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왜!!! 그게 궁금한가!!!!
아직 입덧이 없다 정확히는 예민은 하지만 격한 증상은 없다. 악취가 나거나 방향제가 심하게 뿌려진 화장실은 피하는 정도면 대충 살아진다. 이만하면 무난하다고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소화불량은 달고 사는 팔자라 위가 답답한 느낌이 심해서 입맛이 좀 없다. 그리고 호르몬의 영향인지 평소에 즐기던 육고기가 안 당기고 굳이 치면 해산물이 더 당기고 매콤하고 개운한 국물이 좀 더 당기는 정도
문제는 내가 아니라 주위 반응이다.
“몸은 어때?” 정도의 질문에 먹는 거에 대한 변화를 이야기하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그래? 그럼 딸인가?
먹는 거, 배 모양 등으로 성별을 추정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아직 모체와 탯줄로도 이어지지 않은 이 초초초기에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결혼은 언제? 애는 언제? 첫애 낳으면 둘째는? 딸이면 아들은? 아들이면 딸은?
지겨울 정도로 끊임없이 다음 단계를 푸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최소한 임신 중엔 들을 게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임신 중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몰라! 몰라! 모른다구! 안 중요해!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다.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 눈 두 개 코 하나 입하나 귀 두 개. 사지 멀쩡하고 기능을 다 하는 신체만 갖추면 원이 없겠다.
딸인지 아들인지를 궁금해하는 그저 호기심일 뿐이다. 누군가의 호기심을 위해 존재하는 아기가 아니다.
안다. 이런 사고의 전개는 나의 피해의식이다. 하지만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방법이 왜 아직도 그 수준에 멈춰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늘 있다.
아들 압박. 느낀다. 그건 임신 전 부터였다. 정확히는 큰고영이 아들을 원하고, 시어른들도 말은 안 하지만 보통의 대한민국의 60대라면 누구나 아들을 선호한다는 것을 안다.
성별을 결정하는건 남성의 몫이지만 낳는게 나이기에 책임이 전가된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고, 보통의 그 평범한 니즈에 늘 반문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나는 그 조용한 아우성이 참 싫다.
임신과 동시에 2년을 이름만 부르던 시부가 나를 “우리 며느리”라고 부르며 바로소 가족임을 명명한 그 순간, 이제 탯줄을 겨우 이은 9주의 태아를 가진 내 앞에서 “둘째”를 언급한 그 순간. 이미 난 기가 질렸다.
만약 내가 딸을 낳으면? 나에게 더 본격적으로 둘째를 권하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물며 평범한 사회생활 속에서 만나는 이들에게서 까지 일상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라니. 가족과의 접점에서는 마음의 준비라도 하지. 불쑥불쑥 치고 들어오는 순간은 너무 괴롭다.
내 자식의 성별이 왜 궁금한가. 당신이 궁금해할 건 형체도 모를 태아가 아니라 지금 오늘 눈앞에 실존하는 나여야 하는 거 아닌가?
신경 써준 건 고맙지만 늘 세상의 걱정의 방향은 나의 지향과 거리가 있다.
난 만져지지도 않는 태명뿐인 아가의 엄마이기 이전에 인간 나로 불리우기를 바라는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