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언가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나에게는 음료, 특히 커피와 차가 그렇다. 매일 아침에는 커피 한 잔,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차 한 잔. 거의 깨지지 않는 나만의 평일 루틴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어긋나는 일이 없는 이 루틴은 벌써 꽤나 오래 지속되어 왔다. 누군가는 간식 끊기가 참 어렵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담배나 술을 끊기 어렵다고 하던데. 나는 간식이나 담배, 술에는 큰 감흥이 없고 커피와 차를 끊기가 힘들다. 제각각의 중독이란 이토록 흥미롭다.
커피나 차를 마실 때 가장 인상적은 순간은 역시 처음의 한 모금이다. 향과 맛이 입 안에 퍼지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첫 모금은 보통 나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여유롭고 평온한 날이면 첫 한 모금을 마시기 전부터 향을 느껴 본다. 때로는 후우, 하고 바람을 불어 향을 더 깊이 맡아 보기도 한다. 고소한 원두의 향, 은은한 백차의 향, 진한 자스민의 향. 그 날 나의 기분에 맞게 선택한 향이 코끝을 지나 폐 깊숙한 곳까지 들이차며 일렁인다. 마치 내가 향과 하나가 된 기분을 느끼며 호록. 한 모금 머금는다. 코로만 맡았던 향이 입 안에 따스하게 퍼지며 혀를 자극한다. 향긋하면서 기분 좋은 쌉싸름함, 또는 은은한 단맛을 천천히 음미해 본다. 아쉬움과 설렘을 담아 목 뒤로 넘기면 금세 따스함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온 몸에 퍼진다. 굳어있던 몸과 머리를 부드럽게 깨우듯, 서서히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 모금에 향과 맛, 온도, 그리고 행복한 기분까지 함께 삼키는 셈이다.
마음에 여유가 없이 급한 날의 첫 모금은 상반되어 있다. 향을 느낄 새 없이 우선 입에 가져다 댄다. 향과 맛을 욱여넣듯 입에 머금는다. 이런 날은 향도 맛도 유달리 쓰다. 아무리 달콤한 차를 우려내도 잘 느껴지지 않고 그저 떫게 느껴진다. 오로지 카페인을 필요로 하거나 입이 말라 목을 축이려는 의도만이 남아 있는 날. 그런 날의 첫 모금은 무언가를 느낄 새도 없이 사라진다. 황급히 입안에 머금은 액체의 뜨거움이 채 느껴지기도 전에 목구멍에 밀어 넣는다. 꿀꺽. 그제서야 입 안이 뜨겁게 데어버린 것을 깨닫고 얼굴을 찡그린다. 까끌거리는 혀로 벗겨진 입천장을 문지르며 왜 그랬지 하고 후회한다. 그러고 있노라면 금세 목구멍부터 타들어가는 느낌이 난다. 너무 성급했어. 왜 그렇게 급하게 삼켰지. 후회할 새도 없이 후후 바람을 불어 내부를 식혀 본다. 타는 듯한 뜨거움이 조금 가시면 목 안이 전부 까끌거림으로 가득한 게 느껴진다. 이런 날은 입맛도 쓰고 까끌거림도 아프고 거슬려 한동안 음료를 방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느새 차게 식어버린다. 마시기에는 편한데, 몸 속 깊이 원치 않게 싸늘해지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급할수록 여유를 가지라는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 손에는 이미 식어버린 음료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성급하게 삼키면 식어버리는 건 결국 음료만이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식어버린 음료를 괜히 더 마셔 본다. 차갑게 식어버린 음료는 여전히 썼다. 마치 너무 성급했던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