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졌다. 불쑥.

by 김옥진


전에도 이런 적이 있긴 했다.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고 팔다리에 전기온 것 같은 찌릿한 기운이 느껴지고 몸이 차가워지면서 이내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호흡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렇게 10분? 20분? 가량을 정신이 혼미한 채로 헉헉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정신이 차려지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살면서 2번인가? 겪은 게 다인 매우 희귀한 경험이기에 그냥 그때 몸이 많이 힘들어서였겠거니 넘겼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1주일 간격으로 출근길 버스에서 2번이나 쓰러진 거다. 같은 증상으로.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해서 주위에서 저 친구 어떻게 좀 해보라며 자리를 양보해주셔서 앉았는데. 이번엔 앉아서 가고 있었음에도(물론 진짜 의자는 아니고 버스 바퀴 위쪽에 대충 걸쳐서) 이미 내 몸은 바닥으로 주저앉고 있었다.


속이 메스껍거나 피곤해져서 그런 건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증상이 1주일 상간 연달아 난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거였다. 증상을 검색하면 공황장애 같은 증상만 나오는데 그러기엔 내 멘털은 너 무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죽고 싶다던지, 죽기 싫다던지 하는 그 어떤 감정 변화도 없는 노멀 한 상태니까.


좀 더 찾아보다가 이 글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https://blog.naver.com/0592010/221398383937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글을 보면서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는 단어를 확인하고 좀 심란해졌다. 결국은 신경성이라는 거고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을 확률이 높다. 증상은 나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리고 평소에 저혈압이라는 점도 비슷했다. 인생에 최고 혈압이 100을 넘겨본 적이 없는 나였다.


병원 정기 검진에 갔다가 이야기를 하니 의사 선생님은 전혀 놀라지 않으신다.


예. 많이들 그러세요. 해결방법이 없어요.
다행히 전조증상은 있으니, 전조증상이 느껴지면 어디든 일단 앉으세요.
잘못 쓰러져서 치아 다 부러지신 분도 본 적 있어요.

전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의사의 저 대수롭지 않아 하는 반응은 심란함을 보탰다. 난 여전히 혈압이 낮을 예정이고, 신경성 증상이 없어질 리도 무방한 멘털이다. 뭐랄까. 좀 더 검색을 해보니 이런 글이 나오더라.


https://blog.naver.com/leebw0714/221505380898



이 글을 읽으면서 제일 짜증 나는 포인트는 이거였다.


미주신경성 실신은 인체에 무해하며 특별한 치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상에. 난 당장 자리에서 정신 못 차리고 쓰러졌는데. 치료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인체에 무해하다니. 망할. 난 그 순간에 죽을 듯 무서워지는데. 인체에 무해하다니!!!!!!! 고작 버스에 15분 서 있는데도 그걸 몸은 무리라고 느낀다니!!!!!


이런 증상은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이렇게 불쑥 쓰러지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기 전까지 이게 얼마나 흔한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격한 입덧은 피해 가는 건가 안도하고 있던 나에게 '실신'이라는 역대급 미션이 떨어졌다.


나는 인생에 한번 쓰러져보는 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로 초 건강체인 인간이었다. 23살인가에 헌혈이 끝나고 초코파이 먹다 쓰러진 이후 내가 혈압이 얼마나 낮은지 꺠닳았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엔 헌혈을 한 번도 못했다. 늘 혈압이 낮아서.


우야 간. 나중에 출산에도 혈압이 낮아 걱정인 나는 출산은 고사하고 이미 생활에서 큰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동안 생리혈이 확 줄어서인지 기립성 빈혈 기운이 사라져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핑 도는 증상이 다시 시작되었고 이와 동시에 이 '미주신경성 실신' 증상이 시작된 것이다.


다들 입덧으로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들에 비하면 어쩌면 좀 무리 없는 증상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모르는데 무슨 기면증처럼 불쑥 불쑥 올라오는 이런 증상들까지 감당해야 할 줄은 몰랐다. 젠장.


스트레스. 장시간 서있기, 낮은 혈압....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기에 뭐든 좀 먹으면 나을까 싶어 안 먹던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토마토나 오이. 뭐든 위를 채우고 나간다. 사무실 가는 길에 좀 작은 샌드위치도 하나 사서 입에 문다. 에너지를 많이 채워야 내가 버틸 거 같았다.


하지만 그게 큰 도움은 안되는 것 같긴 하다. 오늘. 사무실에서 회의가 길어지자 체온이 스윽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호흡이 좀 커졌다. 주먹을 꽉 쥐고 책상을 붙잡고 있었다. 다행히 걱정했던 증상이 나오지는 않아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다 떠나서 출근길 30분가량에도 내가 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대단히 큰 공포다.


내 인생에 실신을 걱정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고작 7주. 아직 30주 가까이 남은 시간에 난 또 무엇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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