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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스티까 Mar 20. 2021

도로 위의 왕, 핀란드 순록들

핀란드 Pyhä-Luosto 국립공원 가는 길

친구들과 차를 빌려 당일치기 여행을 가기로 한 날. 핀란드의 자연을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을 생각하다 우리가 지내는 곳에서 별로 멀지 않은 Pyhä-Luosto 국립공원(Pyhä-Luosto National Park)을 가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챙겨 입고 전날 밤에 미리 싸 둔 6인분의 샌드위치까지 각자의 가방에 챙겨 넣으면 준비 끝! 놀이공원도 아니고 등산 가는 길이 이렇게 기대될 줄은 몰랐지만 부푼 마음을 안고 렌트한 차에 몸을 실었다. 국립공원까지는 차로 약 2시간. 서로가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들으며 창밖으로 펼쳐지는 핀란드의 풍경을 보고 있으니 심심할 틈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핀란드스러운 나무가 뻗어있는 도로의 모습 / 운전 중 예상하지 못한 순록과의 만남


도로 양 옆을 감싸고 있는 수많은 나무를 뒤로하고 달려가던 중 운전하는 친구의 당황스러운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은 앞쪽으로 향했다. 동시에 우리는 난생처음 보는 광경을 마주했다. 목적지를 향해 신나게 달리고 있는 우리 앞에 순록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중앙선 위에서 아스팔트 바닥을 혀로 핥고 있는 순록을 보고 있으니 핀란드에서는 극심한 차 막힘은 없지만 예상치 못한 '순록 막힘'이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소심하게 클랙션도 울려보고 창문을 내려 말도 걸어보지만 동요하지 않는 순록들. 어쩔 수 없이 조금 기다리면서 이 황당한 상황을 나름 즐기고 나니 순록들은 마침내 우리가 길을 지나가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도로 위의 왕, 순록과의 만남 뒤 무사히 목적지로 도착한 우리는 국립공원 안내센터를 둘러보며 어떤 코스로 걸어볼 것인지 고민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고려한 가벼운 코스로 시작하기로 하고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뎠다. 걸음을 옮기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가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서 소소하지만 엄청난 순간에 시선을 두고 있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피하 루오스토 국립공원 입구 / 10월 말 가을과 겨울이 적절히 뒤섞여있는 국립공원의 풍경
빽빽하게 자리 잡은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고요한 핀란드 숲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 뿌리내린 나무들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지금처럼 계절에 반응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괜히 나무를 향해 일방적인 응원의 눈빛을 보내본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곳에 와보리라는 마음을 품으며 핀란드에서의 첫 국립공원을 뒤로하고 길을 내려간다. 안녕! 다음에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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