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기원으로 오늘을 살다
맨 처음 산부인과에 갔을 땐 아기집 조차 보이지 않았고, 자궁벽이 두꺼워진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일이 지나고 큰고영이 돌아와 둘이 손잡고 가서 만난 건 엄밀히 아기가 아니라 난황. 말하자면 달걀노른자 상태였다. 그 난황을 먹고 아이가 자라서 본격적으로 엄마의 에너지를 가져가기 시작하기 전 단계. 귀한 아가를 달걀노른자에 비교한다며 빵 터진 의사 선생님 앞에서 난 여전히 멍했다.
저 난황이 사라지고 나면 본격적으로 아이가 생기는 거겠지. 10일 후에 아기 심장 소리 들으러 오라는 말과 함께 병원을 나섰다. 휴가까지 내고 나온 일정인만큼 바빴다. 구청 가서 엽산도 받아야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임신부임을 표시하는 그 핑크색 배지를 받아야 했다.
뭐 그거 들고 다닌다고 딱히 더 자리 양보 더 해주고 그런 거 같진 않은데 큰고영은 그 배지를 두고 '마패'라고 했다. 다 비키라고 할 거라고. 우리나라는 임신을 했건 애를 둘을 업었건 그런 배려를 쉽게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닌데, 큰고영이라면 당당하게 나오라고 말할 것만 같아서 차마 큰고영과 다닐 때는 들고 다닐 엄두가 나지 않지만.
여하튼. 병원을 다녀오고. 보건소 가서 기본 검사를 받고, 예전 산전 검사기록지도 뽑아오고 집에 돌아와서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제일 먼저 고민됐던 건 이 소식을 언제 어른들에게 이야기해야 할까였다. 임신 초기 단축 근무 때문에 회사에는 빨리 이야기하는 게 나을 듯했지만 사람들에게 막 아직 태아라고도 할 수 없는 저 알의 상태를 알리는 것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너무 초기였기에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맘 급한 큰고영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그리고 그 설레는 마음도 이해했다. 이야기하고 싶겠지. 막 자랑하고 싶겠지. 얼마나 소문내고 싶겠어. 하지만 가까이 초기에 주위에 알리지 않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지라 부모님께는 이야기하자고 하고 양가에 동시에 카톡을 보냈다.
누가 먼저 알고 늦게 알고 이런 유치 찬란한 이슈에 민감한 스타일이신 걸 아는지라 나란히 앉아서 첫 초음파 사진을 양가에 보냈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할 마흔의 나이에 첫 아이를 가진 나를 보는 엄마의 기쁨은 뭐 말할 필요도 없었고, 시가도 이제껏 본 적 없는 격한 밝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다.
고맙구나와 축하해가 그렇게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에난 좀 예민해졌지만 그런 건 사실 이제 중요하지 않다.
이미 나의 몸은 정말 하루하루가 달랐다. 태생이 예민한 편인지라 작은 몸의 변화가 다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워낙도 소화불량이 고질병이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부대끼기 시작했고, 5주 차에 들어서자 속이 느끼하고 니글거리는 순간이 자주 왔다. 아직 입덧은 시작도 안 했다지만 이미 속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몸에서 뭔가 익숙하지 않은 변화가 생길 때마다 임신 출산 카페를 검색했고, 사람마다 달라요라는 말을 확인할 때까지 검색을 멈추지 않았다. 마음의 초조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임신 초기. 최근 검색 빈도만 보면 아마 최상위 레벨일 거다. 혈압도 낮고, 원래 적혈구 세포도 남들보다 적은 팔자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핑도는게 좀 더 심해졌다. 익숙한 증상도 다시 한번 검색에 들어갔다. 평균의 삶을 살던 내 몸을 더 이상 신뢰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 알리니 착하신 동료분들이 네가 움직일 때마다 그렇게 잔소리한다. 그렇게 초기에 움직이고 그러는 거 아니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내가 움직일까 봐 먼저 달려가서 내 일을 해주고 있는 동료가 보였다. 담담한 척했지만 눈물 났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다 엄마들이었다.
피곤하고 피곤한 워크숍을 마치고 다음 주 월요일쯤 병원에 오라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점심 먹으러 가기 전에 보니 핏기가 보이는 거라. 순간 멍했다. 일단 밥을 먹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의도치 않게 예상보다 빨리 회사의 전 직원이 나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혹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택시를 타고 다니는 병원 근처로 지하철역을 이야기하고 큰고영에게 전화를 했다.
나 핏기가 보여서 지금 택시 타고 병원 가는 길이야. 나올 수 있어?
큰고영은 열일 다 제쳐두고 뛰쳐나왔고 택시 타고 가는 중간에 픽업해서 병원에 갔다. 그때 알았다. 기사님이 내가 이야기한 '피가 보였어'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는 걸. 차가 안 밀리는 시간대이긴 했지만 너무나도 달리시는 거다. 저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했는데 아예 차에서 내려서 휘휘 기다리셨다. 혹 내가 불편해할까 봐 나와 계신 거였다. 좀 오래 걸려도 괜찮다는 걸 보여주시려고 나가 계신 거였다. 병원에 좀 덜 걷고 가기 위해서는 유턴을 해야 해서 저 앞에서 유턴해주세요 했는데
저기 저 병원 앞에 내려드리면 되는 거지요?
내가 아이를 가졌고.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인지해서 병원을 가고 있다는 걸 그 한 단어로 알아들으시고 진짜 쏜살같이 달려가신 거였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병원에 데려다주겠다고. 뭘 묻지도 귀찮게 하지도 않고 그분의 최선을 다하신 거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참 감사하다.
검진에 들어가서 평범하게 이전 검진 결과를 설명하시다가 제가 핏기가 보여서요...라고 하니 의사 선생님 표정이 살짝 변하는 게 느껴지더라. 다행히 아이는 멀쩡했고 심지어 이제 난황을 열심히 먹어대서 조그맣고 하얀 심장이 생겼다. 다음 주에나 들을 줄 알았던 심장소리를 오늘 들었다. 난황은 많이 작아졌고 이제 0.68cm의 태아가 열심히 자라고 있었다.
아이는 아주 잘 크고있어요
그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이게 뭐라고. 내가 이게 뭐라고 그 새가슴이 되어 여기까지 날아왔는가. 정신이 살짝 혼미해졌다. 나는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순간을 이렇게 새가슴이 되어 살아가게 될 것인가.
옛날 옛적에 예약해둔 방콕행 비행기 티켓을 보며 "난 그래도 건강하고 늘 몸이 평균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5월은 지나서 여행을 가시죠... 하는 선생님의 말에 우리는 두 번 고민 않고 티켓과 호텔을 취소했다.
비록 이달의 여행은 포기했지만, 더 배가 불러지고 또 아이가 태어나면 우린 더 못 다닐 거니까 안정기에만 들어사면 가열하게 여행을 다니자고 다짐했다.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소중해졌다. 조심은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다. 나를 믿고. 내 몸을 믿고. 내 아이의 강인함을 믿고 좀 더 굳건하게 시간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