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 님의 물음에 대해 일주일 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저는 현재 어떠한 말이나 칭찬보다는 그냥 저의 매 순간순간에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일이 너무 많아서 제 의도와 상관없이 잠을 많이 못 자면서 생활하고 있는데 얼마나 제가 버틸지도 모르겠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고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도 걱정되기도 하고요.
분명 여가시간이 있다면 좋아하는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명상도 하고 수련도 더 많이 다닐 텐데, 현재 나에게 무언가 쌓일 시간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가족과 추석 때 일본여행에 갔을 때 모처럼 푹 자고 시간이 생기니 책도 읽고 사색도 하고 좋았거든요. 그때 이후로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번 주 월요일 수업으로 매번 다크서클을 달고 사는 저를 보시고는 원장님께서 하루 저녁 수업을 빼주셨어요.
예전 같았으면 밀린 잠을 자거나 수련하러 갔을 텐데, 수업이 끝나자마자 경복궁역으로 갔어요.
서촌에 전시를 보러 다녀왔는데, 우연히 책과 관련된 출판업자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였어요.
전시장 마지막 공간에서 “책은 시공간을 넘어 이야기, 생각, 그리고 감정을 전달하는 그릇이자 살아있는 존재다. 책을 만드는 것은 이러한 물리성과 물질성, 그리고 손과 눈, 마음 사이의 연결을 기념하는 예술이다”라는 글이 써져 있더라고요.
‘손과 눈, 마음사이의 연결을 기념하는 예술이다.’라는 글을 읽고, ‘요가도 그렇지 않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요가원 안에 정말 아름답게 몸을 움직이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중에 당연히 현아 님도 계세요.
저는 항상 관찰자의 입장이 되곤 해요. 저의 손으로 회원분들의 몸의 쓰임을 돕기도 하고 눈으로 회원분들의 움직임을 보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안내하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그날 현아 님께 그리 말씀드린 건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너무나 아름답게 몸을 움직이고 계셔서였어요. 함께한 지 거진 1년이 되신 현아 님과 다른 회원분들을 볼 때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지 란 생각이 자주 들곤 하거든요.
오늘 아침에도 한 회원분의 수련 내내 그 움직임이 너무 섬세하고 부드럽고 유연해서 “무슨 생각하며 요가하세요?” 여쭤보니, “아무 생각 안 해요. 그냥 선생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움직이고 있어요. 아무 생각 안 하는 게 너무 좋아요.”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제 생각이지만 본인의 몸에 마음을 다해 집중할 때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가장 나다울 때 아름답다.”라고 하잖아요.
저는 요가강사지만 60분의 운동보단 ‘수련’을 안내하는 사람이기에, 제가 사유할 수 있는 힘이 커진다면 수련 중 건네는 말들, 몸을 바라보게 하는 바디스캔, 음악, 공간의 조명, 인센스에서 풍기는 향까지 더 잘 전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책도 더 많이 읽고, 또 자주자주 서촌에 놀러 가서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싶어요. 전시 티켓은 요즘 커피숍처럼 직접 뽑을 수 있더라고요. 그런 것도 너무 재밌고, 서촌은 걸어 다니면 건물도 예쁘고 아기자기한 숍들, 주인마다의 이야기가 담긴 가게들이 많은 것 같아서 좋아요.
이야기가 담긴 가게, 전시 등을 보고 나오면 한 편의 영화를 보다가 나온 것 같아요. 꿈을 꾸다 온 것처럼요. 그러면 하루 종일 혹은 한주가 혹은 한 달이 기분이 좋아요.
제가 요가수업을 하고 있는 곳 중에 한 곳에서 제가 존경하는 한 70대의 선생님이 계시거든요.
어느 날은 선생님께서 “선생님, 저 연극을 하는데 보러 오실 수 있나요?” 라며 초대해 주셔서 연극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연극을 다 보고 나서 선생님을 뵙고 오고 싶었는데, 너무 인기가 많으셔서 계속 기다리다가 못 뵙고 집으로 그냥 돌아왔었거든요.
그 후에 요가원에서 선생님을 뵈었는데, 선생님께서 “내가 요즘 블랑쉬라는 인물을 보고 있는데 ‘욕망이라는 전차’ 이 소설 너무 좋아. 나랑 블랑쉬라는 인물이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라고 사바 사나 가 끝나자마자 행복하게 저에게 속삭이듯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전 바로 “선생님! 저 블랑쉬 알아요~ 그 인물이 와닿으세요? 그 소설 읽었어요.”라고 이야기의 물꼬를 트며 제가 뮤지컬 전공을 하며 연기를 배운 이야기, 학교 이야기도 하고 이래저래 선생님과 친해지게 되었어요.
그 후 선생님께서 자신의 자서전과 인터뷰 등이 담긴 잡지를 다음번에 두세 권 주시더라고요. 자서전을 읽다 보니 선생님이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연기 또한 너무 사랑하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그 후 또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 “나는 불필요한 것에 에너지를 쓰지 않아요. 시간이 없어, 우리는 여행하다가 죽는 거잖아. 가다가 죽는 거야. 그러니 내가 필요한 것 내가 사랑하는 것에 집중해서 살아가야 해. 그냥 나는 그래.”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그 후로도 지금까지도 “나는 어떨 때 행복할까?”를 고민해 보고 있어요.
저의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현아 님, 나현 님, 지선선생님과 함께 얘기 나누고 글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 사랑하는 친구들, 가족들, 선생님들과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 혼자 있을 땐 전시도 보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좋아하는 음식도 먹고, 수업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
이게 저에게 가장 큰 행복인 것 같아요. 그러한 순간들이 오면 잘 바라보고 잘 관찰하고 순간에 집중하려 노력해요! 그리고 저도 누군가에게 저의 말들과 행동들을 통해 좋은 영향을 주고 함께 살아갈 힘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게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지선 선생님!
<작가의 여정> 전시를 보러 가면서 선생님을 뵌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선생님의 밝은 미소와 헤어진 뒤에도 무언갈 하시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그려져요!