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육아의 맛

어쩌면 나와 같을 누군가에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던 5월도 어느덧 끝자락에 이르렀습니다.


주말의 여독이 남은 월요일 아침, 아이의 따뜻한 작은 손을 잡고 집을 나섭니다. 평일 아침이면 초록이 일렁이는 거리를 지나 어린이집까지 걸어갑니다. 약 15분 거리이지만, 아이와 천천히 걷다 보면 괜히 콧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다섯 살이 되자, 앞으로 꼭 작은 형아라 불러 달라는 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아이: "엄마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내가 오늘 집에 있을까? 내가 집안 일도 잘 도와줄 수 있는데.....!"
나:!!!!!!


어린이집에 도착하자 방금 했던 말이 무색하게 아이는 씩 웃으며 어린이집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파란 하늘이 내려보는 좁은 골목길 위, 아이가 남기고 간 작은 말이 해사한 웃음이 되어 피어납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우리와 함께한 지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이는 세상으로 나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타고난 색깔과 모양대로 자유롭고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5년이라는 짧은 육아 시간이었지만 그 에는 다양한 맛이 들어 있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을 맺고 함께하는 시간 속에 이렇게 다양한 감정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했기에 육아라는 새로운 과제 앞에서 좌충우돌하기도, 이 길이 맞는지 매일 밤 고민과 자책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어떤 논리가 아닌 그저 마음이 흐르는 방향대로, 아이가 가진 리듬대로 함께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밀도 높은 집육아를 했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뒤돌아 보며 가장 감사한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절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그 시절 기억상자는 누구보다 두둑해졌습니다. 물론 지갑은 얇아졌고, 내세울만한 경력은 없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육아에는 어떤 정답이 있다기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즐거운 방식으로, 그리고 가치 있는 방식으로 해 나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들판에서 아이가 무심히 건넨 작은 꽃송이와 같이, "육아"는 삶 속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행복 바구니를 하나씩 하나씩 안겨주었습니다. 돈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귀한 행복감과 세상 속에서 만나기 어려운 드문 감동이 그 안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매스컴에서도, 우리가 바라보는 영화의 한 장면등에서도 육아는 힘들고 고된 작업으로 주로 비추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은연중에 육아는 힘들고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 피하고 싶은 것이라고 으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스크린을 벗어나 실제 현실에서 만난 육아는 화면 너머에 비추어진 것처럼 마냥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 우리 옆에서 보드라운 살을 비비며 맑은 웃음 짓는 아이는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진짜 사랑을 경험하게 하였고, 미숙했던 저를 새로운 사람으로 성숙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기른다는 의미를 지닌 "육아"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짝이는 보석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육아의 맛 1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맛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쯤, 남편과 함께 연고 없는 지방 도시로 오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하나부터 열까지 남편과 저 둘이서 세상에 막 태어난 아이를 길러내야 했습니다. 아이를 기르기 전에는 육아를 도와줄 인력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기르며 육아를 도와줄 친정과 시댁을 근처에 두고 있는 이들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악조건이라면 악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들은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응급상황에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은 저와 남편 둘 뿐인 상황. 이제 돌이 막 지난 아이를 기관에 맡기고 직장에 다닐 용기까지는 나지 않았습니다. 마음 역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약 1년 넘는 육아휴직이 끝난 후, 복직 예정이었던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낯가림이 심했던 아이의 기질은 저와 아이를 더욱 단단하게 묶어 주는데 큰 몫을 했습니다. 덕분에 작은 아이와 매일 조곤 조곤 이야기하고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푸른 자연 속에서 평화로운 시간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친구처럼 붙어 다니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다복한 호사를 누려 보기도 했으니까요.


아이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자라났고, 그 시간의 빠르기는 앞으로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긴 인생 중 얼마나 찰나와 같은 것인지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5년간 아이와 함께한 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맛"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제는 사진 속에 그리고 영상 속에 존재하는 그때의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애틋한 마음이 묻어납니다. 그때 조금 더 많이 사랑해 줄 것을, 조금 더 그 순간을 누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그런 아쉬운 마음까지 함께 다독여 봅니다.


그런 아쉬움을 알기에 지금 맞이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을 좀 더 온전히 느끼고, 그 안에 있는 행복을 찾아보려 더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육아의 맛 2.
커리어와 육아 사이, 두려움이라는 맛


처음 아이를 기르며 가장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것은 "경력"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고민하는 저에게 누군가는 차분히 아이 키우고 나중에 일하면 되지 않느냐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몇 년 동안 사회와 동떨어진 상태로 육아에 전념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돈이라는 가치를 위해 경쟁하고 비교하며 살아온 삶과 육아는 너무 다른 성질의 삶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모두들 마흔이라는 전성기에 맞게 전력질주하며, 차근차근 사회적인 지위를 쌓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혼자 뒤처지고 있다는 극심한 불안감이 종종 엄습해 왔습니다.


이제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 구조로 변해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보통 출산 후 바로 일을 시작하거나, 육아휴직이 끝나면 바로 일터로 나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와 정반대로 몇 년 동안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겠다는 저의 선택은 요즘 추세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하는 제게 어떤 분은 "우와! 용기 있는 선택에 응원을 보냅니다."라고 응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선택이 돈키호테와 같은 어리석은 선택은 아니었을까, 정말 현명한 선택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육아란 앞으로 제가 쌓아야 하는 커리어에 방해가 되는 일이며, 끝없이 희생을 감내하게 는 것으로만 막연히 상상하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아이가 한 살이 되었을 때쯤, 부모교육에서 한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여자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육아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저에게 건넸습니다.


" 제가 사실 엄청 놀기를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어요. 아이를 기르는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어요."


지금까지 "육아=힘들다"라는 공식을 깨고 그녀는 육아=사랑"이라 말하였습니다. 육아서에서나 보았던 공식을 말하는 현실 속 그녀를 보고 놀란 제가 물었습니다.


나: 그런데, 아이들 돌보게 되면 일도 못하게 되고, 거기다 엄마 자유 시간도 없는데 괜찮으세요?

그녀: 네? 시간이요? 중요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시간들은 아이들이 크고 저를 떠나면 정말 넘치도록 많을 거예요. 지금은 아이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제일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라 생각해요. 바로 지금이 엄마의 사랑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간이잖아요. 그 시간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그리고 이 시간이 지나면 제가 아무리 많은 사랑과 시간을 준다고 해도 이제 괜찮다며 세상 밖으로 나가는 때가 올 거니까요. 지금 이 시간들도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그 시간을 가지기로 결정했다면 밀려오는 조급함과 막연한 걱정은 조금 접어두고 이 시간을 누리고, 많은 사랑을 주고받아 보는 건 어떨까요.


그때는 그녀가 저에게 던진 말의 의미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를 기르기 전 가졌던 육아는 힘든 것이다라는 단순한 생각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생략하고 있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육아란 체력을 요구했지만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고귀한 일이었고, 깊은 사랑을 경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키우는 시간이 더해갈수록 그때,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혹시 과거의 저와 같이 육아를 시작하며 육아를 선택하고 싶지만, 커리어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녀와 같이 말해주고 싶습니다. 긴 고민 끝에 당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선택지를 선택했다면, 그 선택이 세상이 칭찬하고 있는 방향과 다르더라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 것을, 그리고 조금함은 조금 접어두고, 다시 오지 않을 시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들을 마음껏 누려도 충분히 괜찮다고 말입니다. 이미 우리는 아이에게 그 누구보다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훗날 아이와 함께 한 호시절에 대한 두둑한 기억상자를 열어보며, 그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고마웠다는 인사를 다정히 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메인: pinterest

*다음 주는 쉬어 갑니다. (^^*)






















keyword
이전 28화마흔 육아, 그리고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