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동물으로서 땅에 발 딛는 순간이 고역이라면 누가 믿을까. 그럼 뭐, 날아다니기라도 하란 말인가? 누군가 묻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다. 그만큼 터무니없는 소리다. 하지만 나에겐, 적어도 다리 위를 건너는 순간만큼은 큰 고역이 맞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거리는 것 같은 다리. 콘크리트 다리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발바닥에 느껴지는 출렁거림을 애써 외면한 채,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딛어 본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다리 위에서 나 역시 마음 속으로 수백 번 수천 번 주저앉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었다. 불안을 느낄 때는 감각에 집중하라고. 눈에 보이는 것 다섯 가지를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아무 일 없이 멀쩡한 다리, 그 위를 평온하게 지나는 차들, 조잘대며 건너는 사람들, 다리 아래에 늘어선 가로등들과, 탄천에서 조깅을 하는 사람들. 다 찾았다. 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한 데 뒤엉켰다. 다리가 무너지고 함께 떨어져 내리는 차들과 사람들, 끝없이 추락하는 내 몸을 관통하는 가로등만이 나를 멈춰 주려나.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탄천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만 같다.
어느샌가 심장은 귀에서 찢어져라 뛰고 있었다. 울렁거리는 속을 애써 누르면 이번엔 다리가 울렁거리고 만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다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두려움을 어떻게 건너야 할까. 수천 번 떨어져 내리며 마지막 발을 내딛었다. 뒤돌아보니 그토록 무너지던 다리는 멀쩡하다. 내 다리도 그제서야 진동이 조금 멎었다. 꿈이라도 꾼 것 같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뒤돌아 걷는다. 매일같이 겪는 일인데도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아직 멎지 않은, 귓가에 울리는 심장의 고동만이 쿵쿵대며 꿈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