신이 없다는데.... 진짜.. 이 아이가 혼자 일어설 수 있을까?....
그리고 걸을 수 있을까?...)
그렇게 2주 정도 기도를 하며 지냈다.
(과연... 진짜.. 정말로... 걸을 수 있다고??)
라는 의심하는 마음이 나에겐 늘 숨겨져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 후서 1장 7절 말씀
"여보~ 나 오늘 설교시간에 들은
이 말씀이 너무 좋아.
마음에 조각을 내면서 새기듯이 나에게 와닿네...
왜인지는 모르지만 이 말씀 잡고
매일 기도해 볼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인 거 같아."
(걷지 못하는 딸을 위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랑하는 딸아 일어나 걸어라 라는 말씀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마음을 주신다고?...
우리의 기도제목과는 다른생소한 말씀이었다...)
이 또한 숨겨진 내 마음의 생각이었다.
남편은 매일 자신에게 주신 말씀을 말하며
기도를 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에도
이 말씀을 주제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렇게 3주 정도 시간이 지났고 시아버님의 칠순기념으로 온 가족이 괌으로 여행 가기로 한 전날 저녁이었다.
둘째 아이의 이유식과 먹을 것을 아이스박스에 한가득 담고 여행에 필요한 짐들을 캐리어에 준비해 두고 다음날 여행을 위해 일찍 잠이 들었다.
잠시 여행에 신경 쓰느라
아이에 대한 긴장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새벽 2시쯤...
아이가 한동안 하지 않던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으. 으 윽..!! 으.. 윽!! 반복되는 응얼거리는 신음소리가 몸속 어딘가에서 어긋났다는 신호를 보내며 아이는 발작을 시작했다.
아이의 숨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심장마사지를 해보았다. 얼굴은 점점 새파랗게 변해갔고 몸은 더욱 심하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아이 입에 인공호흡을 해보고 숨을 멎게 만드는 무언가가 입에 있다는 생각에 숨을 쉬게하려고 안간힘을 써보았다.
그럴수록 아이의 호흡은 더 가빠졌고 시퍼렇던 몸은 검보랏빛으로 변해갔다.
캄캄한 밤 방 안에서 점점 괴로워하며 멈춰가는 아이의 호흡은 나를 두렵게 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르고 응급실에 갈 수도 없이 심하게 멈추지 못하고 온몸으로 해대는 아이의 발작을 보며... 나는 이 시간이 아이가 결국 우리 가족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 땅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떠나가는 아이의모습을마주한다는 게 엄마로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가 있는 방이 아닌 거실로 흐느끼며...나와버렸다.
그리고 엎드려 말했다...
미안해... 루아야... 엄마 뱃속에서부터 수없이 하혈과 아픔으로 고통스러웠을 네가 태어나면 건강할 거라고 믿었는데... 이렇게 계속 아파하는 너의 모습을 이제 더 이상 못 보겠어.. 오늘이 너의 마지막 모습인 거 같아서 엄마는 고통 속에서 떠나는 너의 모습을 도저히..,. 못 보겠어..
미안해 루아야.... 엄마가 미안해.. 사는 동안 아프기만 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수술만 여러 번... 받게 해서 엄마가... 미안해...
내 딸.. 내 사랑하는 아가.. 엄마가... 미안해..
하며 울고만 있었다...
몇 분이 지나자..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고... 겁이 난 마음으로 들여다본 방 안에서 남편은 아이를 안고 처절하게 울면서 말하고 있었다.
하나님 ..저는 지금.. 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기도하오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주님...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닌 것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상황은 두려워... 할 것이 아닙니다.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 하는 마음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나의 두려운 이 마음을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으로 지켜주시옵소서.
주여. .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라고 부르짖으며 울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아이의 모습에
남편은 자신이 붙잡고 있던 그 말씀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죽어가는 아이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도저히 볼 수 없었던 그 처참한 상황에 남편은 소망을 말하고 있었다.
아이와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고 있던 나와 달리 남편은 내 생각을 손바닥 뒤집듯이 반대로 바라보며 하나님께 간절한 호소를 하고 있었다.
남편의 기도가 끝나자 아이는 발작을 멈추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모든 희망과 힘이 다 빠진 모습으로 방으로 기어가... 아이의 코에 귀를 대고 숨을 쉬는지 들여다보았다...
보랏빛이던 아이의 몸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새벽끝나지 않을 어둠처럼 끔찍스러운 고통 가운데...서서히 아침해가.. 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