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레이어로 오래 살다 보니 기자들을 만날 일이 많다. 매체에 소속된 언론인들의 진정성도 알고, 또 지면이나 방송의 상황이 그들의 의지와 관련 없이 돌아갈 때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매체에서 보이는 것들을 온전히 믿지도, 그들을 완전히 불신하지도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직장인임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는 건 우리나 그들이나 마찬가지다.. 짬이 모자랄 수도 있고 혹은 회사의 정책에 반하는 논조를 잡을 수 없어서 일수도 있다.
요즘 정말 거의 유일하게 신뢰하는 언론인이 있다면 난 주저 없이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을 꼽는다. 늘 약자의 편에 선다는 느낌을 주는 글을 많이 쓰셨지만, 오늘 본 이 기사는 날 많이 울컥하게 했다.
[권석천의 시시각각] 이젠 헌법재판관 전원을 여성으로!
https://news.joins.com/article/23407932
여성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가 오직 여성만의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늦은 시간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만난 치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당시 남자 친구의 첫마디는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집에 빨리 들어가라고 했지?
이제 내가 매일 데려다줄게
어느 술자리에서 여자들의 삶이 왜 피폐한지 이야기하다 면접 자리에서 '남자 친구 있어요? 결혼계획은" 같은 질문을 늘 받는다라는 말에 동석했던 두 명의 남자는 10년에 가까운 사회생활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라고 했고, 비슷한 연배의 여성 일행은 매번 듣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여자 셋이 모이면 그중 2명은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경험이 있고, 이부진 같은 사람이 아닌 바에야 성희롱 경험은 흔한 것이었다. 왜 이부진은 안전할 수 있었는지조차 설명해야 하는 그 상황이 피곤했다. 어쩌면 그녀조차도 그 그룹 안에서는 차별적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여자들은 남자들이 모르는 1인치에 갇혀 살아
함부로 아는 척하지 마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는 내가 약자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한 순간부터였다.
문화예술, 특히 연극은 반골 기질이 강한 사람이 유난히 많다. 다양성과 존중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악기 연주나 무용만큼의 장기간 트레이닝 없이도 감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한국의 연희 문화가 우아한 궁중음악이 아닌 거리에서 탈로 얼굴과 목을, 장삼으로 손까지 모두 가려야 겨우 할 수 있었던 풍자의 세계에 그 뿌리를 두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안전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조차도 여성이 대표였던 단체라는 안전장치 덕분이라는 것을 2018년 2월에 알았다.
나의 세계, 나의 사랑, 나의 고향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지만 다른 장르의 상황을 보면서 그래도 우리가 낫다는 것을 깨닫고 안도했다. 그래도 연극은 아직 건강하고 싸울 힘이 있구나. 어떤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클래식 음악계, 국악계, 무용계의 속사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추정이 되는 바다.
미투에 감히 피로감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것도, 미투에 빚투 같은 파생어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랫사람들이 싫다고 말하면 그건 안 해야죠 라고 말하는 당당함도 모두가 다 권력이라는 것을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모르게 마련이다.
나와 함께 여생을 보내겠다고 만인 앞에서 다짐한 큰고영은 꽤나 보수적인 집안의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매우 급진적인 사람이고, 약자의 입장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역시 남자였고 내가 갇혀있는 1인치의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연애의 과정에서 내가 확인한 건 그는 세상의 절대인구인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이 왜 대한민국 서울에서 소수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공감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 어디 가나 여성의 삶은 괴롭지만 한국이 유난히 더 팍팍하고 치졸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남자. 그것이 내가 결혼을 결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들과 남편 사이에 갈팡질팡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는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결혼을 했고. 1년 후에 집을 샀고, 또 그로부터 1년후인 오늘.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알 수 없는 참담함과 억울함과 시원함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당신 누구 엄마라고 안 부를 거야
그 말이면 됐다고 생각했다. 영양제를 사고 돌아오면서 이제는 나와 나의 아이를 위해 함부로 뛰지 않겠다고,
이제부터 나의 삶의 1인치를 넓혀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새로운 시작선 앞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