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태어난 아이를 가진 엄마들의 영원한 희망사항은 '통잠'일 거다. 아이가 띄엄띄엄 깨지 않고 6~8시간 연달아 자는 그 순간이 오는 것을 기적이라고 한다지.
난 통잠 로망이 신생아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인 줄 알았다. 나에게도 통잠이 필요하다고 울부짖는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난 워낙 잠이 많다. 임신을 하면 잠이 많아진다는 말은 익히 들었다. 업무시간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아직 모체에 빨대를 꽂기 전인 초초기 임신부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지 낮에는 큰 무리가 없다.
문제는 저녁시간이었다. 일단 오후 8시만 되면 잠이 오기 시작한다. 잠을 일찍 자는 건 사실 별일이 아니다. 그저 평소에 많던 잠이 좀 더 늘어난 정도일 뿐이니까. 괴로운 건 잠든 이후이다. 유난히 자극적인 음식이 많이 당기는 시즌이라 그런 건지, 저녁에 물을 많이 먹고 자서 그런 건지 새벽에 너무 자주 깬다. 최소한 2~3회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을 깬다.
이렇게 깨고 나면 나는 다시 잠드는데 최소 1~2시간이 걸리는데, 2시에 깨면 4시 반까지는 못 자고 다시 잠들어 깨면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잠 기운이 남아있어서 정신을 차리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30분쯤 눈만 겨우 뜬 체로 손발을 까딱거리다가 더 이상은 누워있을 여유 시간이 없어지면 일어나는데 그때 핑... 돈다.
젠장. 매일 젠장 소리를 달고 산다. 그렇게 핑 도는 사이 벽 짚고 기대고 있으면 뒤에서 큰고영이 귀신같이 그 순간을 보고 있다.
괜찮아?
괜찮지 않다. 하지만 괜찮다고 해야 저 사람도 산다. 내 작은 행동들에 너무나도 민감해하고 걱정을 많이 하는 큰고영에게 감사함과 함께 미안함이 절로든다. 내가 못 먹는 음식은 덩달아 못 먹고, 더러는 끼니를 건너 띄기도 한다. 이미 삶의 많은 부분이 나에게 맞춰 저 있는 임신은 그 강도를 더욱 높이는 행위가 돼버렸다.
프리랜서라 집안에 절대적인 체류시간이 긴 큰고영은 그건 내가 하단 소소한 설거지나 빨래 정리 같은 일들까지 다 떠안았다. 그에게 마음의 짐 만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늘 있던 일이었고 또 한동안 늘 있을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해야 했다.
그렇게 2주째다. 일부러 물을 안 먹고도 자봤다.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이건 분명 임신으로 인한 변화였다. 배뇨량도 많아서 참고 버티고 계속 자는 게 나의 몸에 좋을 리 없는 상태라고 판단될 정도. 아니 대체 내 몸 어디서 저렇게 많은 수분이 뽑혀 낙가고 있단 말인가. 이해가 안 됐다. 난 원래 물을 많이 마시는 편도 아닌데 말이다.
예민한 큰고영과 까다로운 내가 만든 이 1.33cm짜리 아가는 엄마가 통잠을 허용하지 않는다. 고작 이제 팔다리가 점처럼 삐져나와 하리보 같은 꼴을 갖췄다는 나의 아가가 말이다.
가뜩이나 잠자리에 누우면 큰고영 얼굴과 피부에서 나는 피지 냄새 때문에 매 순간순간이 괴로운데(얼굴이 거의 산유국 수준인 큰고영에게서 나는 체취로 혼자 헛구역질 여러 번 했다. 뽀뽀할 때 숨도 참고한다. ㅠㅠ) 심지어 잠까지 맘 편하게 못 자게 하다니. 근데 심지어 아직! 탯줄로 모체와 아기가 연결된 상태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아직 본격적으로 날 귀찮게 하기 전 단계라는 뜻인 상태의 이 조그만 아가가 나를 너무 괴롭히는 거지.
그랬다. 난 전혀 몰랐다. 임신이라는 게 얼마나 세심하게 일상을 뒤흔들 줄. 그저 몸이 무거워지고 아이가 모체의 내장기관을 눌러서 압박을 느낄 정도의 크기가 돼야 몸과 마음이 힘들어질 줄 알았다.
4주 차에 자궁벽이 두꺼워지고
5주 차에 난황이 생기며 아기집이 만들어지고
6주 차에 난황을 열심히 먹은 아가가 심장을 비로소 만들어내고
7주 차에 팔다리를 뻗을 준비를 한다.
태아는 그 모든 과정에 모체에게 확실한 존재감을 남길 수 있는 생명체다.
심지어, 내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워가는 것이다. 정확히는 배운다기보다는 체험하는 거지.
대한민국 교육이 얼마나 엉망 인지도 새삼 느끼고 있다. 생물시간이나 가정 시간에 배운 임신과 출산에 관한 각종 정보와 지식들은 실제 출산과 임신에 1%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가상의 정자가 힘차게 헤엄쳐 가상의 난자가 무력하게 침입당하는 매우 성차별적인 영상만이 우리가 배우는 전부였다. 정자는 그렇게 힘차게 역동적으로 헤엄치지 않으며, 여체도 수동적으로 정자만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의 교육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남자들은 그나마 배우지도 않는) 가정/가사 시간에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를 다룬다. 임신의 상태에서 모체가 어떻게 변화하고 그 강도가 어떠한지 가르쳐야 한다. 막연한 공포를 줄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괴로움도 기꺼이 이겨내는 모성이라는 건 허상이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는 법.
내가 임신과 출산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배워가는 요즘이다.
나는 너무나도 무지했고. 하루하루가 새롭고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